개발시대의 일화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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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시대의 일화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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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4.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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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김현옥은 육사 3기로 5·16 군사정변 때 군을 이끌고 부산 시내를 장악해 박정희 소장의 눈에 든 인물이다. 부산시장을 거쳐 1966년 서울시장에 취임 후 서울의 대역사(大役事)는 시작됐다. 불도저 시장(별명)으로 ‘돌격’이라고 쓴 헬멧을 쓰고 현장을 누빈 모습이 마치 전시의 야전 지휘관을 방불케 한다. 청계·삼각지 고가도로, 강변북로, 여의도 개발이 대표적이다. 이를 줄여 표현하자면 “김현옥 이전에 김현옥 없고, 김현옥 이후에 김현옥 없다”가 된다. 과연 불세출의 걸출한 인물이다.

여의도(汝矣島)라는 이름은 ‘너나 가져라’는 글로, 쓸 만한 가치가 없다는 뜻이다. 1968년 면적 284만㎡(85만평)에 제방(윤중제) 높이 15.5m로, 110일 만에 여의도 개발을 끝냈다.

△세운상가

창덕궁 앞부터 종로 청계천, 을지로를 거쳐 퇴계로까지 확장, 연장하는 사업에 세운상가를 민관 합동개발 사업으로 추진했다. 연장 1200m, 너비 50m 규모로 남북을 잇는 건물로 4층까지는 상가, 5층부터는 오피스·아파트·호텔 등이 있는 한국 최초의 주상복합단지 세운상가는 말 그대로 ‘세계의 기운이 모여든 곳’이다. 그 세계는 전자 시계였다. 한국현대건축의 선구자 김수근이 설계초안을 마련, 1966년 9월에 착공하여 1968년에 준공됐다.

세운상가의 부지는 조선총독부에서 경성의 도시개발을 획책할 때 목조건물의 주택을 밀집시켜 놓으면 화재가 발생했을 경우 도시 전체가 전소될 염려가 있어 이를 미연에 방지하고자 중심부에 나대지를 두었다는 것이다.

이곳에 길게 늘어선 콘크리트 구조물은 서울 근대화의 상징물이 되었다. 부자들은 상가아파트에 앞다퉈 입주했고, 시민들은 낯설던 엘레베이터를 구경하려 몰려들었다.1970~80년대엔 전자제품 상가로 번창했다.

손정목의 ‘서울도시계획이야기’에서 3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1972~76)이 끝날 때쯤 굶주림에서 벗어나면서 아름다움과 추함을 분간하는 눈을 떳다고 썼다. 세운상가는 ‘번영의 상징’에서 서울 중심의 ‘녹지 축을 망친 흉물’로 전락했다.

△세종로 지하도

세종로 지하도를 대림산업이 단돈 1원에 완성하여 1966년 9월 30일 세종로 사거리 지하도 개통식에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었다. 다음 날은 10월 1일 국군의 날에 지하도 위로 중무장한 장갑차량이 줄지어 지날 텐데 박대통령은 걱정스레 “임자 이 지하도 위로 중무장한 장갑차가 수 없이 지날 텐데 괜찮을까”(박정희 대통령) “걱정 마십시오, 각하 지금 지하도 밑에 차일석 부시장이 있습니다”(김현옥 시장) 공사는 5개월 만에 끝내고, 단 돈 1원의 공사비만 받고 대림산업이 “산업보국”이라고 말끔한 완공을 보고 화제를 남겼다.

△강남 개발

1966년 8월 15일 박정희 대통령에게 김현옥 서울시장은 강남을 개발하면서 행정은 강북, 사법은 강남, 입법은 여의도라는 기본 계획을 설명하면서 일본도 올림픽을 치렀는데, 우리도 올림픽 개최에 대비해 강남 개발을 준비해야 된다고 했다. 그로부터 20년 뒤인 1988년에 올림픽이 열렸다. 지금의 ‘강남’은 한국의 문화를 선도하는 공간으로 탈바꿈했고, 서울의 발전상을 보여주는 본산으로 떴다.

「한성순보」(1884년 7월 3일)에 외국 사람이 조선에 왔다 가면 반드시 하는 말이 “조선의 산천은 아름다우나 그보다도 사람과 짐승의 똥, 오줌이 길에 가득하니 이것이 더 두려운 일이다”라는 기사가 실려 있다. 강북의 인분을 사 강남의 채소밭과 밭곡식에 뿌리던 그 냄새 진동하던 강남땅을 개발하여 법조 단지로, 여의도의 아무데도 쓸모없는 모래펄의 섬을 돋아 입법단지로 그냥 점차적으로 발전시킨 것이 아니라 로켓처럼 숨 가쁘게 치솟아 올렸다.

△강변북로

제1한강교에서 여의도까지 강변북로가 완공되어 1967년 9월 23일 개통식에는 박정희 대통령이 참석했다. 박대통령은 이 공사에 큰 관심을 보이면서 “임자, 공사비는 얼마나 들었나”(박정희 대통령) “1km 당 약 1억 원이 들었습니다.”(차일석 부시장) “그러고 보니 김현옥 시장이 예전 수송 장교를 해서 잘 알겠구먼, 서울에서 부산까지 거리는 얼마나 되지?”(박대통령) “약 430km 가량 될 겁니다.”(김현옥 시장) “그럼 부산까지 고속도로를 만들면 430억 원이 필요하겠네.”(박대통령)

1970년 4월 8일 마포 와우아파트 붕괴사고의 책임을 지고 김현옥 시장이 물러나고, 부시장 차일석은 1971년 조선호텔 사장, 1979년 신동아건설회사 최고경영자가 되어, 아시아 최고 빌딩인 여의도 63빌딩을 세웠다. 1995년 국민일보 사장, 1998년 서울신문 사장 취임 재임 기간 서울신문의 사명을 「대한매일」로 바꿨다. <계속>

이준걸 前 국사편찬위원회 사서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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