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로 재해 상처를 치유하다
  • 이진수기자
문화예술로 재해 상처를 치유하다
  • 이진수기자
  • 승인 2024.12.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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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빛오름 ‘깨소’ 태풍 피해 입은
포항주민에 치유 프로그램 마무리
“상처 회복은 심리적 치유가 중요”
참여주민 “치유에 많은 도움” 호평
 
포항빛오름의 깨소 프로그램에 참여한 1기 주민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포항빛오름의 깨소 프로그램에 참여한 1기 주민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먹구름이 몰려오네. 비바람이 몰아치네. 밤새도록 내린 비에 하천냇물 범람하네. 영차 영차 힘내자. 태풍아 물러나라. 너도나도 깨어보세. 깨소학교 최고다.”

경북 포항의 주민들이 태풍의 긴박함과 불안감, 피해복구 의지와 활동, 그리고 깨소 프로그램의 중요성을 노래한 ‘치유타령’의 한 대목이다.

대형 자연재해를 입은 주민들의 상처를 문화예술로 풀어내는 치유와 회복의 ‘깨소’ 프로그램이 최근 마무리됐다.

포항빛오름의 깨소 프로그램은 지난 2022년 9월 6일 태풍 힌남노가 경북 포항을 강타해 큰 피해를 입은 주민들의 상처를 치유하고 회복하기 위해 올해 5월부터 11월까지 7개월 간 진행됐다.

힌남노는 포항에 시간당 100㎜, 4시간 기준으로 최대 500㎜에 달하는 기록적인 폭우로 인명을 앗아갔으며 주택, 농작물 침수 등으로 주민들 삶의 터전을 황폐화시켰다.

특히 폭우는 포항의 하천인 냉천 범람과 맞물려 인근 포스코 포항제철소를 덮쳐 공장 대부분이 침수로 물에 잠겼다.

620만t의 흙탕물이 제철소로 유입돼 공장 곳곳이 뻘 형태가 됐으며, 침수 수위가 무려 1∼2.5m 정도로 물바다가 됐다.

제철소 상징인 고로(용광로) 3기가 모두 휴풍(쇳물 일시 생산 중단)에 들어가는 등 모든 공장의 조업이 한순간에 중단됐다.

1968년 포스코 창사 이후 최초, 1973년 첫 쇳물을 생산하지 49년 만에 초유의 사태로 힌남노는 주민들 삶의 터전과 포스코에 큰 피해를 초래했다.

앞서 2017년 11월 포항에 지진 발생으로 땅이 꺼지고 건물이 무너지는 등 기후위기에 따른 사상 초유의 대형 재난으로 포항은 공포의 도시로 변했다.

태풍과 지진으로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지울 수 없는 아픔과 시민들의 공포, 망연자실, 한숨과 고통을 감내하기에는 벅찬 현실이었다.

포항빛오름의 깨소 프로그램에 참여한 2기 주민들이 소원등을 만들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포항빛오름의 깨소 프로그램에 참여한 2기 주민들이 소원등을 만들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포항의 문화예술단체 포항빛오름은 당시의 참혹을 이웃과 소통하고 노래와 춤, 악기연주로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주민들 곁에 다가갔다.

이들이 문화예술로 풀어내는 치유와 회복의 프로그램 주제가 ‘깨소’이다. 깨소는 재난으로 인한 고통으로 닫혀있고, 숨죽인 속내를 소통과 웃음으로 깨우자는 의미다.

경북문화재단 지원사업 깨소는 당시 태풍 피해가 심했던 포항시 동해면과 오천읍 주민 30명(1기 15명·2기 15명)을 대상으로 △토속민요 △대본 창작 △한국무용 △타악기 제작 및 연주 배우기로 총 28회에 걸쳐 동해면민 복지회관에서 진행했다. 주민들은 이렇게 배운 것을 공연으로 담아냈다.

깨소에 참여한 A씨는 “태풍의 상처가 심해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이 불편했는데 깨소 참여로 이전의 활달한 자신으로 회복돼 기쁘다”고 말했으며, B씨는 “회원들과 가사를 쓰면서 우리가 겪었던 일들을 공유하는 게 치유의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C씨는 “우리가 만든 이야기를 공연으로 꾸미는 과정이 정말 뜻 깊었다”며 “함께 웃고 아이디어를 내면서 우리가 한팀이라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주민들은 공연의 감정을 진솔하게 털어놓기도 했다.

D씨는 “내 이야기가 민요가사가 되고 그 걸 다른 사람들과 함께 부를 때 무척 감동이었다”고 했으며, 다른 주민은 “연습 때 실수도 많았지만 서로 격려하면서 완성해 가는 과정이 좋았다”며 “공연 후 내가 대단한 일을 해낸 것 같아 마음이 뿌듯했다”면서 밝은 웃음을 보였다.

깨소 참여자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정서적 안정에 도움이 됐다’는 응답이 85%를 나타냈으며, 이웃과 관계 회복 90%, 창작 활동을 통한 성취감과 재활용 타악기 제작이 환경보호의 중요성을 깨닫는 계기가 됐다는 각각 95%를 보였다.

이들은 깨소는 우리에게 새로운 희망을 선물했다며 앞으로도 이런 프로그램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깨소 기획자 엄말숙씨는 “재해를 입은 주민들에게 필요한 것은 물질적인 지원만이 아닌 심리적 치유와 이웃 간 관계 회복, 그리고 스스로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강사들은 “깨소는 단순한 문화예술 프로그램이 아니라 주민들의 아픔과 희망을 담아낸 공동 창작의 과정이었다”면서 이 프로그램이 지역과 주민들에게 의미 있는 자산으로 남길 바란다고 했다.

포항빛오름 최현화 회장은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어떻게 하면 주민들의 마음에 다가갈 수 있을까 걱정을 했는데 조금씩 성처를 털어내는 치유 과정을 보면서 가슴이 뭉클했다”면서 “참여한 주민과 가르친 강사들에게 감사하다”고 말했다.

포항빛오름은 원광대학교 디지털대학 전통공연예술학과 출신 가운데 포항의 성악·무용·타악의 ‘가무악(歌舞樂)’ 전공자들로 구성됐으며 2014년 창단해 지속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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