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민주주의의 강한 회복 탄력성
  • 이진수기자
한국, 민주주의의 강한 회복 탄력성
  • 이진수기자
  • 승인 2024.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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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 혁명, 5·18 민주화운동
6월 민주항쟁 등 위기 때마다
특유의 강한 회복 탄력성 발휘
윤석열 대통령 12·3 계엄에도
국민들의 민주주의 함성 물결
매년 연말이 되면 다사다난했던 한해를 돌아보면서 언론사들은 해외 10대 뉴스와 국내 10대 뉴스를 선정합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엄청나게 쏟아지는 뉴스 가운데 10대 뉴스를 선정하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나, 대부분 언론사의 10대 뉴스가 대동소이합니다. 보는 눈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지요.

2024년 해외 10대 뉴스는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 국내는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및 이에 따른 탄핵정국, 그리고 소설가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이 선정될 것입니다.

윤 대통령의 12·3 계엄은 그야말로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었습니다. 계엄은 전시·사변 등 전쟁이나 극도의 사회적 혼란이 발생할 때 군대 투입으로 질서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한국이 계엄을 선포할 비상상황이었다고 생각하는 국민은 없을 것입니다. 어째든 윤 대통령은 반헌법적인 불법 계엄으로 국민들에게 큰 충격과 혼란을 주었습니다.

국민들과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 국회의원들이 군 병력과 숨가쁜 대치 끝에 국회에서 계엄을 기각했으며 이후 정국은 윤 대통령 탄핵으로 몰아쳤습니다.

윤 대통령에 대한 1차 탄핵소추안 투표(표결)는 국민의힘 의원들의 불참으로 무산됐지만, 2차(12월 14일) 투표에서 결국 탄핵이 가결됐습니다.

이날 국민의힘 의원들의 투표 참여는 순전히 국민들의 힘입니다. 겨울 한파에도 불구, 뜨겁게 달군 민주화의 함성이 그들을 주눅들게 해 투표하게 된 것입니다.

또한 서울을 비롯해 전국의 탄핵 집회는 수많은 시민들이 1980년대 민중가요 ‘아침이슬’과 K-팝의 소녀시대 ‘다시 만난 세계’ 등의 떼창과 응원봉이 함께 어우려져 마치 공연·축제장과 같은 신명나는 평화의 민주광장을 연출했습니다.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1986년 위험사회를 발표했습니다. 위험사회는 위험이 사회의 중심 현상이 되는 사회를 말하는 것으로, 지구촌에서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는 자연재해와 인재, 정치적 혼란 등 입니다. 위험사회일수록 예방과 피해 최소화에 이어 ‘회복 탄력성’이 중요합니다.

회복 탄력성은 기후변화로 인한 자연재해나 테러, 안전사고와 같은 충격적인 사회적 사건 등 큰 재난에도 불구, 이에 적응해 나가거나 변화에 맞게 시스템을 변형해 가면서 도시의 시스템을 회복하고 지속성을 유지할 수 있는 역량을 의미합니다. 인체의 경우 질환에서 빨리 회복돼 건강을 되찾는 것으로, 회복 탄력성이 작동되지 않거나 지연되는 사회는 후진국입니다.

이번 계엄과 탄핵 정국에서 국제사회는 우리의 민주적 회복 탄력성에 대해 찬사가 이어졌습니다.

한국이 대통령의 기습적인 비상계엄 선포 사태를 빠르게 극복하고 민주주의 시스템을 지켜낸 것은 한국의 자유민주주의가 쉽게 무너지거나 훼손되지 않을 정도로 강하고 튼튼하다는 점을 보여주었다는 것입니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한국의 민주주의 발현과 민주적 회복 탄력성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사례”라고 말했습니다.

마르크 뤼터 나토(NATO) 사무총장도 “한국의 비상계엄 해제 발표는 법치에 대한 지속적인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한다”고 했으며, 유럽연합(EU)은 “민주주의와 인권, 법치주의에 대한 가치 공유를 기반으로 한 한국과의 긴밀한 전략적 파트너십을 재확인한다”고 밝히는 등 해외에서 우리 민주주의의 강한 회복 탄력성과 법치에 매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전쟁, 내란, 독재 등으로 시민들 삶이 고통을 받고 있지만 한국과 같은 회복 탄력성을 찾아 보기 힘듭니다.

한국 역사에서 민주주의 회복 탄력성은 이번 만이 아닙니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12년 장기집권과 부정선거에 국민들은 4·19 혁명으로 독재정권을 무너뜨렸습니다.

군부독재에 저항한 1980년 5·18 민주화운동과 1987년 6월 민주항쟁, 2016년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농단에 따른 탄핵 역시 같은 맥락입니다. 그리고 그동안 잠자고 있었던 민주주의 회복 탄력성이 2024년 12·3 계엄에서 또 한번 들판의 불길처럼 되살아났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민주주의 위기 때마다 특유의 강한 회복 탄력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김수영 시인의 ‘풀’ 한 부문입니다.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는 풀의 모습은 어려움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다시 일어서는 인간의 강인함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바람은 ‘독재권력’, 풀은 ‘국민’으로 비유돼 마치 이번 사태를 연상케 합니다.

지도자가 민의를 무시하고 권력을 휘두를 때마다 우리는 민주화를 향한 거대한 함성을 쏟아냈습니다. 때로는 실패와 미완성도 있었지만, 민주주의의 강한 회복 탄력성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을 것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은 이제 헌법재판소의 시간이 됐습니다. 현재가 민주주의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이진수 편집국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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