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피스트’가 판치는 세상이다
  • 손경호기자
‘소피스트’가 판치는 세상이다
  • 손경호기자
  • 승인 2024.12.26
  • 댓글 0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으로 대한민국이 혼란스럽다. 대통령 권한대행의 헌법재판관 임명 가능 여부, 대통령 권한대행 탄핵 가결 의결정족수 등등, 처음 겪는 상황을 놓고 다양한 주장들이 우후죽순처럼 배설되고 있다. 대통령 권한대행의 권한 행사 범위에 대해서는 헌법에도, 법률에도 명문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권한대행의 헌법재판관 임명은 7년 전인 2017년에 선례가 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으로 임기 만료된 헌법재판관을 황교안 권한대행이 임명한 사례이다. 그러나, 정치권은 손바닥 뒤집듯 당시 주장과 결이 다른 주장을 펴고 있다. 그때는 대통령 추천 몫이고, 이번은 국회 추천 몫이라는 것이다. 이번처럼 국회 추천 몫은 형식적 임명 절차로 현상유지적 권한 행사이기 때문에 권한대행이 반드시 임명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대통령은 크게 두 가지 지위를 가진다. 하나는 행정부 수반이고, 다른 하나는 국가를 대표하는 국가원수이다. 이와 관련해 ‘행정부 수반’에 따른 권한은 권한대행이 단독으로 행사할 수 있지만, 국민투표 부의권을 비롯해 전쟁권, 계엄권, 조약체결권, 헌법기관 구성권 등 ‘국가의 대표’로서의 권한은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권한대행이 단독으로 행사할 수 없다는 게 일부의 주장이다. 헌법재판관 임명 즉, 헌법기관 구성권은 국가 원수의 권한이기 때문에 권한대행은 행사할 수 없다는 주장이 나온다.

최근 일부 헌법학자가 궤변에 가까운 주장을 늘어놓았다. 권한대행이 국회 추천 몫 헌법재판관 임명을 거부하면 대통령이 임명한다는 헌법 111조2항 위반이고, 형법상으로는 직무 유기라는 주장을 했다. 그러면서 문재인 정부 때 임명돼 내년 4월 18일에 임기가 끝나는 문형배·이미선 재판관의 후임 재판관의 경우 대통령 몫이어서 대통령 권한대행은 임명권을 행사할 수 없다고 했다. 즉, 대통령 몫을 대통령 권한대행이 임명할 경우 적극적 권한행사가 된다는 논리를 편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논리는 전혀 수긍할 수 없는 ‘혹세무민’일 뿐이다. 대통령 권한대행이 현상유지적 권한 행사만 해야 한다면, 당장 전쟁이 나도 한덕수 권한대행은 군대에 명령을 내리는 군 통수권을 행사하면 안 된다는 주장이 된다. 따라서 권한대행은 대통령의 권한을 모두 행사하는 게 당연하다. 다만 국민으로부터 선출된 권력이 등장할 때까지 대통령 권한대행의 권한 행사는 최소화에 그치는 게 옳다고 본다.

따라서 국회가 대통령의 이러한 권한을 제한하려고 한다면 거부권 행사로 재의결해 통과한 법안처럼 대통령 공포와 상관없이 법률로 확정되도록 조처하면 된다. 즉, 국회 추천 몫의 경우 대통령이 임명하지 않을 시 즉시 또는 일정 기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임명되도록 하는 조항을 삽입하면 된다.

대통령 권한대행의 탄핵소추도 151석인지, 200석인지를 놓고 논란이 확산하고 있다. 국무총리 자격이라면 국회 재적의원의 과반인 151석이고, 대통령 권한대행의 신분이라면 재적의원의 2/3인 200석이기 때문이다. 야당 측은 대통령 권한대행이전의 일로 탄핵을 추진하니까 탄핵 의결 정족수는 151석이면 된다는 논리다. 그렇다면 재판 중인 인사가 대통령이 될 경우 대통령 이전의 범죄이기 때문에 재판이 계속 진행돼야 한다는 주장도 성립하게 될 것이다.

소피스트(sophist)는 그리스어로 ‘현자(賢者)’라는 뜻이 있다. 하지만,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 ‘궤변가(詭辯家)’라는 부정적 의미로 사용됐다. 그래서 ‘소피스트’라고 하면 궤변의 대명사처럼 사용되고 있다. 낯이 두꺼운 정치인들은 유불리에 따라 손바닥 뒤집듯 하더라도, 학자들이 궤변을 늘어놓는 소피스트로 전락하는 모습이 그저 참담하기만 하다.

손경호 서울취재본부장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