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학동에서 온 神仙, 선계로 돌아가다
  • 모용복선임기자
오학동에서 온 神仙, 선계로 돌아가다
  • 모용복선임기자
  • 승인 2022.04.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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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이외수 작가 벽오금학도
30년전 필자에 큰 영향 미쳐
작품활동·TV 예능에 출연 등
최근까지 대중적 인기도 누려
팔로어 170만 명 트통령으로
정치적 견해도 꾸준히 쏟아내
오학동으로 다시 돌아간 神仙
선계서 영원한 안식 누리길
그저께 아침 신문을 들고 현관문을 들어서는데 휴대폰을 보고 있던 아내가 말했다.

“여보, 이외수 씨가 죽었대요.”

“누가 죽었다고?”

“이외수 말이에요. 그 왜 당신이 평소에 말하던 소설가 있잖아요.”

내가 그랬었나?

기억을 더듬어보니 그와의 첫 대면은 약 3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누가 갖다 놓았는지 어느 날 책꽂이에 낯선 책 한권이 꽂혀 있었다.

‘벽오금학도’

표지부터가 맘에 들었다.

연노랑 바탕 위에 강과 언덕에 핀 꽃 한 그루. 그 위에 우뚝 솟은 산봉우리와 좌우에 구름 하나, 달 하나.

제목과 표지만 봐도 어떤 내용의 소설인지 대강 짐작이 갔다.

도가사상을 모티브로 한 이 소설은 당시 비운(非運)의 여류시인 허난설헌의 선계 시(詩)에 심취해 있던 필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벽오금학도(碧梧金鶴圖)는 그림을 일컫는다.

주인공 강은백이 어린시절 우연히 오학동이라는 선계를 다녀온 후 그곳에서 얻어온 그림을 가지고 평생 오학동으로 다시 돌아가기 위해 지난(至難)한 여정을 펼쳐가는 과정을 그린 소설이다.

이 소설 초입에 ‘서울이 폐렴을 앓고 있었다. 가을이 각혈을 하고 있었다’와 같은 현실 고발적인 문구가 나온다. 한국의 전통적 가치관이 무너져 가고 돈이 최고의 가치가 되어가는 사회에 대한 작가의 비판적 시선이 투영돼 있음은 한참 후에야 알았다.

솔직히 말하면 당시 나는 이러한 현실 비판적인 의미를 읽어내지 못했다. 그보다는 선(禪)적인 내용에 경도되어 있던 탓에 ‘편재’와 같은 알 듯 말 듯한 말에 더 집착이 갔다. 우주를 이루는 모든 것들이 합일이 된다는 편재사상은 한동안 화두가 되어 많은 날들을 나를 괴롭혔다.

그 후로 들개, 칼, 장수하늘소, 그리움도 화석이 된다, 하악하악 등 이외수 작가의 작품들은 소설이든 시집이든 에세이든 가리지 않고 찾아 읽었다. 그는 작품활동뿐 아니라 TV 예능프로나 광고를 통해서도 꾸준히 대중적인 인기를 누렸다. 트레이드 마크인 뒤로 묶은 긴 머리, 주름진 얼굴과 온화한 미소가 친근감 있게 다가왔다. 2006년 강원도 화천군 감성마을로 이주해 촌장으로 활동하면서 온·오프라인을 넘나들며 왕성한 활동을 이어갔다.

2019년엔 졸혼(卒婚)을 선언해 세간의 화제가 되기도 했다. 결혼한지 44년 만에, 그것도 70이 넘은 나이에 졸혼이라니. 근래 들어선 팔로어(follower) 170만 명을 거느린 트위터로 변신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촌철살인의 정치적 발언을 쏟아내며 ‘트위터 대통령’으로 불리기도 했다.

선생을 직접 대면한 적은 한 번도 없지만 청년기 격동의 세월을 지나는 동안 그의 작품들은 내 삶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그를 바라보는 시선은 다양하다. 생전에 트위터를 통해 정치적 비판발언을 노골적으로 쏟아낸 데 대해 좌편향적이라는 비판도 있었다. 감성마을 조성을 위한 지자체의 예산 지원과 고가의 가전제품 구입으로 사치스런 생활을 한다는 비난도 일었다. 하지만 그의 소설들은 학창시절 내게 문학탐구의 원동력이 되었으며, 주옥 같은 발언들은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창을 열어주었다.

그런 이외수 작가가 지난 25일 76세의 일기로 별세했다. 2014년 위암 수술을 받고 회복했다 2020년 다시 뇌출혈로 쓰러진 후 한 때 재활에 힘쓰며 삶에 대한 의지를 불태웠다. 하지만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의 마수(魔手)는 끝내 피하지 못했다. 올해 3월 초 코로나19 후유증으로 인한 폐렴으로 투병 중 운명을 달리한 것이다.

오학동에서 떠나와 속계(俗界)에서 한 세월 ‘존버’(힘겹게 버티다의 은어)로 지내다 다시 선계로 돌아간 이외수 선생. 지금 신선의 세계에서 푸른 오동나무 위를 금빛 학을 타고 옛 신선들과 마음껏 자유를 즐기시는지. 600여 년 세월을 거슬러 봉황을 타고 연꽃 위를 노니는 난설헌과도 만나시는지.

선계(仙界)에서의 영원한 안식을 빈다. 모용복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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