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식 반전시위
  • 모용복국장
졸업식 반전시위
  • 모용복국장
  • 승인 2024.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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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 권위와 명성을 자랑하는 하버드대 졸업식에서 우리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광경이 연출됐다. 지난 23일 미국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에 있는 하버드대 캠퍼스에서는 졸업생과 가족 등 90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졸업식이 열렸다. 졸업 행사 도중 학사복 위에 팔레스타인 전통 복식인 체크무니 천(카피예)을 두른 학생들이 ‘전쟁 반대’, ‘팔레스타인 해방’ 등 구호를 외치며 줄이어 행사장에서 퇴장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대학 당국이 캠퍼스 내 가자전쟁 반대 텐트 농성에 참여했던 학생 13명에게 졸업장을 수여하지 않기로 한 결정에 대한 항의 표시로 집단 퇴장을 감행한 것이다.

하버드대 측은 학생 13명이 텐트 농성 당시 학칙을 위반한 점이 드러나 학위를 수여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하버드대 학생 핸드북에 명시된 조항에는 ‘모범적(good standing)이지 않은 학생은 학위를 받을 수 없다’고 명시된 데 따른 조치다.

하버드대가 어떤 학교인가. 미국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에 있는 하버드대학교는 전세계에서 최고로 손꼽히는 명문 사립대학이다. 1636년에 설립된 하버드대는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교다. 명성과 역사에 걸맞게 도서관 규모도 세계 최고를 자랑한다.

어디 그뿐인가. 현재까지 졸업생과 교수를 포함해서 세계에서 가장 많은 157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또한 프랭클린 루즈벨트와 존 F. 케네디에 이르기까지 미국에서 가장 많은 총 7명의 미국 대통령, 36명의 퓰리처상 수상자, 미국에서 가장 많은 21명의 연방 대법원 대법관과 7명의 세계은행 총재, 세계에서 가장 많은 62명의 억만장자와 미국에서 가장 많은 335명의 로즈 장학생이 하버드를 졸업했다. 세계 각국에 포진한 하버드 유학파들로 인해 하버드 출신은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 지도층을 형성하고 있다.

전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인재들이 하버드대 진학을 위해 문을 두드린다. 그도 그럴 것이 이 학교를 졸업하면 학교든 기업이든 출세는 거의 ‘따논 당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대학에 어렵사리 입학해 힘들게 학업을 완수하고 마침내 영광스런 자리에 선 학생들. 축하를 위해 가족이나 지인들도 함께했을 터였다. 그러나 학생들은 졸업장(학위증) 대신 정의와 평화를 손에 들고 당당하게 졸업식장을 걸어나온 것이다.

하버드대와 함께 아이비리그에 속하는 명문대학인 예일대학교 졸업식에서도 학생들이 가자지구 전쟁에 반대하며 집단 퇴장하는 일이 일어났다. 20일 예일대학교 올드 캠퍼스 졸업식에서 피터 살로비 예일대 총장이 학위 수여식의 시작을 알리자 150여명의 학생들이 일제히 일어나 행사장을 빠져나왔다. 학생들은 ‘폭탄이 아닌 책’, ‘전쟁에서 철수하라’, ‘가자에는 졸업이 없다’ 등의 문구가 적힌 작은 현수막을 들거나 피투성이가 된 손을 상징하는 붉은색 라텍스 장갑을 착용하고 있었다.

이들뿐 아니라 미국 내 상당수 대학들이 졸업식이에서 반전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앞서 지난 12일 열린 듀크대 졸업식에서는 약 40명의 학생이 집단 퇴장했고, 버지니아커먼웰스대에서는 글렌 영킨 버지니아 주지사가 연설하는 동안 졸업생 60여 명이 퇴장했다. 캠퍼스 반전시위 신호탄을 쏘아올린 뉴욕 컬럼비아대는 ‘불상사’에 대비해 일찌감치 대학 전체 졸업식을 취소하고 단과대 개별 졸업식을 치르기도 했다.

물론 보수주의자(자칭) 눈에 비친 이들의 행동은 썩 좋게만 다가오지는 않는다. 신성한 졸업식 행사에서 단체로 불만을 표출하거나 집단 퇴장하는 행위는 학생 자신은 물론이거니와 이날까지 그를 있게 한 가족에게도 상처로 남을 수 있다. 자칫 학교로부터 불이익이라도 받는 날에는 지금까지의 공든 탑이 한순간에 무너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적인 이익보다 정의를 앞세워 실천을 행한 미국 학생들의 용기 있는 행동엔 박수를 보내야 한다. 이러한 미국의 가치와 용기가 오늘날 ‘살찐 돼지’처럼 문제투성이인 미국이란 나라를 세계 제1의 강대국으로 만들지 않았을까?

모용복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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