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월 최시형의 동학사상, 아이들 마음 속으로 스며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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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월 최시형의 동학사상, 아이들 마음 속으로 스며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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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4.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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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해월의 외손자 정순철 그리고 ‘졸업식노래’

정순철 선생, 짝짜꿍·여름비 등 작곡
졸업식 노래는 여전히 졸업 시기 불려

동학 2대 교주 해월 최시형 외손자로
1923년 소파 방정환과 계몽운동 앞장
동요 10곡 담은 ‘갈잎피리’ 발간 이후
1948년까지 어깨동무 등 40곡 작곡

해월 최시형, 근대질서 이행 큰 역할
오랜 도피생활 끝에 끝내 교수형 당해

해월의 딸이자 정순철 모친인 최윤은
일제때 동학성지 용담정 지키며 수련
충북 옥천군 청산면 교평리 정순철 거리의 벽화.
충북 옥천군 청산면 교평리 정순철 거리의 벽화.
‘세상을 뒤흔들 동학이 온다’ 우리시대 지성인 도올 김용옥이 ‘동경대전’ 해설서를 펴내고 한 말이다. 동학은 1860년 수운 최제우(崔濟愚)가 창도한 한국 근대의 신종교이다. 수운 선생이 동학을 종교로 정립했다면 제2대 교주 해월 최시형(1827~1898)은 행동으로 정신을 실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해월 선생은 외가인 경주에서 태어났지만 성장하고 활동한 곳은 포항 신광면과 흥해지역으로 신광면 마북리, 기일리, 검등골과 흥해읍 매산 일대이다. 는 동학정신의 뜻을 기리고 해월 최시형 선생의 역사적 가치를 재조명해 지역 관광 자원화의 길을 열고자 한다. 김상조 역사문화답사가가 선생이 살았던 역사적 장소를 찾아 첫번째 ‘해월 최시형 선생 관광자원화 마중물’에 이어 계속 연재한다.

해월 최시형 선생.
해월 최시형 선생.

2. 해월의 외손자 정순철 그리고 ‘졸업식노래’

‘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언니께/ 꽃다발을 한 아름 선사합니다/ 물려받은 책으로 공부를 하며/ 우리는 언니 뒤를 따르렵니다’

지금도 초등학교 졸업식장에 가보면 ‘졸업식노래’가 강당에 울러 퍼진다. 그 때를 기억하는 우리 국민 누구나 곡조를 잊지 않고 있다고 본다. 그런데 이 노래를 누가 어떻게 작곡 했는지에 대한 대답은 대부분 하질 못한다.

누가 작곡했을까? 이름만 밝힌다면 작곡가 ‘정순철’이란 분이다. 그가 작곡한 노래는 지금도 어린이들 사이에 곧잘 불려진다.

정순철 선생.
정순철 선생.

대표적으로는 ‘짝짜꿍’ ‘까치야’ ‘여름비’ ‘나뭇잎배’ ‘갈잎피리’ ‘아기별’ ‘시골밤’ 등이 손꼽힌다. 그러나 2000년대 이전까지는 누가 작곡한 노래인지는 아무도 선뜻 대답못했다.

정순철은 누구인가. 그는 1901년 충북 옥천군 청산면에서 태어난다. 일제강점기 1920~30년대 윤극영, 박태준, 홍난파와 함께 4대 작곡가로 손꼽힌다.

어린이날을 만든 소파 방정환과는 일본 유학 동기생이다. 유학을 마친 두 사람은 색동회를 발족하고 어린이 계몽운동에 앞장선다. 독립 후 성신여고 등지에서 교사로 근무한다. 그러나 1950년 한국전 발발 직후 실종된다.

이후 그의 연보는 끊긴다. 전후 납북, 월북을 가리지 않고 사라진 인사들에 대해 쉬쉬하던 시절 이름과 행적은 잊혀졌다. 좌·우익 대립이 극한으로 치닫던 근대사가 지워버린 것이다.

지금까지 그의 곡이 모두 작곡 미상이 된 연유다. 아니 시대상이 그를 알려고 하지 않았던 건지도 모른다,


그가 우리 역사에서 되살아난 것은 60년 세월이 흐른 뒤였다. 시 ‘접시꽃 당신’으로 유명한 도종환 시인(전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의 발품 덕분이었다. 정순철의 태생지 청산중학 교사로 근무하던 시인이 그의 족적을 찾아낸 것이다.

충북 옥천군 청산면 교평리 정순철 거리의 벽화.
충북 옥천군 청산면 교평리 정순철 거리의 벽화.

그 이전 한국전 당시 실종 또는 납북 인사에 대한 접근은 그리 쉽지 않았다. 하지만 시인은 그에게서 엄청난 역사적 가치를 발견했다. 그가 동학의 2대 교주 해월 최시형 선생의 외손자였던 것이다.

해월은 동학사상의 전국 포덕으로 조선이 전통질서에서 근대질서로 이행하는데 큰 역할을 한 인물이다. 후손을 만나고 족보를 훑어가며 연구한 결과는 2011년 ‘정순철평전’으로 집대성된다.

정순철은 해월의 외손자로 태어나 어린이 계몽운동과 동요 작곡가로 살았던 실존 인물이다. 기구한 그의 탄생과 운명은 목숨 걸고 동학 포덕에 힘써 온 해월의 도피여정과 관련 지워진다. 관의 지목을 피해 오랜 도피 생활에 지친 해월은 1893년 8월 청산 현 문바위 골로 숨어든다.

오늘날 충북 옥천군 청산면 한곡리다. 관군이 들이닥친 시기는 그 해 11월 6일이었다. 해월은 다행히 도피에 성공한다. 하지만 함께 지내던 딸 최윤은 민보단에 붙잡혀 옥천관아에 투옥된다.

충북 옥천군 청산면 교평리 정순철 거리의 벽화.
충북 옥천군 청산면 교평리 정순철 거리의 벽화.

그리고 현감의 주선으로 관아의 아전(통인) 정주현과 혼인하게 된다. 두 사람 사이에 아들이 태어난다. 바로 정순철이다. 해월은 1898년 3월 원주에서 체포된다. 그리고 그해 6월 한양으로 압송돼 좌포도청(현 단성사 터)에서 교수형에 처해진다.

청산에서 보통학교를 다니다 그만두고 가출한 정순철은 옥천역에서 화물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간다. 이후 천도교 3대 교주 의암 손병희의 도움으로 1919년 보성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한다. 그리고 의암의 사위 방정환과 한 집에 살며 어린이 계몽운동을 시작한다.

충북 옥천군 청산면 교평리 정순철 거리의 담벼락에 쓰여진 ‘어린이 노래’
충북 옥천군 청산면 교평리 정순철 거리의 담벼락에 쓰여진 ‘어린이 노래’

첫 사업이 1921년 5월 1일 ‘천도교 소년회’ 발족이었다. 1923년 동경 음악학교 유학중에는 방정환과 함께 어린이 운동단체인 ‘색동회’를 창립한다. ‘색동회’는 월간

잡지 ‘어린이’를 창간하고 창작동요를 발표 보급한다. 그리고 ‘천도교 소년회’와 함께 그 해 5월 1일을 ‘어린이날’로 제정한다.

정순철은 1929년 동요 10곡이 담긴 작품집 ‘갈잎피리’를 펴낸다. 그 중 ‘우리 애기 행진곡’은 윤석중의 동시 ‘울든 애기 웃는다’에 곡을 붙인 동요로 이후 제목이 ‘짝짜꿍’이 된다. 1948년까지 그가 작곡한 동요는 ‘시골밤’ ‘아기별’ ‘어깨동무’ 등 40곡에 이른다.

모친 최윤은 1934년 봄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부친의 고향 경주로 귀향한다. 일제 강점기 내내 동학 성지인 용담정(경북 경주시 현곡면 구미산 자락)을 홀로 지키며 수련에 전념한다.

‘모든 사람이 한울을 모시고 있다’는 동학의 시천주를 몸소 실천한 것이다. 시천주는 인간은 누구나 평등하다는 평등주의에 기초한 사상이다. 이로써 당시 백성들에게 일제에 대한 저항정신을 심어 주었다. ‘용담 할매’로 불리며 용담정을 지키던 최윤은 77세를 일기로 1956년 파란만장한 일생을 마치게 된다.

 

김상조 역사문화답사가
김상조 역사문화답사가

 

글·사진=김상조 역사문화답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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