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점 국립대만 육성, 지역균형발전 해법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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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점 국립대만 육성, 지역균형발전 해법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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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4.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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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알려진 것처럼 문재인 정부 이후 지역 균형 발전을 목표로 거점 국립대학에 대한 정부 재정 지원이 많이 증가해 왔다. 대부분 수도권과 지방으로 구분해 지원되도록 설계돼 있는 정부 재정지원 사업의 구조로 인해 거점 국립대학들은 같은 지역에 소재한 사립대학들에 비해 그동안 수주 실적에서 높은 성과를 거뒀다. 전국 단위 사업단 선정에서는 수도권 유수 대학이, 지역단위 사업단 선정에서는 지역 거점 국립대학이 선정되는 것이 사실상 당연시되어 온 탓이다.

◇‘지역마다 서울대 만들기→거점국립대 집중 육성’ 타당한가

사립대학과 대비할 때 국립대학의 역할과 존재 이유는 흔히 저소득층 등 상대적으로 열악한 처지에 있는 학생들에게 고등교육 기회를 균등하게 제공하는 것, 그리고 초기 투자 비용이 많이 드는 기초학문 분야의 육성과 평생·직업교육 등 사회적으로 필요하지만 시장에 맡겨 둬서는 적정한 수준의 서비스가 제공되기 어려운 교육 서비스의 공급에 있다고 본다.

수도권 집중의 폐해가 날로 심화해 지역 균형 발전을 위한 정부의 적극적 역할이 요청되는 상황 속에서, 최근에는 심지어 ‘국가가 나서서 지역마다 서울대를 하나씩 만들어야 한다’는 정치적 구호까지 나온다. 이는 현실적으로 ‘지역마다 하나씩 있는 거점 국립대학을 집중 육성할 필요가 있다’는 논리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논리는 과연 타당한 것일까.

경제학에서는 인간(혹은 이들의 집단인 조직)을 자기 이익 극대화를 추구하는 행위자(utility maximizer)로 가정한다. 대부분의 인간은 공익보다는 사익을 우선시한다는 이야기이다.

물론 개인적 이익과 상관없이 자신의 신념에 따라 공익을 위해 행동하는 사람들도 있다. 국정 농단을 막기 위해 광화문에 모였던 촛불 시민들, 승진이나 돈벌이와 상관없이 교육과 봉사에 헌신하는 일부 교수들이 그 예다.

하지만 근대 사회 이후 경제학이 사회 운영을 설명하는 가장 강력한 이론 체계로 자리매김해 왔다는 점을 감안해 본다면, 인간의 속성과 행위를 이해하는데 가장 적절한 관점은 역시 이익 추구자로서의 인간이 아닌가 한다.

◇설립 유형보다 효과적인 인센티브·페널티 체계 구축 더 중요

국립대학은 사립대학과는 달리 정부 조직으로서의 성격을 갖고, 구성원은 공무원의 지위를 가진다. 이에 따라 국립대학은 대부분의 지역 사립대학과는 달리 최소한 존폐 자체를 고민하는 경우는 드물다. 위기의식이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에 사립대학에 비해 구성원이 위기를 극복해야겠다는 절박한 의지와 노력도 상대적으로 적을 가능성이 크다.

이른바 경제학에서 말하는 ‘정부(공공 부문)의 실패’가 발생할 수도 있는 것이다. ‘시장(사립대학)의 실패’ 때문에 역할이 강조되고 있는, 공조직으로서 국립대학에도 내재적 한계가 있다는 것을 명확히 알 수 있다.

따라서 대학들에 정부가 기대하는 공익적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설립 유형(국립 vs 사립)보다는 적절한 인센티브나 페널티 체계 구축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할 수 있을 것인가의 문제가 훨씬 중요하다는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국립대학 구성원도 결국 경제학에서 통상적으로 상정하는 이익 극대화를 추구하는 일반적 행위자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절박한 위기의식 적은 국립대, 공공적 역할 더 잘 할 수 있을까

한편 필자의 그간 경험을 통해 보더라도, 절박한 위기의식을 갖고 있는 사립대학에 비해 국립대학이 공공적 역할을 보다 잘 수행할 것이라는 주장은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필자는 과거 노무현, 이명박 정부에서 추진됐던 ‘국립대학 통폐합 지원 사업’의 성과와 문제점을 평가하는 연구를 수행한 적이 있다. 이 당시 정부는 통합을 전제로 국립대학에 많은 재정적 지원을 제공했다. 물론 통합된 대학들에는 통합 후 규모의 경제로 인한 교육 연구 지표의 개선 등 긍정적 효과가 나타난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이와 함께 정책 일관성 문제와 체계적 모니터링과 평가 기제의 부재로 나타난 부작용도 적지 않았다. 이른바 하나의 문제가 사라지자, 또 다른 문제점이 나타나는 ‘문제 발생의 악순환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특히 통합 후 상대적으로 열악한 지역에 위치한 제2, 제3캠퍼스들 중 일부 캠퍼스에서는 이른바 ‘공동화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수업이 있는 학기 중이나 주중이 아니면 학생도 교수도 없는 공동묘지 같은 불 꺼진 캠퍼스가 생겨난 것이다.

물론 문제를 알면서도 해법은 찾기 힘들었다. 과거와 비교할 때 사실 커다란 상황 변화가 있다고 보기 힘든 현시점에서, 국립대학을 대상으로 유사한 방식으로 통합을 시행하는 경우 이런 문제점이 또다시 생겨나지 않으리란 보장이 있을까. 정부의 고민이 필요한 지점이다.

◇국립대도 ‘돈 되는 학과’ 설립…‘국립이라 더 지원’ 타당성 떨어져

필자는 지역균형발전이라는 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굳이 국립대학에‘만’ 중요한 역할을 부여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복지예산과 국방 예산이 천문학적으로 늘어갈 것으로 예상되는 현시점에서, 일각에서 나오는 ‘정부가 주도해 지역 거점 국립대학을 서울대로 만들자’라는 주장도 포퓰리즘에 기반한 단순한 정치적 구호에 불과하다고 본다.

지역 거점 국립대학의 모든 학과를 최고의 수준으로 만들겠다는 허황한 목표보다는, 과거 지역별 특성화 공대 육성 지원사업처럼 지역에 특화된 소수의 학문 분야(예를 들어 경북대 전자공학, 전남대 기계공학)를 전국 수준으로 만들어 지역발전을 견인해 나갈 수 있게 하겠다는 목표 설정이 훨씬 더 타당하고 현실적이다.

해방 후 짧은 기간의 압축적 고등교육 팽창의 유산으로 우리나라의 국립과 사립대학은 미국의 경우와는 달리 상당히 유사한 학과 구성을 가고 있다. 예를 들어 소위 ‘돈벌이가 되는’ 학과(예를 들어 경영대)는 국립대학이든 사립대학이든 모두 설립돼 있다. 미국의 경우 국·사립대학 간 역할 구분에 대한 논의는 바로 학과(학문 계열) 구성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이런 점을 감안한다면 현시점 한국 사회에서 지역 거점 국립대학이 단순히 국립대이기 때문에 사립대에 비해 정부가 요구하는 공공적 역할을 더 잘 수행할 수 있다거나, 이를 위해 지원을 더 받아야 한다는 주장은 타당성이 현저히 떨어져 보인다.

시장에 맡겨 둘 경우 과소 생산이 예상돼 국립대학이 수행하는 것이 보다 효과적인 최소한의 영역(예를 들어 기초학문 분야)을 제외한 다른 대부분의 학문 영역에서는, 지역발전을 위해 효과적이기만 하다면 국·사립이라는 설립 유형보다는 학과 차원의 경쟁을 붙여 더 잘하는 학과나 대학을 지원하는 것이 훨씬 타당해 보인다. 우리의 경험을 통해 볼 때 역시 목마른 사람이 샘을 더 잘 파게 돼 있다.

변기용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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