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전 대통령의 대선자금 `양심선언’은 아마도 사실일 것이다. 특히 “김 총재가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 뒤 `적어도 4000억~5000억 원은 들지 않겠습니까’라고 했다”는 증언과, “금진호 전 상공부 장관과 이원조 의원을 김 총재에게 소개시켜주고 이들을 통해 2000억 원을, 대선 막판 김 후보측 긴급 요청에 따라 직접 1000억 원을 지원했다”는 내용은 매우 구체적이다.
5·6공 당시 청와대가 정치자금을 총괄해 여당은 물론 야당에도 이를 공급해온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노 전 대통령도 “5·6공 시절 정치자금 창구는 청와대로 단일화돼 있었으며 내 재임 시 여당 정치자금 대부분은 대기업들로부터 충당해왔다”고 공개했다. 특히 청와대에서 여야영수회담이 열리면 청와대가 야당 당수에게 상당한 `비자금’을 전달하는 것은 일종의 관행이었다.
문제는 노 전 대통령이 자신과 김영삼 전 대통령의 대선자금에 관해서는 시시콜콜 까발렸는데도 불구하고 김대중 당시 야당 당수에 대한 내용에 대해서는 `벙어리’ 행세를 했다는 점이다. 더구나 YS에 대한 `모욕적’인 내용을 서슴지 않고 담았다. “대선 막바지 1000억 원을 보내줬더니 김영삼 후보가 한밤중에 전화를 걸어 `이제 살았습니다. 고맙습니다’라고 감사 인사를 했다”는 회고가 대표적이다.
반면 DJ에 대해서는 “수없는 난경(難境)을 겪으며 얻은 경험이 몸에 배어 있었다. 관찰력이 예리한 것은 물론이고 상대방 얘기를 한 대목도 놓치지 않았다.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고 극찬했다. 심지어 1988년 서경원의 밀입북을 DJ가 사전에 알았고, 여비까지 지원했다는 사실을 알고도 `정치적 파장 때문에 눈을 감았다’는 내용까지 실었다. 그런 노 전 대통령이 YS에 대해서는 `나는 왜 김영삼 인간됨과 역사관을 오판했을까’ `진지한 면보다 권력을 향해 하나에서 열까지 투쟁하는 자세가 변함없었다”고 혹평했다.
노 전 대통령 회고록의 최대 결점은 그가 DJ에게 준 `비자금’에 대한 언급이 전무하다는 사실이다. 더구나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88년 `노태우 비자금’이 터져 나오자 북경을 방문중 갑자기 자기 입으로 “20억 원+α”를 노태우로부터 받았다고 고백했다. 그런데 돈을 준 노 전 대통령은 입을 싹 씻고 `모르쇠’다. 이에 대해 당시 노태우 비자금을 폭로한 박계동 전 의원은 “ `20억+α’ 의 알파가 200억일지 300억일지는 모른다”고 말했다. 노태우 회고록이 신뢰를 얻지 못하는 결정적 이유다.
전직 대통령 회고록은 의미가 크다. 국정경험을 있는 그대로 전수해 후임자와 국민들에게 교훈이 뒬 수 있기 때문이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지금이라도 진실을 밝히는 차원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이 고백한 `20억+α’를 사실 그대로 털어놓기 바란다. 그게 전직 대통령으로서 역사를 마주하는 올바른 자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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