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fe.org)
`저축은행’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 부산저축은행의 초대형 금융사기사건을 계기로 저축은행은 아예 `범죄의 온상’으로 낙인찍히고 말았다.
부산저축은행을 비롯해 삼화저축은행 등 상위랭킹의 저축은행이 무더기로 영업정지됐을 뿐만 아니라, 금감원 등 금융감독기관의 추악한 유착관계가 폭로됨으로써 저축은행은 “상대해선 안될 집단”으로 치부될 정도다.
그러나 저축은행보다 더 걱정되는 것은 정부다. 저축은행 금융사기사건이 터졌음에도 부정의 뿌리를 뽑기보다 저축은행 지원이니, 예금자 보호니, 배드뱅크 설립이니, 건설경기 부양이니 저축은행에 숨통을 터주는 대책만 요란하게 발표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축은행 구제예산도 천문학적이다. 배드뱅크 설립에만 무려 13조 원의 예산이 투입될 예정이다.
국민 혈세로 금융권 부실을 메꾸는 것도 문제이지만, 정부 정책의 가장 큰 문제는 경제 주체들에게 `부실과 잘못에 대한 면죄부’를 반복 학습시킨다는 것이다. 물론 정책의 취지는 좋다. 배드뱅크를 설립하고, 시간을 두고 정부가 부실채권을 정리해주고, 피해를 입은 예금자를 보호해주고, 건설사들을 도와주면 당장 시급한 과제를 해결할 수도 있다.
하지만 구제를 받은 은행들은 미래에도 무책임한 대출과 덩치부풀리기를 단행할 가능성이 있다. 또한 구제를 받은 예금자들은 금리가 낮더라도 안전하고 건전한 자산을 신중히 탐색하여 투자할 동기를 잃고, 또다시 맹목적으로 고금리, 고위험 예금에 돈을 맡길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잘못된 학습은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낳게 되고, 결국 국가 경제에 또다시 위기를 초래한다.
정부도 정부지만 국회가 부산저축은행 등의 예금 피해자에 대한 보상한도를 `2억 원’으로 하려다 비난여론이 빗발치자 `6000만 원’으로 함으로써 법을 깡그리 무시한 것도 이런 악순환을 조장하는 행위다. 법에 규정된 예금보상한도는 `5000만 원’이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이 국회의 `6000만 원 보상’을 “금융질서를 교란하고 재정 규율도 훼손하는 것”이라며 반대 하면서도 “성금 이외에는 다른 특별한 대안이 없는 것 같은 데 (피해 대책을) 더 생각해 보겠다”고 말한 것 역시 한심하기 짝이 없다. `국민성금’ 또한 세금과 다른없는 국민부담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금융사기와 방만 경영, 맹목적 투자로 야기된 문제들을 정부가 일일이 해결하다보면 무엇이 경쟁력있고, 무엇이 부실한지에 대한 가치관이 정립될 수 없다. `대마불사’ 정신으로 몸집 부풀리기에 바빴던 일부 대기업과 금융권이 1998년 IMF 위기를 초래한 교훈을 잊으면 안된다. 부실한 것이 망하는 것은 당연한데, 그것을 동정하는 정부의 선심이 오히려 국가 경제를 망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정부는 파탄에 이른 부실 은행과, 피해 예금주가 안타까워도 돕지 말아야 한다. 정부가 ` 면죄부’를 남발하면 또 다른 은행과 또 다른 국민에게 잘못된 기대를 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은행은 피와 살을 깎아낸다는 각오로 기존에 존재하던 모럴 해저드(Moral Hazard)를 뿌리뽑고, 경영을 투명하고 경쟁력 있게 해나가야 한다. 국내에서 꾸준히 경쟁력 있는 메가뱅크에 대한 논의가 나오고 있는 만큼 금융 4대지주의 저축은행 M&A 역시 적절한 방안이 될 수 있다. 어떻게 경쟁력을 제고할 수 있을지 은행 스스로 고민이 많이 필요한 시점이다. 또한 은행에 예금을 맡기는 예금주 또한 더 똑똑해질 필요가 있다.
어떤 예금이나 펀드 상품에 가입하기 전에, 단순히 금리만을 볼 것이 아니라 안전성이나 수익성이 어떤 방법으로 보장되고 운영되는지를 꼼꼼히 따지는 예금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은행은 신용 창조 과정을 통해 경제에 숨을 불어넣는 중요한 기능을 한다. 하지만 그 과정은 필연적으로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돈을 필요로 하고, 몇 년 전 전 세계가 경험했던 것처럼 은행의 신용 붕괴는 엄청난 위험을 파생한다.
그런 만큼 이제 우리는 은행이 담보하는 `신용이라는 자산’에 더 엄격한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이번 저축은행 사태의 책임에 대한 면죄부 역시, 누구도 허락한 적 없는, 허락해서는 안 될 면죄부이다. 은행이 시장을 가장 두려워하는, 그들이 면죄부를 가볍게 여기지 않는 사회를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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