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이웃
  • 경북도민일보
또 하나의 이웃
  • 경북도민일보
  • 승인 2024.09.0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내가 살고 있는 울산 동구에는 외국인 노동자가 많이 있다. 주방용품 가게를 운영하고 있어 나는 다문화 가족을 자주 접한다. 상가에서 처음 진과 이웃이 될 때가 생각난다.

옆 가게 수선집의 주인이 바뀌었는데, 새로 오게 될 주인이 베트남에서 온 이주 여성이라고 했다. 통로를 마주 보고 있어 속으로 걱정이 되었다.

전에 하던 수선집 주인도 손님들과 이런저런 문제로 언쟁하는 것을 보곤 했었다. 그런데 우리말이 서툴러, 세밀한 부분까지 이해가 필요한 옷 수선을 베트남 새댁이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우려가 앞섰다.

회사복을 입은 아저씨가 아까부터 가게 앞을 왔다 갔다 하더니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여기 수선집이 어디 있능교?”

수선집을 묻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시장의 복잡한 상가라 처음 오는 이들은 수선집을 찾지 못해 물어본다. 베트남에서 시집온 진의 수선집을 가르쳐 주었다.

진은 올해 결혼 6년 차다. 자동차 관련 회사에 근무하는 남편을 만나 이곳 울산에 살게 되었다.

수선집은 서너 달이 지나고 자리가 잡히자 일감이 밀리기 시작하였다. 손님들과 얼마나 친밀한지 옷 수선을 안 해도 시장에 오면 먹거리를 사서 주고 가는 이가 여럿이었다. 한번 다녀간 손님은 주변 사람들한테 소개해서 좁은 가게에 일거리가 수북이 쌓여 있다.

우리말도 잘하고 꼼꼼하게 바느질을 해서 손님들 마음에 흡족하도록 옷 수선을 해주니 일감이 밀려서 얼마 전부터는 일하는 사람을 두게 되었다. 진과 같이 베트남에서 시집온 이주 여성이다.

결혼 전까지 베트남에서 양장점을 했다는 진은 정말 솜씨가 좋다. 까다로운 손님들의 요구를 다 만족시킬 만큼 옷 수선을 잘하니 우리 상가에서 제일 바쁜 곳이 진의 수선집이다.

몇 년 전 베트남을 여행할 때에 주민들의 순수함이 눈에 담겼었다. 그래서 이웃사촌이 된 진이 왠지 남 같지 않아 상가에 잘 적응하도록 도움을 주고 싶었다. 진이 스스로 노력하며 열심히 일하는 모습에 상인들도 인정하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지금은 이주 여성이라기보다 우리와 다름없는 이웃 사람 같고 손님들도 그리 생각하는 것 같았다.

설이 지나고 며칠 후 진의 가게에 안내문이 붙었다. 8일 동안 가게 문을 닫는다는 내용이었다. 친정 나들이를 가게 된 것이다.

진이 베트남에 가서 부모 형제를 만나 행복해하는 모습이 눈에 아른거렸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했는데 며칠 동안이었지만 오며 가며 가게 문이 닫힌 진의 수선집을 보니 진의 생각이 많이 났다.

내가 통로를 지나다닐 때면, 비염 때문에 마스크를 쓰고 재봉틀에 앉아 있는 진은 어디 가느냐며 눈으로 묻곤 했다. 그때마다 수신호로 화장실이나 마트 쪽의 방향을 알려주며 눈을 맞추는 것이 즐거웠다. 진의 순박한 눈에는 깊은 소리가 담겨있다. 가슴에서부터 눈빛으로 길어 올리는 진실함이다. 이웃 사람들과 손님들의 말을 늘 경청하며 성의껏 대하는 모습이 신뢰감을 주기 때문이다.

진도 처음에는 많은 고생을 했다고 한다. 한국말을 할 수도 없고 알아들을 수 없어 눈물만 흘렸다고 한다. 주변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과 문화 차이로 우울증을 앓기도 했었다. 잘살아 보려고 한국에 시집 왔는데 이렇게 주저앉으면 안 된다고, 베트남에 계신 친정 부모님을 생각해야 한다고 마음을 추슬렀다고 한다.

우리말을 배울 수 있는 다문화 지원센터를 찾아가서 한국어 공부를 하고 김치 담그는 법과 제사 음식 등 생활에 필요한 여러 가지를 배우고 익혔다. 노력을 하다 보니 어느새 한국말이 들리고 대화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진은 친정에 다녀온 후 다시 가게 문을 열었다.

“잘 다녀왔어? 부모님이 얼마나 좋아하셨을까? 진 얼굴이 훤해졌네!”

“이모, 베트남 갔더니 울산 생각만 나고 오고 싶어 혼났어.”

빨리 오고 싶었다는 진의 말에 나는 웃음을 쏟아냈다.

친정에 가니 처음에는 좋았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가게 손님이 생각나고 울산에 빨리 오고 싶어 자기 고향이 울산인 거 같았다고 말을 했다. 그래서 내년 남편 휴가 때는 베트남에서 친정 부모님이 오시기로 했다고 자랑을 했다.

결혼 이주민인 그들이 노력하는 만큼, 우리 사회와 이웃이 배려해주고 이해해야 한다는 마음이 든다. 지역사회의 일원이 될 수 있도록 많이 도울 생각이다. 사람살이는 함께할 때 더 따뜻하니까.

상가 번영회에서는 단풍이 만발한 시월에 야유회를 갈 예정이다. 수선집의 진도 함께 가기로 했다. 예쁜 단풍나무 아래서 진과 사진도 찍고, 진이 자주 흥얼거리는 ‘만남’ 노래도 부르고 싶다.

김금만 수필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최신기사
  • 경북 포항시 남구 중앙로 66-1번지 경북도민일보
  • 대표전화 : 054-283-8100
  • 팩스 : 054-283-5335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병희 부국장
  • 법인명 : 경북도민일보(주)
  • 제호 : 경북도민일보
  • 등록번호 : 경북 가 00003
  • 인터넷 등록번호 : 경북 아 00716
  • 등록일 : 2004-03-24
  • 발행일 : 2004-03-30
  • 발행인 : 박세환
  • 편집인 : 정상호
  • 대표이사 : 김찬수
  • 경북도민일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북도민일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HiDominNews@hidomin.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