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나라들의 선조가 겪은 고통을 복사한 것이라 해도 괜찮을 기록을 하나 찾아냈다.“그 배의 화물은 미국 대륙으로 옮겨지는 505명의 흑인 남녀로서,17일 동안 505명이 죽어 바다 속에 버려졌다고 한다.그들은 모두 갑판 안의 철창 속에 빽빽이 처박혀 있었으며 밤이나 낮이나 누울 수도,자리를 바꿀 수조차 없었다.그들의 몸에는 마치 양과 같이 여러가지 형태의 소유주 낙관이 찍혀있었다.” 1829년 남대서양에서 상선을 만난 영국군함 승무원 하나가 남긴 기록이다. 이렇게 신대륙에 끌려간 아프리가 노예가 16세기 이후 960만명이라고 한다.
루소의 `사회계약론’엔 이런 대목도 있다.“노예는 쇠사슬에 매여 있으면서 쇠사슬에서 이탈해 보려는 욕망마저 잃고 있다.힘이 비로소 노예를 만들어 내고,노예들의 무기력이 노예라는 것을 항구화한 것이다.”
경북 상주시 만산동에 있는 양계장에서 무려 18년 동안이나 노예와 다름없는 대접을 받아가며 살아온 장애인 부부가 있다고 장애우 권익문제 연구소가 진정해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고 한다.이 부부는 월급 15만원을 받기로 하고 취직했으나 이제껏 한푼도 못받은데다 정부가 주는 생계수당과 장애연금도 모두 가로채였다는 것이다.이 부부는 하루 15시간 닭똥을 치우며 노예와 다름없는 삶을 꾸려왔다고 한다.
물론 양계장 주인은 이같은 주장에 대해 펄펄뛰고 있다.
이런 이야기는 멀리 떨어진 섬에서나 있는 줄 알았더니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다.가까운 상주시내에 현대판 노예가 있다니 씁쓸하다.그것도 장애우 부부라니 더욱 그렇다.
/김용언 논설위원 kim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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