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현충일이 오면 한 번쯤 선열들을 생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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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현충일이 오면 한 번쯤 선열들을 생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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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6.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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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옥근/의학박사
 
 
 필자는 초등학교 4 학년 때 6·25의 비극을 맞았다. 당시는 초등학교마다 매일 아침 전교 학생들이 운동장에 모인 가운데 조회를 한다. 그 조회시간에는 어김없이 애국가가 나오고, 이어 고려의 마지막 충신 포은 정몽주 선생의 시인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번 고쳐죽어/ 백골이 진토되여 넋이라도 있고 없고/ 임 향한 일편단심 변할 줄이 있으랴’ `일편담심’가다. 교실마다 스피커를 통해 듣게 된다. 그때 어린 우리들은 정몽주의 그 심오한 단심가를 알 턱이 없고 그가 누구인지조차도 모를 때다. 아마도 충·효를 중시하는 이 민족 교육의 요체였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이조때부터 유교사상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거기에 뿌리를 둔 소위 군·사·부 일체가 만들어 놓은 또 하나의 도그마(Dogma)와 같은 것이다. 이승만 시대에 반공반일이 국시가 되던 때나, 크게 별 다를바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요즘엔 그런 교육을 시키는 선생님도 배우는 학생도 없다. 인간이란 무언가 필요해야 비로서 움직여 구하는 동물적 본능이 있기 때문이다. 애국심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그간 70~80년대를 넘으면서 산업발달로 풍요속에 정신적으로 비교적 안정된 생활을 누렸다. 그러나 그때도 정권유지 차원에서 국민을 놀라게 한 일이 종종 일어났다. 이북의 `금강산댐’건설 소동이 한 예다. 당시 연일 TV에서는 북한이 금강산댐 물을 방류했을 때 서울에서 가장 높은 63빌딩이 물속에 잠기는 보도가 도표를 곁들여 연일 터져나오면서 실상을 모르는 국민은 불안해 밤잠을 설치기도 했다. 북한의 댐방류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 전 국민이 앞다퉈 방위성금을 내지 않았던가.
 애국심의 발로였다.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국민들을 우롱한 처사였는가. 각설하고 우리는 전쟁이 없는 사회에서 안정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요순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젊은이들은 이런 상태로 몇 년을 흘러가면 애국이 무슨 뜻인가도 모를 경우도 생길까 생각된다. 아직까지 잔영은 남아 있어도 해방된 지 어언 60년이 넘어 면서 우리민족을 말살시키려 했던 일본이 우리 의식 속에 적이라는 생각마져 잊혀져가고 있다.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로 이어지면서 차차 약독(藥毒)해진 주적의 계념이 사라져가니 뚜렸한 애국심도 빛바랜 옷처럼 우리 의식속에서 잊혀져가고 있는 것이리라. 필자가 말하는 애국심이란 자기 목숨을 바쳐 나라를 구한 선열들을 마음에 두고 하는 말이다.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 필자는 6월 현충일을 맞으면 도산 안창호 선생을 생각한다. “밥을 먹는 것도 대한의 독립을 위해서요, 잠을 자는 것도 대한의 독립을 위해서다” 당시 경성지방법원 검사의 심문에서 한 말이다. 어찌 안창호 선생 뿐이랴. 오산학교를 설립하고 교육운동과 독립운동에 투신했던 남강 이승훈 선생도 3·1절 독립만세를 나흘 앞두고 가진 독립선언서 서명에서 관중속을 헤치고 먼저 서명하는 애국심을 발휘했다. `나라가 없고서 일가와 일신이 있을 수 없고 민족이 천대를 받을 때에 나 혼자 영광을 누릴 수 없다’는 정신에서 독립운동을 한 것이다. 오늘의 복된 삶은 자기 몸을 분토(糞土)같이 여기고 나라를 지켰던 우리 선열들의 덕이 아니겠는가. 인간의 최고의 도덕이 애국심이라고 나폴레옹은 말했다. 나라가 있을 때 나라를 지킬 수 있어야 나라를 가질 수 있는 국민이 된다. 요즘 물질만능시대에 젖어 살고 있는 우리 젊은이들은 6·25를 겪지 않아서 공산당 아니 사회주의가 얼마나 허무맹랑하고 무서운 줄을 모른다.
 필자는 그런 젊은이들에게 이념교육대신에 국비를 부담해서라도 이북에 보내 한 두달 살게 한 후 돌아오도록 했으면 하는 생각을 가끔 한다. 몸으로 겪어보지 않고는 알 수가 없는 것이 사상교육이다. 6일은 현충일이다. 현충일이 되면 생각나는 사람들이 있다. 이미 이 나라를 구하고 지금은 유명을 달리한 선열들의 자손들이다. 대다수 독립운동가들은 당시 해외로 망명생활을 했다. 그래서 자식들을 가르치고 보살필 시간을 가질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로 인해 그들의 자손들은 지금 다른사람들보다 배우지 못하고 그래서 생활고를 겪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오직 나라사랑 일념으로 살다간 애국자들의 후손들이 이렇게 뒤쳐져 살아야 된다면 누가 자기 몸을 불살라 애국할 수 있겠는가.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독립운동가 후손들의 고된 삶을 재조명해 `양극화’현상을 해소하는데 우리 모두 나서야겠다.
 이것이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비원(悲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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