쓴 소주보다 더 쓰디 쓴 우리네 삶 담다
  • 이경관기자
쓴 소주보다 더 쓰디 쓴 우리네 삶 담다
  • 이경관기자
  • 승인 2016.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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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작가 팀피츠, 등장인물·배경 등 모든 소재
우리나라 작가보다 더 한국스러운 이야기 서술

[경북도민일보 = 이경관기자]  서로 이해가 안 돼 미칠 것 같은 한 가족의 역사가 펼쳐진다.
 미국작가 팀 피츠가 쓴 장편소설 ‘소주 클럽’.
 작가 팀 피츠는 등장인물에서부터 배경과 소재, 모든 것을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한국에서 끌어왔다. 미국인임에도 우리나라 작가보다 더 한국스러운 이야기를 소설에 담아낸다.
 “내 아버지가 오입쟁이에 알코올중독자에 거지같은 아비에 형편없는 부양자이지만 동시에 고기잡이의 대가이기도 했다네. 수많은 결점을 만회할 장점도 많은 양반이지. 아버지는 바다의 예술가라네. 뭐, 정신 나간 천재일 순 있지만 어쨌거나 천재는 천재지.”(256쪽)
 부산에 살고 있는 작가 ‘원호’는 황혼이혼을 하겠다고 소동을 벌이는 부모님 때문에 고향인 거제도로 호출을 당한다. 평생 버릇처럼 바람을 피워온 아버지지만 이번만큼은 어머니가 ‘확실한 증거’를 손에 넣어 무마가 쉽지 않다. 그들을 화해시키기 위해, 아니 예전처럼 ‘다시 서로 증오하며 함께 살 수 있도록 돌려놓기’ 위해 거제도를 찾은 원호 앞에는 뜻밖의 상황이 기다린다.
 이 작품을 가득 메우고 있는 것은 크고 작은 상처를 안은 채 자신이 원하는 삶 속에 조금씩 어긋나 있는 인간 군상이다. 가족과 주변 사람들인 그들은 삶의 현주소가 너무 달라 서로를 결코 이해할 수 없다. 그렇게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공존하고, 적대하면서도 동행한다. 하나같이 불완전한 그들이 한데 어울려 빚어내는 해프닝들이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짠하다.
 원호는 한국에 살면서 외국인 독자를 상대로 글을 쓰고 외국에서 책을 내는 작가로 스스로 특이한 형태의 ‘이주 노동자’라 일컫는다.

 아버지는 ‘오입쟁이에 알코올중독자에 거지같은 아비에 형편없는 부양자’로, 바다에만 나가면 ‘천재’가 되는 어부였지만, 이제는 늙어 물러난 뒤 친구들과 밤낮 술판만 벌리고 있다.
 어머니는 요리로 사람들을 걷어먹이지 않으면 못 견디는 사람이다. 심지어 결별을 작정한 남편의 끼니마저 그녀에겐 커다란 걱정거리다.
 형은 다리 부상으로 미래가 꺾여버린 왕년의 축구선수고 여동생은 미국에서 흘러들어온 백인 영어 강사와 결혼한 ‘성형 미인’이다.
 이 가족의 공통점은 서로 상처를 주고 서로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특히 아버지는 주변에 가장 많은 상처를 안기고 주변을 가장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주인공 원호는 가장 많이 상처받고 가장 심하게 오해받는 사람이다.
 그러나 원호는 노부부의 갈등 봉합은 젖혀둔 채 아버지의 소원부터 들어주어야 하는 처지가 된다. 은퇴한 어부인 아버지는 마지막 고기잡이를 아들과 함께, 그것도 독도에서 하겠다는 계획이다. 상황에 떠밀려 아버지의 ‘소주 클럽’ 일당과 함께 고기잡이 배에 오른 원호는 그들에게 감춰진 목적이 있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된다.
 제목이기도한 ‘소주 클럽’은 줄기차게 소주를 마셔대는 아버지와 그의 주당 친구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작품에는 소주와 맥주, 어머니가 만든 막걸리 등이 등장해 계속 술냄새를 풍기고, 만두며 잡채며 전 등 한국 음식 냄새가 곳곳에 진동한다. 작품에서 술과 음식은 소품이 아니라 주요한 상징이자 스토리 전개의 중대한 지렛대로 작용한다. 아버지는 소주를 친구들과 마시며 “너도 이제 그 쓰레기 같은 것 좀 그만 마셔”라고 아들이 마시는 막걸리를 비난한다. 아들은 소주에 들어간 인공감미료에 병적인 혐오를 드러내며 어머니가 만든 막걸리를 마셔야만 속이 가라앉는다.
 이 소설은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이자 술과 음식의 이야기인 동시에 한 작가의 내면이 성숙해가는 과정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작품 속에서 작가로 등장하는 원호는 팀 피츠의 한국인 페르소나다. 원호의 회상과 독백을 통해 간간이 들려주는 창작의 과정, 문학과 작가들에 대한 언급 등은 작가 자신의 문학론으로 읽힌다.
 팀 피츠의 ‘소주 클럽’은 독도를 둘러싼 한일 간의 갈등 상황이 하나의 배경이 되고, 그 위에 수시로 한국 술과 음식이 그득한 상이 차려지고, 그 상 너머로 서로 다른 곳만 바라보는 가족의 스토리다. 이는 결국, 평범한 우리들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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