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해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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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해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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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2.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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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해 선생은 1927년 생이니 돌아 가신 아버지보다 2살이 많고 지금 92세로 살아 계신 어머니보다 4살이 많다. 그러니 선생은 96세로 세상을 떠난 것이다. 대략 나에게 큰 아버지뻘 정도 되는데 신기하게도 지금까지 그런 느낌이 든 적이 한 번도 없다. 친구나 형님 같다. 나뿐이 아니다. ‘전국노래자랑’에서 젊은 아낙네도 송해 선생을 오라버니라고 거침 없이 부른다. 이런 느낌이 드는 건 선생이 권위를 내세우기보다는 자기를 낮추었기 때문이었으리라.

송해 선생은 가수다. 북에서 음악전문학교에서 성악을 전공했고, 창공악극단에서 노래를 불렀다. 생애 12장의 앨범을 발표했다. 1967년에는 ‘돌아가는 삼각지’, 안개낀 장충단 공원’을 부른 배호와 함께 첫 가요 음반을 발매했다. 노래에 대한 사랑은 이어져 2018년에는 ‘딴따라’ 음반으로 국내 최고령 음반 발매 기록을 세웠고 1년 뒤에 앨범을 또 내어 기록을 갱신했다. 그렇지만 인기 가수는 아니었다. 삼각지와 장충단 공원을 지나다 보면 배호가 떠오르지만, 송해 선생은 애석하게도 사람들이 애창하는 히트송은 없었다.

코미디언이었고 영화와 TV에도 출연했다. 당시‘웃으면 복이 와요’는 온 가족이 모여 앉아 보는 프로였다. 서영춘, 구봉서, 배삼룡 등은 온 국민을 뒤집어 놓은 레전드였다. 하지만 어릴 때 서영춘, 구봉서, 배삼룡은 많이 봐서 기억에 각인되어 있는데 송해 선생은 다른 사람과 콤비를 이루어 만담하는 것 정도 기억에 어렴풋이 남아 있다. 선생은 코미디언의 레전드에는 끼지 못했던 것이다. 1963년에는 영화 ‘YMS 504의 수병’에 단역으로 출연했지만 이것조차 기억하는 사람은 없다.

선생은 인기 있는 라디오 진행자였다. 교통 라디오 방송에서 ‘가로수를 누비며’라는 프로그램을 1972년부터 1989년까지 17년간 진행했다. 하지만 진행 14년째에 외아들이 한남대교에서 교통사고로 숨지는 바람에 방송활동을 잠시 중단했다가 3년 뒤에는 완전히 하차했다. 교통 방송에서 ‘안전 운전 하세요’라는 멘트를 도저히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모처럼 적성에 맞아 인기를 누렸지만 불의의 사고로 그만 두게 된 것이다.

교통방송을 하차하던 때가 62세였다. 그 때까지 송해 선생의 삶은 화려했지만 그늘이 있는 삶이었다. 젊어서 월남하여 고향을 떠나왔고 잠시 이별인가 했는데 어머니와는 영영 이별이었다. ‘복희는 웁니다!’라고 외쳤던 그 복희가 송해의 본명이다. 앨범을 냈지만 히트친 게 없어서 선생을 가수로 알고 있는 사람도 많지 않았다. 코미디언도 했지만 서영춘, 구봉서, 배삼룡의 그늘에서 레전드 자리를 차지하지 못했다. 만담을 잘 하는 사람 정도였다고 할까. 그 만담을 이어가 ‘가로수를 누비며’에서 인기를 얻던 차에 외아들을 잃는 사고를 당해 스스로 그만 뒀다. 많은 재주가 있었지만 1등을 하는 재주는 하늘이 주지 않았다.

인생 후반부 출발도 화려하지는 않았다. 당시 저조한 시청률을 기록하던 ‘전국노래자랑’ 사회를 맡은 정도였다. 아들을 잃은 슬픔이 있던 차에 ‘그냥 전국을 떠돌아다니며 바람이나 쐬보시라’는 PD의 제안을 받아 들여 시작했다. 그 때가 우리나라 나이 61세, 환갑이었다. 라디오도 아니고 TV에서 환갑의 나이에 MC 자리를 맡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전국노래자랑’시청률이 워낙 낮았기에 시도해볼만한 일이었다.

선생도 받아 들이기 쉽지 않았으리라. 명색이 성악을 전공하고 앨범을 계속 낸 가수인데 시골을 돌아다니며 할머니 할아버지 노래 자랑 하는 데 사회를 봐야 하다니. 가수가 시골 노래자랑 마당에 나가 사회를 본다는 것은 자존심이 쉬이 허락하지 않는 일이다. 그리고 구봉서, 배삼룡 등과 코미디언을 하지 않았든가? ‘가로수를 누비며’에서 전국 라디오 시청자들을 즐겁게 해 준 그였다.

하지만, 수락했다. 세월이 흐르고 보니 이 프로그램이 송해 선생의 인생을 활짝 꽃피우게 했다. 각 분야의 1등은 하지 못하면서 여러 재주를 가진 게 ‘노래자랑’프로에서 빛을 내기 시작했다.

악극단에 있다 보니 반주도 잘 알고, 가수이다 보니 누구보다 노래를 잘 알기에 가끔씩 출연자들을 거들어주기도 했다. 만담 실력이 있으니 지방을 돌아다니며 예기치 않은 출연자들을 만날 때 기지를 발휘했다. 키가 작고 잘 생기지 않은 외모가 사람들을 편하게 해줬다. 그리하여 ‘전국노래자랑’프로를 밑바닥에서 최장수 인기 프로로 끌어올려 이제 다들 그 프로의 MC가 되고 싶어한다.

선생은 인생의 후반에 접어들면서 자신이 평생 갈고 닦았던 재주를 한 단계 낮추어 적용했다. 젊은 사람들이 가고 싶어 경쟁하는 자리가 아닌 낮은 자리로 갔다. 1등의 재주는 아니었지만 여러 재주가 융합되어 그게 오히려 빛을 발했다. 성경에 ‘자기를 낮추는 자가 높아지리라’는 말이 꼭 이러한 듯하다.

송해 선생은 죽을 때까지 ‘전국노래자랑’을 진행하겠다고 했는데 그 말을 지킨 셈이다. 길게 보면 1955년 창공악극단으로 데뷔한 이래 2022년 사망할 때까지 평생 현역이었다. 61세에 후반전을 시작해 35년을 뛰었다. 여기에는, 자신이 젊을 때 닦은 재주를 한 단계 낮은 곳에 활용하려 했고 나이 들어서도 권위를 내세우기보다 한결같이 자기를 낮추는 지혜가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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