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주말을 이용해 딸아이 병원 진료 차 서울에 간 적이 있다. 아침 일찍 포항에서 KTX를 타고 서울역에 내려 지하철을 탔다. 고려대학교 구로병원에 가기 위해선 지하철을 네 번이나 갈아타야 했다.
출근시간을 넘긴 때문인지 지하철 안은 비교적 한산했다. 그래도 빈 좌석은 없어 혹시라도 내릴 역을 놓칠 새라 문 출입구에 자리 잡고 주위를 둘러봤다. 자리에 앉은 사람도, 서 있는 사람도 누구 하나 타인에게 관심을 보이거나 시선을 주지 않는다. 누가 봐도 촌놈 티가 나는 내게도 눈길을 보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오직 손에 든 휴대폰에만 시선이 꽂혀 있을 뿐.
그런데 신기하게도 서 있는 사람 대부분 열차 내 손잡이를 잡지 않고 휴대폰을 열심히 보고 있었다. 유심히 관찰하니 열차의 흔들림에 따라 두 다리의 밸런스를 절묘하게 조절하고 있는 게 아닌가. 몸놀림이 너무나 자연스러워 감탄사를 삼켰다. 나도 그들을 따라 과감하게 손잡이를 놓아 보았다. 열차의 흔들림은 예상 외로 커서 이내 비틀거렸다. 특히나 열차가 정차했다 출발할 때는 쓰러질 뻔까지 했다. 오랜 지하철 탑승으로 체득된 경지였으니 초보인 내가 따라하기에는 역시 무리였다. 균형잡기 세계선수권대회가 열린다면 서울 사람들에겐 금메달은 ‘따논 당상’이다.
지난달 말 전임 편집국장이 갑작스럽게 자리를 옮기면서 뜻하지 않게 편집국을 책임지게 됐다. 전혀 준비가 안 된 상황에서 중책을 맡아 마음이 황망했다. 경영진의 강권에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음을 절감하고 머리도 식힐 겸 고향마을을 찾았다. 수몰로 지금은 저수지로 변했지만 그 곳에는 유년의 추억과 옛 사람들의 정이 서려 있다. 가끔 이 곳을 찾아 저수지를 바라보노라면 삶에 대한 희망과 용기가 생겨난다. 나는 다시 회사로 차를 몰았다.
어제 신문제작을 마치고 퇴근하려다 문득 사무실 안을 둘러봤다. 책상과 소파, 테이블 모두 옛 것 그대로인데 내 자신이 낯설게 느껴졌다. 외롭다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서 있는 이 큰 방이 내게 어울리는지, 앞으로 또 잘해나갈 수 있을지 걱정도 들었다. 그래도 모든 편집국 직원들이 신문에 대한 내 열정을 이해하고 잘 따라와 주고 있어 고맙게 생각한다.
나는 편집국장에 취임하자마자 많은 변화를 시도했다. 신문지면을 혁신하기 위해 섹션 헤드 디자인과 제목 스타일에 변화를 줬다. 또 아침 취재메모 작성을 없애고 매일 제작·편집회의를 부활시켰다. 효과는 컸다. ‘단기간에 신문이 달라졌다’는 말이 심심찮게 들리고 있다. 또 직원들 간에도 대화와 소통이 활발해지고 있음을 느낀다.
우리 아파트에 신문이 배달되는 시간은 새벽 5시. 나는 5시 30분께 1층 우편함에 꽂힌 신문을 가지러 간다. 신문에 대한 애정은 내가 생각해도 좀 지나친 면이 있다. 하지만 이러한 열정이 있었기에 호랑이 편집국장 밑에서 10여 년을 버틸 수 있었으며, 20년 전 신생 신문사를 반석 위에 올리는데 일조했다. 그리고 서울 사람들이 지하철에서 넘어지지 않고 휴대폰을 보고, 서당에서 자란 개가 풍월을 읊듯이 신문 만드는 흉내라도 내지 않을까?
모용복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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