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란 쿤데라 작품세계를 이해하는 열쇠 같은 책

‘납치된 서유럽’이란, 중앙 유럽이 유럽 정치, 사회와 문화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을 간과하여 서유럽 자체가 사라질 위험을 가리켜 쿤데라가 한 말로, 이는 세계사에서 주도적 위치에 있지 못하고 변방에 자리함으로써 늘 소멸 위기에 시달리는 중앙 유럽의 작은 국가들의 비극적 처지를 뜻하기도 한다. 체코어라는 비주류 언어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지만, 프랑스어로 번역, 출간되어 프랑스 망명의 기회를 잡고 프랑스어로 작품 활동을 하게 된 쿤데라는 지역의 한계를 넘지 못한 체코 문학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이 깊었다. 그리고 오랜 침체기 끝에 1960년에 이르러 부흥기를 맞은 체코 문화가 스탈린주의라는 또 다른 장애물에 의해 다시 파괴되는 것에 대해 깊은 분노를 느꼈다.
「문학과 약소민족들」에서 발견되는 이 같은 문제의식은 「납치된 서유럽」에서 유럽 통합과 세계화라는 거대한 통합을 향해 나아가던 서유럽과, 그들과 같은 역사적·문화적 뿌리를 공유함에도 외면당하는 중앙 유럽 약소국들의 운명으로 확장된다. 그는 소련의 탄압하에 언어와 문화가 위협받는 중앙 유럽 약소국들이 국가 정체성을 잃고, 결국 서구 세계마저 파괴될 것이라 호소하며 서구의 각성을 촉구한다.
『납치된 서유럽_혹은 중앙 유럽의 비극』에 실린 두 편의 에세이는 밀란 쿤데라가 발표 이후 한 번도 단행본에 포함시키지 않았던 것들로, 작가로서 그가 조국으로 택한 프랑스에서 갈리마르 출판사의 플레이아드 총서(작가의 전작을 싣는다.)를 펴냈을 때도 의도적으로 수록하지 않은 글들이다.
그러다가 수십 년 후인 2021년 11월 프랑스 갈리마르의 ‘데바 총서’로 출간되었는데, 공교롭게도 몇 개월 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일어나 사태를 예견한 그의 글들은 다시 한번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러시아의 집요한 서진 정책으로 근접한 국가들의 안보는 물론 세계 정치 경제까지 요동치는 현재, 『납치된 서유럽_혹은 중앙 유럽의 비극』은 우크라이나 사태를 이해하는 데 또 하나의 길을 제공한다.
또한 이 책은 쿤데라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는 데 열쇠와도 같은 책으로, 그중에서도 후기 작품들과 논픽션의 씨앗이 된 생각들을 엿볼 수 있어 작가를 사랑하는 독자들에게 기쁨을 선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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