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라왕’의 죽음
  • 모용복국장
‘빌라왕’의 죽음
  • 모용복국장
  • 승인 2022.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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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풍경
집은 안전자산이자 노후 수단
성인되면 내집 마련 뛰어들어
사회경험 부족한 청년 상대로
갭투자 전세사기 행각 벌여온
1139채 소유한 ‘빌라왕’ 사망
세입자들 전세 보증금 못받아
청년들 꿈 국가가 되찾아줘야
모용복 편집국장
모용복 편집국장
‘집 떠나면 고생’이라는 속담이 있다. 뭐니뭐니 해도 이 세상에서 집만큼 좋은 게 없다는 의미다. 이 짧은 옛 문장 속에 집에 대한 한국인의 사상(思想)이 농축돼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집에 대한 동경과 사랑은 현대에 와서도 축소되지 않았다. 불확실성의 시대에서 집은 안전한 자산이자 노후를 보장해 주는 중요한 수단으로 오히려 더욱 각광을 받고 있다. 한 사람의 일생동안 집은 반드시 해결해야 할 지상과업이다. 집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평생을 불안 속에 살아가야 하며, 자식들에게도 면(面)이 서지 않는다. 그래서 한국인들은 성인이 되자마자 가장 먼저 내 집 마련을 위한 각축전에 뛰어든다.

근래 들어 사회경험이 부족한 청년들을 상대로 전세사기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부동산 거래경험이 거의 없는 2030 청년들은 사기범들에게 좋은 먹잇감이다. 이들은 ‘영끌’로 마련한 청년들의 전 재산을 앗아갈 뿐만 아니라 한국인들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가치인 내 집 마련의 꿈까지 빼앗아 버리는 악랄한 범죄자들이다.

지난 10월께 청년들을 비롯한 수백 명의 전세보증금을 가로챈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던 ‘빌라왕’이라 불리는 42살 남성 김 모 씨가 피의자 조사를 앞두고 돌연 사망했다. 그는 신축빌라를 매입과 동시에 전세를 주고 건축주에게서 뒷돈을 받는 수법으로 별다른 자본금 없이도 빌라 수백 채를 사들인 뒤 세입자들에게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고 가로챈 것으로 알려졌다.

이 ‘빌라왕’은 무자본 갭투자를 이용해 수도권 일대에 무려 1139채를 사들여 임대사업에 이용했다. 무자본 갭투자는 기존의 갭투자와는 다소 차이가 있다. 건축주는 빌라를 빨리 처분하기 위해 집 가격에 분양대행사 및 임대사업자에게 줄 웃돈을 붙여 분양가격을 정한다. 임차인은 리베이트가 붙은 가격과 동일하게 전세금 액수를 낸다. 임대차계약이 이뤄진 뒤에는 이름만 빌려주는 명의대여자가 등장해 임대인과 거래가 이뤄진다. 세입자가 지불한 전세금은 명의대여자와 중개업자가 나눠 갖는다.

피해는 세입자가 전세 계약기간 만료 후 집을 나가면서 발생한다. 보증금이 공중분해 됐기 때문에 돌려받지 못하게 된 것이다. ‘빌라왕’이 2020년부터 올해까지 이러한 방식으로 수도권 일대 빌라와 오피스텔 등을 사들인 주택이 1139채(올해 6월 기준 보유)에 달한다. 피해자 대부분은 청년층이었다.

두 달이 지난 ‘빌라왕’의 사망이 다시 세간에 오르내리는 이유는 단지 그의 죽음이 슬퍼서가 아니다. 그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80여 명의 세입자들이 전세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해 애를 태우고 있다는 소식 때문이다.

통상적으로 대부분의 세입자는 전세금 보증보험에 가입해 집주인이 보증금 반환을 거부할 경우 임대차 계약 해지를 통보한다. 그러면 주택도시보증공사(HUG)는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대신 지급한 후 집주인을 상대로 구상권 행사를 한다.

그런데 문제는 임대인인 ‘빌라왕’의 사망으로 세입자들이 계약 해지를 통보할 사람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계약 해지 요건이 충족되지 못하면서 HUG도 대위 변제 절차를 밟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세입자들은 계약 해지도 못하고 HUG 보증금도 받을 수 없는 처지에 내몰리고 만 것이다.

세입자들의 딱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마침내 정부가 나서기로 했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그제 페이스북을 통해 “임대인이 사망했기 때문에 많은 피해자들이 살고 있는 집을 당장 비워줘야 하는 건 아닌지, 전세대출금을 바로 갚지 못해 신용불량자가 되는 것은 아닌지 충격과 혼란에 빠졌다는 소식을 접했다”면서 “서민들이 전세피해로 눈물 흘리지 않도록 정부가 나서 피해를 최소화 할 것”이라고 밝혔다.

수많은 서민을 울리고 내 집 마련 꿈을 빼앗은 ‘빌라왕’의 사기행각은 백 번 죽어 마땅하다. 다만 내 돈 한 푼 안들이고 1000여 채 주택을 사들인 교묘한 수법에는 혀를 내두를 지경이다. 이 겨울 수많은 청년들과 서민들이 보금자리를 잃지 않고 내 집 마련의 꿈을 포기하지 않도록 국가가 나서 해결방안을 찾는 게 급선무다. 모용복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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