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덕 포항시장
신흥동 도시재생 뉴딜사업
가장 낙후된 지역 가장 많은 변화 일으켜
주민에 의한 주민을 위한 주민 주도 사업
지속가능성 높이는 행정지원 뒷받침
인류 최초의 도시가 우리에게 남기는 말
우리는 언제부터, 왜 도시에 살았을까. 1950년대 후반 고고학계를 놀라게 한 최초의 도시가 발견되었다. 바로 기원전 7,500년에 건설된 이 도시는 차탈회위크(Catalhoyuk)이다. 이스탄불 대학교 교수이자 고고학자인 제임스 멜라르트(James Mellaart)에 의해 발견된 이 도시는 터키어로 ‘갈린 언덕(forked hill)’이라는 두 언덕 사이로 강이 흐르던 충적토 위에 건설된 신석기 시대 농업 도시였다. <길가메시 서사시(Gilgamesh Epoth)>에 등장하는 전설의 도시인 메소포타미아 문명 수메르의 도시 우루크(Uruk)보다 4,000년이나 앞선다. 차탈회위크가 주목받는 이유는 인류 최초 도시라는 상징성뿐만 아니라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와 너무나 닮아서이다. 비록 도시의 집들을 연결하는 길은 없지만, 흙벽돌로 건축한 집들은 밀집도가 높아 벌집처럼 보이는 연립주택에 천장을 구멍 뚫어 사다리로 출입했다. 지붕이 집들을 연결하는 길이자 환기시설이었다. 절정기에는 10,000명 이상이 살았고 2,000년 넘게 존재했다. 오하이오 주립 대학교 생물 인류학과 교수인 클라크 라센(Clark Larsen)은 이 도시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다. “차탈회위크와 유사한 도시 형태는 신석기 시대 전 세계적으로 일어났으며, 이것은 그들만의 소우주 건설과 같은 의미이다.”라고 밝혔다.
이들은 도시에서 멀지 않은 강을 이용해 농사를 지었고 넓지는 않지만, 가축을 키우기 위한 별도 공간을 두었다. 그런데 2,000년을 버텨온 완벽에 가까운 이 도시가 흔적만 남긴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오늘날 발견되는 도시의 흔적 대부분은 전쟁, 기근, 질병, 재해로 인해 멸망하였거나 이주해 떠나면서 세상에 드러난다. 도시는 한번 건설되면 번성과 쇠퇴를 거듭하고 후대를 이어 오늘날까지 지속하는 것이 예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도시 대부분은 과거부터 있었던 도시 위에 수많은 시간 동안 중첩적으로 건설된 것이다. 그런 이유에서 도시의 흔적은 좀처럼 발견되지 않는다. 그런데 차탈회위크를 멸망에 이르게 한 결정적인 단서는 기근과 스트레스 때문이었다. 클라크 라센(Clark Larsen)과 크리스토퍼 크누젤(Chrisopher Kn?sel)이 이끄는 연구팀이 이곳에서 발견한 유골을 분석한 결과 대부분 건강이 일시에 쇠퇴한 것으로 나타났다. 유목 사회보다 상대적으로 인구 밀도가 높은 농경 사회의 비좁은 생활환경이 원인이었다.
주거 밀도가 스트레스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라센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집들은 오늘날 우리가 도시에서 보는 것처럼 분리되어 있지 않다. 그들은 사실상 오늘날의 아파트와 같은 극도로 비좁은 공간에서 서로가 서로의 위에서 살고 있었다.”라고 주장한다. 집에 묻힌 유골 대부분은 벽돌이나 돌에 맞아 두개골이 함몰된 흔적이 나타나는데, 이들은 이웃과 밀집된 생활을 하면서 자원 경쟁이 심해지자 사회적 스트레스가 폭력을 촉발, 증가시킨 것으로 보인다. 특히 신체 다른 부위에 비해 무릎과 대퇴골이 많이 닳아 있어 물과 식량을 구하기 위해 점점 더 먼 거리로 이동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것으로 볼 때 차탈회위크는 생산력이 도시 규모를 감당할 수 없었고, 스트레스 때문에 집단 폭력이 일어나 자멸한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도시 쇠락의 원인은 9,000년이 지나도 같은 이유로 반복된다.
도시는 성장과 쇠퇴를 반복하는 유기체
세계경제포럼 연차총회(World Economic Forum)에서 UN은 현재 전 세계 인구의 55%가 도시 지역에 살고 있고 2050년까지 68%로 증가할 것으로 예측한다. 그런데 한국의 도시 대부분은 인구 감소와 쇠퇴를 걱정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도시를 쇠퇴하게 하는 원인은 무엇일까. 여기에 대해 독일의 역사가이자 문화철학자인 오스발트 슈펭글러(Oswald Spengler)는 문명의 쇠퇴와 관련성이 있음을 주장한다. 문명(Civilization)은 흔히 물질적, 기술적, 사회 구조적인 발전을 의미하는 것으로 한마디로 경제력으로 정의할 수 있다. 미국의 철학자이자 문명비평가인 루이스 멈퍼드(Lewis Mumford)는 도시의 탄생과 쇠퇴, 소멸의 단계를 그리스어의 기원을 통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도시는 작은 마을인 에오폴리스(Eopolis)를 시작으로 도시인 폴리스(Polis)가 된 다음 메트로폴리스(Metropolis)로 성장하고, 파라시토폴리스(Parasitopolis)가 되고, 그다음에는 파토폴리스(Pathopolis), 티라노폴리스(Tyrannopolis), 그리고 마지막으로 네크로폴리스(Necropolis)가 되어 소멸한다고 말한다. 그의 이러한 해석은 모든 도시가 성장, 정체, 쇠퇴, 소멸이라는 극단적인 관점에서 제시된 선형적 예일뿐 실제 이러한 과정을 겪으며 소멸한 도시는 없었다. 모든 도시는 잠정적으로 쇠퇴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현존하는 도시 대부분은 생성, 성장, 정체, 쇠퇴, 그리고 재도시화를 반복한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도시 쇠퇴의 원인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2016년 애리조나 주립대학교의 루돌프 체사레티(Rudolf Cesaretti) 교수는 미국 산타페 연구소(Santa Fe Institute)의 루이스 베텐코트(Luis Bettencourt) 박사가 현대 도시의 성장과 쇠퇴의 원인을 찾기 위해 개발한 수학적 모형을 이용해 유럽 도시들을 분석하였다. 그 결과 도시는 본질적으로 비즈니스를 하기 위해 모이는 사람들에 의해 생성된 사회적 역학을 기반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밝혀냈다. 이는 도시 규모에 걸맞은 경제적 생산력이 사회적 시스템과 맞물려 있어 이것에 의해 도시의 성쇠가 결정된다. 도시는 성장잠재력과 수축잠재력을 동시에 안고 있는 일종의 유기체이다. 조금이라도 느슨해지면 안정기에는 보이지 않든 수축잠재력이 불쑥 튀어나와 위력을 발휘한다. 이점에 대해서 독일 뒤셀도르프 대학교 볼커 아이체너(Volker Eichener) 교수는 모든 도시는 나선형 역학에 묶여 있고 쇠퇴하는 도시는 ‘수축 증후군(shrinking syndrome)’에 의해서 영향을 받는다고 말한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혁신적인 비즈니스, 국제 인재 및 관광 유치와 같은 세계화가 제공하는 기회를 활용하는 ‘적극적인 국제화’ 전략을 필수로 꼽고 있다. 이것이 한 도시의 쇠퇴를 막는 재도시화를 위한 이야기라면 여기서 더 축소하면 도시 속에 존재하는 마을 재생 논리와 관련지어진다.
도시재생에 있어서 세계적인 모범사례로 꼽는 곳이 있다면 단연 영국의 잉글랜드 중부 외곽도시인 버밍엄이다. ‘1,000개의 무역회사가 있는 도시’와 ‘세계의 공방’으로 알려진 버밍엄은 황동에서 장난감, 단추, 보석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제조하는 산업 혁명의 중심지였다. 지난 수십 년 동안 버밍엄은 과거의 이미지와 씨름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폭격당한 후, 도시는 콘크리트 순환 도로, 쇼핑센터, 타워 블록이 혼합된 값싸고 현대적인 재료를 사용해 재건되었다. 부실하게 지어진 도심 기차역인 뉴 스트리트는 영국 최악의 기차역으로 선정되었고 많은 사람에게 웨스트 미들랜즈는 정체성이 없는 도시로 인식되었다. 마침내 2010년 버밍엄을 세계적인 도시로 변화시킬 버밍엄 20년 마스터플랜인 BCP(Big City Plan)의 야심 찬 계획이 시작되었다. 뉴 스트리트 역의 재생, 예술 도서관 건립, 미들랜드 메트로 1호선 연장, 도시공원 조성, 고속철도 건설, 무어 스트리트 퀸스웨이의 새로운 도시 중앙 인터체인지 건설 등으로 인구 110만 명에 달하는 금융 및 상업 중심지로 탈바꿈했다. 버밍엄 시의회에 따르면 150만㎡의 새로운 공간을 조성하였고, 50,000개의 새 일자리 창출, 매년 21억 파운드의 경제 유발 효과, 연결성과 효율성을 높인 걸어 다닐 수 있는 도심 조성, 65,000㎡의 공공 공간 추가 조성, 28km의 보행자와 자전거 도로 조성, 5,000여 가구에 새로운 레저 시설 제공, 도시 중심부의 성장을 지원하는 5가지 혁신 영역까지 조성하였다. 버밍엄 도시재생의 핵심가치는 상업자본의 적극적인 참여와 공공 거점시설을 이용한 끊어짐 없는 도시 연결성이다. 시민이 걷기 좋은 도시로 새롭게 탄생한 것이다.
이처럼 도시의 경관을 바꾸려는 시도는 매우 복잡하고 어려운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런데 쇠퇴하거나 황폐해진 지역을 활성화하려는 노력은 종종 의심, 냉소주의, 노골적인 적대감에 부딪히게 한다. 그렇지만 도시재생 프로젝트는 황폐한 지역을 다시 매력적이고 활기차게 만들어 활용도가 낮거나 방치된 공간에 새로운 목적을 찾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영국의 도시재생 주체가 공공이라면 한국의 도시재생은 주민주도로 이루어진다.
포항의 도시재생 뉴딜사업이 이제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그런데 중앙정부에 의해서 지금까지 추진되어 온 도시재생 뉴딜사업은 쇠퇴하는 지방 도시를 어떻게 견인하였을까. 이점은 도시마다 구조적으로 다른 특성을 띠고 있어 영향력을 평가하기에는 어려움이 따른다. 하지만 한국의 도시재생 뉴딜사업 대부분이 과거 새마을운동을 연상하게 하는 마을 정비사업 정도에서 사업을 종료하였다는 점은 오점으로 남는다. 그리고 몇몇 도시는 주민들과의 불화로 사업을 제대로 해보지도 못하고 서둘러 종료한 곳도 있다. 그러한 것에 비하면 포항의 도시재생 뉴딜사업은 대체로 주민들의 참여도가 높았고 만족도 또한 높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강덕 시장은 “2022년 12월에 종료한 신흥동은 주민 대다수가 고령층임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으로 사업에 참여해 도심에서 가장 낙후된 지역에 가장 많은 변화를 일으키게 한 동네”라고 밝히며, “도시재생은 주민을 위한 주민에 의한 주민들의 사업인 만큼 행정은 주민들이 잘 이끌어 갈 수 있도록 뒷받침할 것”이라고 하였다. 주민들은 협동조합을 만들어 활용 가능한 거점시설을 마을기업으로 운영할 주체로 자리 잡아야 하고, 재생사업으로 정비한 인프라의 유지, 관리를 위해 자체적인 여건도 마련해야 한다. 그야말로 이제부터 시작인 셈이다. 순전히 주민들의 의식만큼 동네가 좋아지고 지속가능성도 커진다. 샌프란시스코 연방준비은행 지역사회개발 선임 연구원인 제이슨 바고(Jason Vargo) 박사는 오늘날의 인간은 보편적 인간으로서의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를 넘어 도시에 사는 ‘메트로 사피엔스(Metro Sapiens)’로서 도시의 지속가능성을 달성하기 위해 도시적 측면을 포용해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는 재생사업 이후의 지속가능성은 주민들의 도시 의식만큼 유지되어 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민간 상업자본이 젠트리피케이션 걱정 없이 언제, 누구도 들어올 수 있는 분위기 마련도 중요하다. 성숙한 시민의식만큼 도시재생 지역이 더 발전하기를 기대한다. (계속)
김용진
·디자인학 박사
·위덕대학교 자율전공학부 교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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