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경사 오층석탑 보물 지정 예고
지난달 분옥정·용계정 보물 승격
탄원스님 보물 지정에 ‘일등공신’
보경사 천왕문 이어 오층석탑까지
올해 들어서만 유적 2점 보물 지정
25년 전 도난당했다 지난해 돌아온
영산회상도·지장보살도 보물 비롯
내년엔 괘불탱화 국보 지정 추진도
불교문화유산 발전 위해 동분서주
“어이구 스님은 보물 제조기네요?”
최근 보경사 주지 탄원스님을 방문한 자리에서 P 기자가 내뱉은 말이다. 전날 전남 강진에 있는 백련사에서 모임을 가진 후 밤샘 운전으로 돌아온 터라 무척 피곤한 상태라고 했다. 그러나 차를 따르며 지역 문화유산의 보물 지정 과정에 관한 설명을 시작하자 아이처럼 밝은 얼굴로 한껏 들뜬 표정이었다. 탄원스님은 보경사 오층석탑을 비롯해 포항지역 내 경북도지정 유형문화유산 3점이 잇달아 국가문화유산청으로부터 보물로 승격 지정된 것에 무척 고무된 모습이었다.
“사실 한 점은 보경사에 있는 불교 문화유산이지만 두 점은 불교가 아닌 개인문중 문화유산이잖아요? 이 두 곳에 현장조사를 다녀온 문화유산 위원님들이 보물 지정에 대해 많은 고심을 하셨을 텐데 가치를 인정받아 보물로 지정될 수 있었어요. 그 문중 분들께서 잘 관리해주신 덕분이라 생각합니다.”
최근 보물 지정 심사를 통과한 국가문화유산 3점은 포항시 북구 송라면 보경사 경내에 있는 오층석탑과 기계면 봉계리에 있는 분옥정, 기북면 덕동문화마을에 위치한 용계정이다. 조선후기에 건립된 분옥정은 예술적과 학술적으로는 상당히 뛰어난 가치를 인정받았으나 건립시기가 200년이 조금 넘다보니 역사적인 가치를 두고 보물 지정에 많은 고심이 있었을 것이다.
또한 임진왜란 당시 북평사 정문부(鄭文孚)의 별장이었던 용계정은 역사적, 학술적인 가치는 충분하지만 예술적인 면에서 조금 아쉬운 점이 있어 둘 모두 보물 지정에 반대 의견이 많았다. 현장을 다녀온 전문가들이 보물 지정에 심사숙고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보물로 지정되려면 역사적, 학술적, 예술적가치 세가지를 모두 충족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탄원스님은 만약 분옥정과 용계정이 이번에 보물지정에서 보류되면 시기적으로 오래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알기에 심사 관계자들을 설득해 원안대로 보물 지정을 이끌어내는데 성공했다.
지난 13일 국가지정문화유산 보물로 지정 예고된 보경사 오층석탑은 1985년 경북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조선 중기 승려 사명대사 유정이 쓴 ‘내연산보경사금당탑기(內延山寶慶寺金堂塔記)’에 탑이 건립된 내력이 나온다. 이 탑은 지금으로부터 1001년 전 고려 때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통일신라시대 양식을 계승한 고려시대 석탑으로 일명 금당탑(金堂塔)이라고도 불린다. 조성시기에 대한 기록이 명확하고, 11세기 석탑의 전형적인 조영 기법과 양식 등이 잘 나타나 있어 역사·학술적으로 귀중한 가치를 지닌 것으로 평가된다.
기단과 옥신(屋身)에는 목조 건축의 기둥을 모방한 귀기둥이 있으며, 옥신과 옥개(屋蓋)는 각 1매석(枚石)으로 만들어져 있다. 처마끝은 수평을 이루고, 처마선(線)은 끝에서 약간 들려 경쾌한 곡선을 이룬다. 1층 기단 위에 5층 탑신을 올려 전체적으로 날씬하고 고준(高峻)한 느낌을 자아낸다. 건립 시기가 오래되었고 건립 배경이 문헌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건축미도 빼어나 보물로 지정될 수 있었다. 물론 그 배경에는 탄원스님의 의지와 국가유산청과 문화유산 위원들을 상대로 한 적극적인 소통과 노력이 있었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보경사 천왕문은 17세기 이후 본격적으로 이뤄진 사찰 천왕문의 조성과 시기적 변화양상을 살필 수 있는 사례로 평가된다. 구조로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단층 팔작지붕으로 가운데 칸은 통로칸으로 삼고 쌍여닫이 띠장널문을 달았는데, 진입영역의 산문(山門)이라기보다는 중심 주불전 영역의 정문으로서 상징성을 갖추고 있다. 좌·우의 협칸에는 1980년에 제작한 사천왕상을 봉안하였고 정면 어칸의 평주 하부에는 보경사(寶鏡寺) 적광전(보물)과 유사한 형태의 사자상이 조각된 신방목(信枋木) (대문의 기둥을 보강하기 위하여 가로로 끼워댄 목부재)을 설치했다. 이는 천왕문 중 국내 유일한 사례로 역사적·학술적·예술적 가치가 높다.
하지만 비지정문화유산이 바로 보물로 지정되는 예는 극히 이례적이다. 천왕문이 보물로 지정되는 과정이 순탄치 않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먼저 탄원스님은 천왕문 보물 지정을 위해 포항시에 의뢰해 자료수집과 용역조사를 진행했다. 또 경북도 문화유산 위원들은 현장조사를 거쳐 지정 가치가 있음을 확인했다. 이에 문화유산청에 보물 지정 신청서를 올려 유산위원과 관계자들이 여러차례 현장점검과 타당성 검토를 진행하였고 지정가치에 대한 보고서를 통해 최종 논의 결과 국가문화유산으로 지정될 수 있었다. 2년이 넘는 과정과 노력 끝에 이뤄낸 값진 성과였다.
이번에 보물로 지정 예고된 오층석탑이 다음달 최종 확정되면 보경사는 경주 불국사를 제외하고 경북 동해안 일대에서 보물 8점을 보유하는 유일한 사찰이 된다. 지난 2021년 탄원 스님이 보경사 주지로 부임한 후 일궈낸 성과다. 이 외에도 대웅전(경북 유형문화유산 제461호), 적광전 수미단을 보물로 지정하기 위한 절차가 진행 중에 있으며 비지정문화유산인 팔상전을 경북도 문화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한 용역보고서가 마무리 단계에 있다.
그리고 탄원스님은 지난 1999년 도난당한 보경사 ‘영산회상도’와 ‘지장보살도’를 지난해 5월 22일 조계종 총무원 문화부장으로 재직 당시 되찾아와 24년만에 보경사로 돌아왔다. 둘 다 1778년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문화유산청에서도 보물 지정을 진행 중이다. 특히 스님은 보물 제1609호인 괘불탱화를 국보로 만들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계획대로 진행된다면 내년쯤 국보 지정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를 걸고 있다.
끝으로 탄원스님은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진우 스님께 감사 인사를 전했다. “지난해 9월까지 1년 여를 총무원 문화부장 소임을 보면서 문화유산청 건축분과 문화유산위원을 함께 맡았는데 퇴임 이후에도 계속 활동할 수 있도록 총무원장이신 진우 스님께서 배려해주신 덕분에 좋은 성과가 있었다”며 “앞으로도 불교 문화유산 발전을 위해 고군분투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내보였다.
현재 탄원스님은 조계종단 입법기구인 중앙종회의원(3선)을 역임하고 있다. 우리나라로 보면 국회의원 같은 것으로 선거를 통해 선출된다. ‘보물 제조기’ 탄원스님은 보경사로서도, 포항으로서도 그야말로 ‘보물’과 같은 존재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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