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도민일보 = 한동윤] 지난 3월 청년 실업률이 11.1%로 1999년 7월 이후 15년7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숫자로 따지면 48만4000명이다. 그러나 국내 500대 대기업 중 상반기 대졸 신규채용 계획을 확정한 곳은 40%선이다. 작년보다 더 뽑겠다는 기업은 5%에 불과하다. 다른 기업은 예년 수준이거나 아예 채용 인원을 줄였다.
정부는 청년들에게 일자리와 미래 희망을 주기 위해 3대 재벌에게 고용확대를 종용해 보지만 30대 재벌조차 정년 연장 등으로 자리가 없다며 채용계획을 6% 넘게 줄인 상황이다. 길어지는 불황에 청년취업은 한파를 넘어 빙하기(氷河期)로 접어든 느낌이다. 그러다 보니 공무원 시험에 목을 맨 청춘만 늘고 있다.
그러나 눈길을 잠시 옆으로 돌리면 일자리는 얼마든지 있다. ‘중소기업’이다. ‘월 250만원’을 주는 직장이 많다. 그렇지만 우리나라 대졸 취업희망자들은 삼성, 현대 같은 대기업이나 ‘카페’같은 직장을 선호한다. 대학을 졸업했는데 체면 때문에도 중소기업에 갈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경기 안산 같은 산업현장에는 외국인근로자들이 넘친다.
경기 안산 반월공단 중소기업들은 “신입사원을 뽑으면 금세 회사를 옮겨 뽑기가 겁날 정도”라고 했다. 반월공단의 A 제조업체 인사팀 김준용 과장은 “작년 8월 합격 통보를 받고 일하러 나온 첫날, 점심밥만 챙겨 먹고 사원증 내던지고 간 신입 직원도 있었다”고 했다. “카페 같이 깨끗한 분위기의 서비스업종에 가서 일하겠다”는 것이다.
경기 하남시에서 산업용 자재를 생산하는 한 중소기업은 30년 된 탄탄한 기업이다. 그러나 6개월 이상 신입사원을 한 명도 뽑지 못했다. 채용 공고를 내도 찾아오는 젊은이가 드물고 채용해도 몇 달 안돼 그만두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김모 사장은 “우리 회사에서 일하다 두 달 만에 그만둔 한 대졸사원은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며 대기업 취직 준비를 하고 있더라”며 “초임 월급 250만원 이상에 복리후생을 내걸어도 사람이 오지 않아 한국인 채용은 거의 포기한 상태”라고 전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달 19일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 중동 순방 성과 후속책을 강조하면서 “대한민국에 청년이 텅텅 빌 정도로 한 번 해보세요. 청년들 다 어디 갔냐고. 다 ‘중동갔다’고.” 공무원들에게는 중동시장을 개척하고, 우리 청년들이 중동시장으로 달려가기를 바라는 희망을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박 대통령 발언이 알려지자 인터넷에는 난리가 났다. “당신이 가라 중동”이 인터넷을 도배한 것이다. 영화 ‘친구’에서 나온 “니가 가라. 하와이”를 패러디한 것이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신림동 고시촌 카페에 타운홀미팅을 하러 갔을 때 시위 청년들이 든 피켓에도 “당신이 가라 중동”이라는 글귀가 들어 있었다.
1960년대 청춘이었던 오늘의 어른들은 스마트 폰도, 아이패드도 없었다. 머리에 바르는 ‘무쓰’가 뭔지도 몰랐다. 요즘 젊은이들이 죽치는 ‘카페’는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곳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를 악물고 맨손으로 산업화를 이룩했다. 그들은 한푼이라도 더 벌자고 그 뜨거운 중동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요즘 청년들은 “당신이 가라 중동”이란다.
대졸 청년백수의 원흉(元兇)은 대학의 난립(亂立)이다. 대학이 읍·면단위까지 들어서니 고등학교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하지 않으면 ‘바보’ 취급당한다. 등록금만 내면 누구나 받아주니 대학진학률이 82%로 세계 최고다. 독일은 40%, 일본은 49%다. 대학같지 않은 대학이 비 온 뒤 죽순 솟듯하고, 취업해야 할 젊은이들까지 등록금 보따리 싸들고 대학에 가는 바람에 ‘초임 250만원’을 줘도 중소기업은 거들떠보지도 않는 세상이 되고 말았다. 대학같지 않은 대학을 나오고도 “당신이 가라 중동”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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