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말 요괴(妖怪)’ 사냥감 된 삼성(三星)
  • 한동윤
‘세기말 요괴(妖怪)’ 사냥감 된 삼성(三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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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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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디폴트 빠뜨린 엘리엇의 삼성 공격

▲ 한동윤 주필
[경북도민일보 = 한동윤] ‘VULTURE’. 조류(鳥類) 가운데 독수리를 일컫는 단어. 사람에 비유할 때는 남의 등을 쳐 먹고 사는 사기꾼, 욕심쟁이를 말하는 영어 단어다. ‘VULTURE’에 자금(資金)을 뜻하는 ‘FUND’가 결합하면 ‘벌처 펀드’로 세계 각국 주식시장을 휘젓고 다니며 투기를 일삼아 매매차익을 먹고 튀는 ‘먹튀’ 자본을 말한다. 미국계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대표적 ‘벌처 펀드’다. 엘리엇은 아르헨티나를 13년 만에 다시 국가 디폴트(채무 불이행) 사태로 몰아넣은 장본인이다. ‘돈’에 눈이 어두워 채무상태가 안 좋은 나라나 국민을 수렁 속으로 몰아넣고 희희낙락(喜喜樂樂)하는 악마(惡魔)의 손이다.
 아르헨티나는 지난 2002년 국가 부도 당시 부도난 국채를 갖고 있던 채권단 중 93%와 채무 재조정에 합의했다. 채무의 약 71~75%를 탕감해주는 합의안에 채권단 대다수가 참여했으나, 엘리엇은 합의에 불응해 미국 법원에 소송을 냈다. 이들은 액면가 13억3000만 달러의 아르헨티나 국채를 4800만 달러 가량의 헐값에 사들인 뒤 액면가 전액을 상환하라고 요구했다. 미국 법원은 엘리엇의 손을 들어줬다. 그 판결 때문에 아르헨티나는 이미 채무조정에 합의한 채권단에도 전액을 상환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먹튀 자본 때문에 남미의 대국 아르헨티나가 두 번째 디폴트라는 수모를 겪은 것이다.
 엘리엇은 비슷한 방식으로 지난 2000년 페루를 어려움에 빠뜨렸다. 미국 국내에서도 프록터앤갬블(P&G), 델컴퓨터 등 해외 유명기업도 그들의 희생양이 되기도 했다. 당하는 입장에서는 저승사자나 다름없는 존재다.
 이런 저승사자 엘리엇이 한국에 떴다. 지난주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삼성물산 지분 7.12%(1112만5927주)를 장내 매수하며 삼성물산의 3대 주주로 단숨에 올라섰다고 ‘깜짝’공시한 것이다. 삼성이 이건희·이재용 경영권 승계 목적으로 추진 중인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에 엘리엇이 뛰어 들어 딴죽을 걸고 나섰다. 엘리엇은 “제일모직의 삼성물산 합병 계획안은 삼성물산 가치를 상당히 과소평가했을 뿐 아니라 합병 조건 또한 공정하지 않아 삼성물산 주주의 이익에 반한다”고 주장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반대의사 뿐만 아니라 향후 합병작업 때 의결권을 적극 행사할 것을 예고한 것이다. 자칫 엘리엇의 장난에 휘말리면 삼성 그룹의 후계 계승 계획에 제동이 걸릴지 모르는 중대 사태다.
 삼성물산은 11년 전 영국계 연기금 헤르메스 펀드에 당한 경험이 있다. 헤르메스 펀드는 2004년 삼성물산 주식 5%를 사들였다. 헤르메스는 투자 목적으로 공시하며 주식을 매입했지만, 삼성물산 측과 접촉해 삼성전자 보유지분(3.4%) 매각을 요구하는 등 경영 간섭에 나섰다. 이로 인해 경영권 분쟁이 불거지며 주가가 급등하자 헤르메스는 총 380억원의 시세차익을 챙기고 튀었다.
 ‘벌처 펀드’의 본질은 지배구조가 취약한 기업을 사냥감 삼아 지분을 확보해 경영권을 위협한 뒤 주가가 고점에 이르면 주식을 팔고 떠나는 ‘먹튀’가 기본 속성이다. 당하는 기업은 경영권 방어를 위해 엄청난 손실을 피할 수 없고, 결국 막대한 국부유출로 이어진다. 일본의 경제평론가 하마다 가즈유키는 이들을 ‘세기말의 요괴’라고 불렀을 정도다.
 엘리엇이 삼성물산에 눈독들인 이유도 취약한 지배구조에 있다. 삼성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삼성물산 지분을 전혀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삼성물산 지분이 전무하면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을 시도하는 무모함이 엘리엇의 구미(口味)를 돋군 셈이다.
 가장 심각한 것은 엘리엇이 외국계 투자자들과 연합전선을 구축했을 경우이다. 실제 삼성물산의 특수관계인 지분은 삼성SDI(7.18%), 삼성화재(4.65%) 등을 합쳐 13.99%에 불과하다. 단일 최대주주로는 국민연금(9.98%)이 1위다.
 반면 외국인 지분은 33%를 넘는다. 특히 엘리엇이 4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반대하자 외국인 삼성물산 보유 비중이 하루 새 32.11%에서 33.08%로 높아졌다. 엘리엇의 지분은 7.12%로 3위에 불과하지만 외국계 우호지분을 규합하면 심각한 상황에 내몰릴 수 있다.
 ‘세기말의 요괴’ ‘벌처 펀드’의 ‘먹튀’를 피하려면 국내 기업을 보호하는 기업경영권 보호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포이즌 필(poison pill)’이나 ‘황금주’같은 대책이다. 미국과 일본, 프랑스 등이 적극 활용하는 제도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재벌 총수 일가를 보호한다는 야당과 시민단체 주장 때문에 도입이 안 되고 있다. 삼성 같은 기업이 국제 투기자본의 손에 넘어가야 정신 차리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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