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산에서 낙동강을 바라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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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산에서 낙동강을 바라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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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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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명래 수필가
[경북도민일보] 부모님은 생후 7개월이었던 나를 들쳐 업고 피난을 갔다. 낙동강 언덕에서 바라보니 백사장에는 피난민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고, 미군 비행기는 강을 건너는 사람들을 향해 기총소사를 해대고 있었다. 피난민에 섞여 도강하려는 인민군들이 있었던 것이다. 삽시간에 강물이 붉게 물들었다.
 김천에서 흘러오는 감천과 안동에서 상주를 지나온 낙동강이 만나는 지점 가까이에서 태어난 나는 귀에 딱지가 앉을 만큼 지긋지긋했던 전쟁이야기를 들으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어른이 된 후 낙동강을 건너고, 유학산과 다부동을 거쳐 고향집에 오가면서도 삶의 한계선을 넘나들었던 그날의 이야기는 차츰 기억에서 사라져갔다.
 세월이 얼마나 흘렀는가. 그날로 부터 65년이 지난 오늘 가슴 깊은 곳에 뭉쳐있는 전쟁이야기가 새삼스럽게 살아난다. 돌아보니 전쟁의 상처가 완전히 아물어 새살이 돋아난 것이 아님을 알았다. 대한민국 20대의 절반이 6·25가 남침인지, 북침인지 모르고 있다는 최근의 언론 보도를 보면서 화가 난다.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한 상처가 피부 속에서 곪아터지려는지 벌겋게 부어오른다.
 오랜 가뭄 끝에 장마가 올라오고 있다고 한다. 오늘은 작심하고 전쟁의 현장을 찾아 다부동 유학산에 올랐다. 아홉 차례나 주인이 바뀌었던 산이다. 6·25전쟁 최후의 교두보였던 곳에서 조국을 지켰던 흔적을 확인했다. 구멍 뚫린 녹슨 철모와, 철모의 주인이 남긴 유해를 보았다. 그날 함께 묻힌 전우의 수가 얼마였던지 지금도 나무막대로 땅을 헤적이면 묻혀있던 뼛조각들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유학산이다. 달려드는 적을 향해 방아쇠를 당기고 또 당겼던 능선에는 지금도 피비린내가 난다.
 눈을 감으니 그날 여기서 숨져간 어린 학도병이 생각난다. 눈물 젖은 어머니의 손을 뿌리치고 자원입대한 학도병은 죽기 전 어머니를 꼭 한번 보고 싶었지만, 원수의 총탄은 비켜가지를 않았다. 어머니 얼굴을 떠올릴 새도 없이 그 자리에 한 줌 흙이 되고 말았다. 흐르는 세월따라 전쟁은 한 장면의 역사가 되어 잊혀져가고 있지만 학도병의 피로 얼룩졌던 유학산 흙은 지금도 붉다. 구천을 떠돌던 영혼이 오늘 여기 내려와 무심한 갈참나무 이파리를 흔들고 있다.
 저만치 작은 무덤을 감돌아 낙동강이 흘러가고 있다. 피어보지도 못한 채 숨져간 아들을 가슴에 묻고 평생을 살았던 어머니도 낙동강이 보이는 언덕에 묻혀 아들을 지키고 있단 말인가. 어머니가 하염없이 바라보았던 강물이 무명치마 자락처럼 펄럭이며 무심하게 흘러가고 있다. 강물같이 흐르는 세월 따라 처절했던 전쟁은 잊혀지고 있지만, 지금도 유학산에는 한을 품고 가신 어머니와 조국을 지켰던 학도병이 살아 있음을 확인했다.
 어머니의 등에 업혀 낙동강까지 피난을 갔던 7개월짜리 아기가 회갑을 넘긴지 여러 해. 오늘 유학산에 올라 낙동강을 바라보면서 슬픈 전쟁을 잊지 말라고 당부하던 아버지의 유언을 기억해낸다. 조국은 유학산 839고지에 묻힌 학도병을 기억하고 있다고 응답해온다. 낙동강 건너 6월 들판이 푸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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