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죽음·강제노동·굶주림… 그래도 소녀는 희망을 놓지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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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죽음·강제노동·굶주림… 그래도 소녀는 희망을 놓지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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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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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링필드 생존자 바데이 라트너 자전소설 번역 출간

 

나는 매일 천국의 조각을 줍는다
바데이 라트너 지음·황보석 옮김
자음과모음 l 536쪽 l 1만3800원

 캄보디아 출신 소설가 바데이 라트너(45)는 수도 프놈펜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게릴라단체 크메르루주가 프놈펜을 함락하고 정권을 잡은 것은 라트너가 다섯 살이 된 1975년이다. 크메르루주는 이때부터 4년간 170만~220만 명이 목숨을 잃은 ‘킬링필드’를 자행했다.
 라트너의 가족은 크메르루주 아래서 강제 노동에 동원되고 굶주림에 시달렸다. 학살의 피바람에서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것은 가족 가운데 라트너와 어머니, 단둘이었다.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고 살던 라트너는 1981년 미국으로 망명해 코넬대에서 동남아 역사와 문학을 공부했다.
 작가가 캄보디아와 동남아를 돌아다니며 집필한 데뷔작 ‘나는 매일 천국의 조각을 줍는다’는 킬링필드의 아픈 경험을 돌아보며 쓴 자전적 소설이다.

 주인공인 일곱 살 소녀 라미는 왕족의 후예이자 시인인 아버지, 아름다운 어머니와 여동생, 하인과 프놈펜에서 풍요롭게 살았다.
 대가족이 더없이 평온하게 지내던 1975년 4월, 크메르루주가 프놈펜을 포위하고 라미 가족은 곧 수도 밖으로 쫓겨난다. 아버지는 왕족이라는 이유로 숙청되고, 남은 엄마와 라미, 여동생은 시골 움막에서 굶주리며 지낸다.
 아버지의 죽음은 라미에게 특히 감당하기 어려운 충격으로 다가온다. 아버지의 죽음을 그리는 부분에는 실제로 아버지를 우주로 여겼던 작가의 상실감이 그대로 배어 있다.
 “아빠가 없어진 나는 그때껏 달리 어떻게도 알지 못했던 슬픔의 무게와 크기에 짓눌리기라도 한 것처럼 멍한 상태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이리저리 떠돌았다. 이제 슬픔은 내 새롭고 지속적인 친구로서 내 옆에 한 자리를 차지한 채 나와 함께 앉거나 걸었고, 그림자 같은 존재가 아니라 완전한 실체가 되어 있었다.”(243쪽)
 작가는 자신이 겪은 이야기를 문학의 형식을 빌려 촘촘하게 그려낸다. 어린 아이 시선으로 그린 폭력과 학살의 장면에는 대체로 감정이 배제돼 있다. 실제 경험을 토대로 하기에 고통은 더 아프게 다가온다.
 “다시 한 번 더 내 눈앞으로 노인의 머리에 총을 겨누었던 그 크메르루주 병사의 얼굴이 어른거렸다. 그녀가 노인에게 총을 쏘았을 때, 땅바닥에 쓰러지는 노인을 지켜보았을 때, 그녀의 얼굴에 서려 있던 표정에는 아무 이름도 없다는 생각이 떠올랐다.”(87쪽)
 여동생마저 굶주림과 말라리아로 세상을 떠나자 라미는 죄책감에 시달린다. 하지만 라미는 아버지의 사랑에 대한 기억과 그의 시로 캄보디아를 떠나는 순간까지 견뎌낸다.
 책은 작가가 보고 들은 것에 대한 생생한 증언이면서 무덤을 넘어서까지 그가 견뎌낼 힘을 준 아버지의 사랑과 인간정신에 대한 헌사다. 라미의 눈에 비친 세상은 눈물과 고통으로 가득하지만 어떻게든 살아가야만 하고, 끝까지 사랑과 희망을 놓지않는다면 살아갈 수 있는 곳이다.“아버지의 단 하나뿐인 살아남은 자식으로서, 당신의 영혼을 기리는 것은 내가 애써 해야 할 일이다. 이 이야기는 아버지의 기억과 침묵 당한 모든 사람들의 기억에 목소리를 주려는 내 소망으로부터 태어났다.”(작가의 말)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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