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혈육이 아니냐… 정용준 지음 l 문학동네 l 276쪽 l 1만3000원
아들이 다섯 살 되던 해, 아버지는 부엌에서 칼로 아내를 찔러 죽였다. 아버지는 감옥에 갔고 아들은 이모에게 입양됐다.
20여 년이 지나 혈액 투석실 간호조무사가 된 아들 앞에 아버지가 나타난다. 신부전증으로 환자 가석방을 받아 나온 아버지는 아들이 다니는 병원에서 하루 세 번 혈액 투석을 받는다.
아들은 병상에서 묘한 표정을 지어 보이는 아버지, 다른 환자보다 유독 밝은 아버지를 대할수록 점점 비참해지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끝내 아들이 듣고 싶지 않은 그 말을 하고 만다.
“나는 지금에 와서 너에게 아버지 대접을 바란 것이 아니다. 다만 너는…최소한너는…나를 해하거나 나쁘게 대할 것 같진 않았다. 그래도 우린…혈육이 아니냐.”(59쪽)
소설가 정용준(34)의 단편 8편을 엮은 새 소설집 ‘우리는 혈육이 아니냐’(문학동네)에는 비틀어진 가족이 여럿 등장한다.
아버지와 누나 사이에 태어나 살인마로 큰 남자(‘474번’), 몸 한쪽이 마비된 아버지를 돌보다 환청에 시달리는 아들(‘내려’).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끊으려야 끊을 수 없는 자신의 핏줄 때문에 고통받는다. 자신을 이 세상에 있게 했고, 자신의 일부인데도 외면하고 싶은 그 ‘본성’은 사회 속에서 꼭꼭 숨어 있었다. 그러나 비틀어진가족과 갈등에 부딪히며 인간은 다시 그 본성을 마주한다.
정씨는 “많은 사람들이 점점 커가면서 ‘부모님의 어떤 것’들이 돼 간다. 그게 일차적으로 인간이 가진 한계이자 조건”이라며 “그걸 갖고 살아간다는 게 인간에게 굉장히 중요하면서도 힘든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수록작 ‘안부’에서는 인간 본성을 사회 속에서 조명하고자 군 의문사 문제를 소재로 했다.
정씨는 “국가 안에서 누군가 죽음을 당했을 때 ‘국가가 기억하겠다’는 좋은 명분을 대지만 가족에게 남는 건 가족을 잃은 슬픔 뿐이다. 하지만 억울한 죽음도 1~2주 빛을 보고 다시 사회 속에 감춰진다”며 “’지나간 정보‘라는 이유로 금방 관심에서 멀어지는 일들이 최근 많았는데, 소설에서 그들을 모두 서사에 중심에 끌어들여서 최대한 이야기를 들어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작가는 이렇게 인간의 본모습을 보여주는, 여러 상황 속에서 인간이 어떻게 행동할 수밖에 없는지를 독자가 반추하게 하는 것이 소설의 매력이며, 그래서 소설은 사람을 강해지게 한다고 강조했다.
정씨는 “부족해도 나만 좋아해 주는 ‘베스트 프렌드’ 같은 소설, 나의 초상을 볼 수 있는 소설을 찾고 나면 인간은 골똘해지고 남에게 속지 않을 수 있다”며 “내가 처한 상황과 마음속의 여러 의문을 풀어내는, 작은 것에 휘둘리거나 덧없는 것을 부러워하지 않는 강한 단독자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 문예·서평 격월간지 ‘악스트’의 편집위원으로 활동하는 정씨는 “요즘처럼 문학이 많은 사람들의 도전 앞에 서 있는 상황에서 책을 내는 데 고민이 있었다”면서도 “그래도 소설의 힘을 믿고, 소설을 읽히게 하는 역할을 하고 싶기에 악스트에 참여한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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