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도민일보 = 한동윤] 이른바 ‘이민계’(移民契)라는 것이 유행이란다. 한국 사회를 ‘헬조선’으로 비하하면서 ‘한국 탈출’을 꿈꾸며 이민비용을 마련한다는 계모임이다. 특히 2030세대에서 유행이다. 헤럴드경제와 취업 포털 인크루트가 최근 만 20~39세 성인남녀 72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44.7%가 ‘지금 당장 이민계를 조성할 생각이 있다’고 응답했을 정도다.
‘이민계’를 준비하겠다는 2030세대는 구체적인 목표 액수, 준비 기간을 설정해 두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준비 기간은 ‘1년 이상~3년 미만(31.8%)’이 가장 많고, ‘3년 이상~5년 미만(26.3%)’, ‘5년 이상~10년 미만(23.4%)’ 순이다. 목표 액수 역시 ‘1억원 이상~3억원 미만 (45.6%)’, ‘1억원 미만(19.9%)’, ‘3억원 이상~5억원 미만(19.2%)’순이다. 북유럽 국가로 ‘기술이민’을 가기 위해 자동차정비기능사, 기사 자격증을 취득하거나, 용접공으로 캐나다로 이민가기 위해 관련 학원에 등록한 사람도 많다.
이민 가고싶다는 응답은 여성이 81.8%로 남성(77%)보다 많다. 미혼(80.5%)이 기혼(72.7%)보다 더 높다. 연령대별로는 30대가 82.1%로 가장 높고, 20대와 40대도 각각 80%, 72.4%로 높은 비율이다. 50대 이상도 59%에 달했다. 이민가고 싶은 이유로는 ‘일에 쫓기는 것보다 삶의 여유가 필요해서’가 56.4%로 가장 많고, ‘근로조건이 열악해서’가 52.7%로 뒤를 이었다. 이민 가도록 만드는 한국사회의 모순점으로 ‘노력해봤자 비정규직, 정규직도 박봉인 취업구조’가 26.2%로 가장 많다. 2030세대들은 ‘금수저 물고 태어나지 않으면 성공 못하는 계층 간 고착 현상 심화’(24.9%)를 많이 꼽았다.
헬조선을 탈출해 가고 싶은 나라는 ‘미국, 캐나다 등 북아메리카 국가’(27%)를 가장 많이 꼽았다. 이어 ‘노르웨이, 덴마크, 스웨덴 등 북유럽 국가’(24.8%)가 뒤쫓았고, ‘호주, 뉴질랜드 등 오세아니아 국가’(18.5%), ‘프랑스, 영국, 독일 등 서유럽 국가’(16.2%) 순이다. 외국이민자들을 받아들이는 데 가장 까다로운 국가들이다.
서울에서 대기업을 그만두고 유럽 현지 회사를 다니던 최모(31)씨는 3년전 아내와 함께 유럽 삶을 시작했다. 명문대 출신에 영어도 능통한 최씨지만 마주한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유럽 선진국이라고 모든 직장인이 ‘칼퇴근’ 하고 저녁 있는 삶을 즐기는 것은 아니다. 세금은 많은데 월세도 비싸서 돈을 모으기 힘들다. 복지 혜택은 나이 들어 누리는 것”이라고 했다. “취업난은 전세계 공통의 문제인 것 같다. 여행할 때 보이는 그들의 삶과, 실제 현실이 엄연히 다르다는 걸 잊어선 안 된다”고 덧붙였다. 최씨는 조만간 한국 유턴을 준비 중이다. ‘헬조선’으로 돌아오겠다는 얘기다.
김연주(44)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 한인회 부회장은 ‘헬조선’이란 표현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그는 “이민가면 영화처럼 정원 파티를 하며 살 줄 알았지만 결국 생활을 고민해야 한다는 건 똑같다”며 “외국 생활은 여기에 언어·문화의 차이까지 있다는 점을 이해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령 선생은 청년들의 ‘헬조선’과 ‘흙수저’ 자괴(自愧)에 “지옥 같은 조선을 떠나 이민 가고 싶은 나라가 있으면 적어보라. 그곳이 천국인지 공부해봐라. 스위스에는 민병대가 있고, 하와이에선 집밖에 내놓는 꽃까지 간섭한다. 취업난·양극화 등 눈앞의 고통은 전 세계적 현상이다. 이걸 떨치고 나가야 한다. 지옥을 천국으로 만드는 도전정신이 필요하다. 남만 탓하면 영원히 지옥이다. “젊은이에게는 희망과 용기가 있다”고 했다. 북한과 아프리카, 이슬람극단국가에 태어난 청년들은 대한민국을 어떻게 생각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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