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도민일보 = 정재모] ‘Jesus saves!’라고 쓴 플래카드가 어떤 장소에 내걸렸다고 하자. ‘예수가 구원한다’라는 뜻으로 번역하는 게 옳을 거다. 그러나 삐딱하게 ‘예수가 저축한다’고 번역해도 틀렸다고 나무랄 수 없다. 뒤집어 말해 보자. 두 사람에게 ‘예수가 (탐욕스러워)저축한다’는 말과 ‘예수가 (가련한 영혼을)구원한다’는 말을 하나씩 제시하고 각각 영역토록 했을 때 똑같이 ‘Jesus saves’라는 번역이 나왔다 해서 어느 한 쪽만 맞는다고 말하기 힘들 테다. 이런 경우는 수도 없이 많을 거다. 한 나라의 말글을 다른 나라의 그것으로 제대로 번역하기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프랑스 작가 알렉상드르 뒤마의 소설 춘희(椿姬)의 영어 제목은 ‘Lady of the Camellias’다. 이 작품을 토대로 한 강수진의 발레 공연이 2002년 1월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있었다. 그 때 배포된 보도자료가 ‘카멜리아의 여인’을 공연한다는 거였다. 원제목의 뜻은 ‘동백아가씨’ 또는 ‘춘희’쯤으로 해야 할 명작의 이름이 이렇게 오역된 거다(서옥식편 ‘오역의 제국’). 하지만 이 명백한 오역을 무식하다고 나무랄 수만은 없을 일이다. 사실 그런 뜻도 되니까.
러시아나 일본, 중국, 인도 같은 비영어권 시인 작가들이 일찍이 노벨문학상을 다수 받을 수 있었던 건 물론 작품이 좋았기 때문일 거다. 그러나 그 못지않게 그 나라 국력이 좀 세다 보니 그쪽 언어를 탄탄하게 공부한 영어원어민이 많았던 덕도 클 테다. 이제 우리나라도 국력이 커진 만큼 한국어를 전공하는 영어권 사람들이 많아졌다. 지난주부터 한국사회를 달뜨게 하고 있는 작가 한강(韓江)의 맨부커문학상 인터내셔녈 부문 수상도 알고 보면 커진 국력 덕분에 한국어를 깊이 익힌 원어민 번역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한강이 수상 후 24일 귀국기자회견에서 “앞으로 이런 일(큰 문학상을 받게 될)이 한국문학에 자주 있을 것”이라고 한 예언에 기대를 걸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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