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의 미래를 디자인한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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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의 미래를 디자인한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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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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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영의 클래식 이야기
▲ 김일영 포항유스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

[경북도민일보]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Igor Fyodorovich Stravinsky 1882~1971)

자동차나 의복, 가구, 생필품 등의 아주 특별한 디자인을 보게 된다면 ‘이런 디자인은 디자이너가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만들었을까?’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요즘 디자이너들은 새로운 유행을 창조한다며 파격적인 디자인으로 상품을 만들어낸다.
이렇듯 디자이너라는 직업은 과거나 현재형이 아니라 미래를 만드는 직업임에는 틀림없을 것이다. 미래를 위해 일하고 평가를 받는 디자이너의 세계처럼 클래식음악도 한 시대를 앞서 만들어진 현대음악이라는 장르가 있다. 오늘은 현대음악의 거장 러시아출신의 작곡자 ‘스트라빈스키’와 그의 대표음악 ‘봄의 제전’이라는 발레음악을 소개해본다.

△음악계에 길이 남을 혁명가, 스트라빈스키
1913년에 프랑스 파리 몽테뉴에 위치한 유명한 샹젤리제 극장은 웅장하고 아름다운 자태로 파리 시민들에게 극장개관의 소식을 전했다. 5월 29일 극장개관 기념음악회인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을 보기위해 많은 사람들이 초여름 무더위에도 불구하고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당시 세기적 발레리노 ‘니진스키’의 안무와 러시아 발레단 그리고 ‘스트라빈스키’의 작곡은 세간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하지만 개관 당일 ‘피에르 몽퇴’ 지휘의 오케스트라 연주가 시작하고 바순의 묘한 선율이 연주되자마자 객석 도처에서 비웃음의 소리가 터져 나왔다. 시간이 흐를수록 커지는 비웃음이 웅성거림으로 발전하면서 이윽고 객석 곳곳에서 야유소리가 터져 나왔다. 보수적인 음악회에서는 있을 수 없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당시 낭만주의 음악이나 인상주의 음악 같은 우아하고 철학적인 음악만 감상해 왔던 터라 스트라빈스키의 음악은 파리 시민들을 당혹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쿵쿵거리고 거칠고 예측할 수 없는 원시적인 리듬, 기괴하고 주술적인 안무가 관객들로 하여금 분노하게 만들었다. “집어치워버렷!”, “이게 무슨 음악예술이야!”하며 욕설이 난무하게 되면서 공연이 진행이 될수록 객석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이것은 미래에 유행할 새로운 음악예술에 적응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현장에 있던 당대 시인 ‘장 콕토’는 “그것은 마치 자연의 융기 같이 숲 자체가 미쳐버린 것 같았다.” 라고 증언했다. 관객들마다 발을 구르고 휘파람을 불고 조롱하고 동물울음소리까지 흉내 내면서 야유를 보내더니 결국 “공연을 그만두라!” 라는 무리와 공연을 위해 “조용하라!” 라는 무리가 서로 충돌하며 뒤엉키더니 마치 축구경기장의 훌리건처럼 서로가 치고 때리는 주먹다짐까지 일어나면서 공연자체가 아수라장이 되었다. 이처럼 이날 공연은 음악역사상 난투극이 있는 최대 스캔들이 되고 말았다.
무대 뒤에서 상황을 파악하던 ‘스트라빈스키’는 이 상황에 화가 난 안무가 ‘니진스키’가 흥분하여 무대 위로 뛰쳐나갈까봐 그의 옷자락을 꽉 붙잡고 있었고 또 러시아 발레단의 단장이었던 ‘디아길레프’는 조명기사에게 소동을 진정시키기 위해 극장의 조명을 계속 켰다가 끄도록 지시를 했다. 이렇게까지 해서라도 소동을 진정시키려했지만 진정시키려고 하면 할수록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결국 공연도중에 경찰까지 출동해서 공연을 아수라장으로 만든 수십 명의 음악 훌리건들을 공연장 밖으로 쫓아내었다.
하지만 공연의 소란은 훌리건을 쫓은 것과 상관없이 아무런 진전이 없었다. 더욱이 당시 음악회가 세기의 토픽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이공연이 폭동으로 얼룩진 가운데에도 공연을 끝까지 강행했는 것이다.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이 관객들로 하여금 폭동이 일어날 정도로 엄청난 충격을 준 이유는 시대를 앞선 음악적 표현과 그의 철학 때문이었다. 전통적으로 보수적인 기독교를 믿어온 파리 시민들에게 태양신이라는 신에게 간택된 처녀를 재물로 바치는 이교도적인 의식을 납득할 수가 없었고 그의 음악적 철학이 표현된 원색적인 불협화음, 기하학적으로 원시적인 리듬 등이 당시 파리 시민들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혁명’이었기 때문이다.
파리의 공연장 난동 이후에도 한동안 그 사건은 대중들의 뇌리에서 잊혀지지 않았다. 혁명을 옹호하는 부류와 보수적인 음악을 고집하는 부류간의 대립이 표면화된 것이었다. 어느 평론가는 “우리시대 음악 중 가장 우스꽝스러운 사기이다.”라고 폄하했을 만큼 비난의 목소리가 컸기에 스트라빈스키는 스트레스로 인해 병원에 입원을 할 정도로 정신적 고통이 컸었다.
파리음악계가 그의 음악을 잠시 잊고 시간이 지난 1년 후에 그의 음악 ‘봄의 제전’은 다시 파리에서 재공연이 되었다. 이번에는 발레가 빠지고 순수하게 관현악곡으로 이루어진 전통적인 콘서트 형식이었다. 공연장의 분위기는 1년 전과는 사뭇 완전히 달랐고 연주회는 아주 순조롭게 진행이 되었다. 그의 음악은 새로 고친 부분이 하나도 없었고 다만 발레가 빠진 음악회였을 뿐이었다. 그는 1년 전과 같이 야유의 비난을 받을 것이라 생각하였지만 예상치도 못한 열렬한 반응에 스트라빈스키는 그제야 자신의 음악을 이해해주는 파리 시민들에게 감격의 눈물을 흘릴 수가 있었다. 이로 말미암아 30세의 젊은 나이에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

‘봄의 제전’은 태양신에게 처녀를 제물로 바치는 러시아 이교도들의 종교적 의식을 표현하고 있다. 이 작품은 2부로 나누어져 총 14곡으로 작곡되었다.
제1부에는 ‘대지에 대한 예찬’(L’Adoration de la terre)라는 제목으로 서주의 음악으로 시작하여 ‘봄의 징조’, ‘젊은 처녀들의 춤’, ‘유괴의 유희’, ‘봄의 론도’, ‘서로 다투는 부족들의 유희’, ‘현자의 행렬’, ‘대지에의 찬양’, ‘대지의 춤’ 등의 순서로 연주된다. 이런 제목들만 보아도 쉽게 내용을 상상할 수 있는데 비유하자면 스트라빈스키의 음악은 ‘혹성탈출’ 같은 영화배경음악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제2부 역시 서주로 음악이 시작되는데 ‘희생’ 또는 ‘제물’(Le Sacrifice)이라고 제목을 명할 수 있다. ‘처녀들의 신비한 모임’, ‘간택된 처녀에 대한 찬미’, ‘조상의 혼을 불러옴’, ‘조상들의 의식’, ‘희생의 춤, 선택된 처녀’의 순으로 연주된다. 태곳적 태양신을 숭상하는 이교도들의 제물 의식 이야기를 상상하며 감상한다면 한편의 재미있는 영화 한편을 보는 듯 쉽게 상상이 될 것이다.
이 작품의 매력은 무엇보다 원시적이면서 예상치 못하는 강렬한 변박자의 리듬, 더불어 불협화음, 곡 전체를 손 안에서 주무르듯 강약을 오가는 선율 속에 쉴 새 없이 변화하는 박자는 인간의 내재된 본능을 깨우는 것이다.

△미치고 싶을 때 마음을 진정시키는 음악, 스트라빈스키
이고르 스트라빈스키는 러시아에서 1882년 태어나 러시아 혁명 후 고국으로 귀향하지 않고 여러 나라를 전전하다가 20대 후반과 30대 초반 무렵에 프랑스 파리에서 살며 음악가로서의 명성을 얻게 되었다. 그의 마지막 종착지는 미국이었고 1939년 미국에 귀화하여 1971년에 사망한다. 미국과 옛 소련이 냉전으로 대립하던 1962년 그의 나이 80세, 48년 만에 고향땅을 단 한번 밟았다.
아버지가 성악가였고 스트라빈스키는 어릴 적부터 음악 신동이라는 소리를 듣고 자랐지만 음악가가 되기 위해 음악공부는 전적으로 하지 않았다. 청년이 되어서‘림스키코르샤코프’에게 작곡을 배웠고 최초의 작품 ‘불새’(1910년)의 성공으로 그는 일약 스타가 되었다.
100여 년 전에도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은 파리사람들에게 문화적인 충격을 주었듯이 그의 음악은 현재에 까지도 쉽게 다가설 수 없는 파격적인 음악 미학을 보여준다.
그렇게 스트라빈스키는 자신이 가진 ‘실험성’을 무기로 기존 클래식 음악의 틀을 깨고 새로운 음악을 창조해냈다.
그래서 스트라빈스키는 21세기에 들어서도 ‘창의성’과 ‘작가정신’을 기반으로 살아가는 안무가, 연출가, 영화감독, 극작가 등 다양한 문화예술분야의 창작가들에게 영감을 주는 음악이 되고 있다.
100년 전의 음악이 100년 후의 현재에서도 미래를 가리키고 있으니 그 저력은 실로 대단한 것이라고 하겠다.
그의 음악은 제어되지 않는 터져버리기 직전의 원초적 심장소리를 들려준다. 모차르트가 도시의 안락함을 즐기는 귀족들을 위한 지적인 음악이라고 비유한다면 스트라빈스키는 과감하게도 아프리카 들판으로 혼자 배낭여행을 떠나고 싶은 젊은이들을 위한 감성적인 음악이라고 말하고 싶다.
고루한 일상에서 탈피해서, 무언가 미쳐버리고 싶은 마음을 진정시키고 싶을 때 들으면 좋은 음악이 스트라빈스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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