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도민일보] 존 메이어의 ‘Room For Squares’를 들으며
-편두통의 방편
며칠이나 지속된 편두통에 무기력한 연말이었다. 약을 먹고 오후 내도록 잠에 들기도 했고, 물을 몇 리터나 마시기도 했으며, 산책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도무지 영문을 모를 이 통증은 이젠 두 발을 뻗고 정착을 하기로 결심한 것처럼 후두엽 한 구석에서 떠날 줄 몰랐다. 좀처럼 얌전한가 싶다가도 작고 날카로운 바늘로 맥락 없는 고통을 전달하려 들었다. 어두운 밤에 예고도 없이 카메라 플래시를 터트린 것처럼 번쩍번쩍한 통증이 온몸으로 전이되는 기분이었다. 이 원인불명의 두통을 잊기 위해서는 갖은 방법을 동원해야만 했다. 맛있는 음식으로 보상을 해주거나 몰입도 높은 영화로 잠시 고통을 마취시키는 것이다. 혀를 춤추게 하고, 눈을 평온하게 하며, 코를 들뜨게 하고, 귀를 달달하게 하라. 스스로에게 내린 이 명령은 어서 빨리 편두통이 몸속에서 떠나가 버리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어쨌거나 새해를 고통 속에서 맞이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동네 제과점에서 사온 눅눅하면서도 달콤한 슈톨렌,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의 표지 그림으로 알려진 모리스 루이스의 정직하고 선명한 색의 조화, 아쿠아 디 파르마 콜로니아 클럽의 낮고 짙은 클래식 향, 그리고 존 메이어. 나는 제의라도 벌이는 심정으로 제물을 바치기로 했다. 시간을 들이고 공을 들여 내가 준비한 선물을 감각기관에게 전달했다. 나는 이 두통의 억울함을 스스로에게 보상하는 다소 기이한 행정적 질서를 확립하며 새해를 맞이하고 있었다.
-존 메이어
-오, 우상이여 부디
그러니까 내가 이 고통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면서 찾은 사람이 존 메이어라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그는 내가 음악을 포기한 그 지점에서부터 출발한 사람이었고, 내가 선택하지 못한 길에 확신을 가지고 걸어간 사람이었다. ‘No such thing’은 그의 음악적 선포를 알린 당찬 곡으로 ‘Welcome to the real world’라는 가사로 시작한다. 진짜 세상에 온 것을 환영해. 그가 나에게 이야기 하는 것 같다. 이 노래에 등장하는 말 잘 듣는 소년은 나를 빗댄 조롱은 아닐까. 책에서만 답을 구하고, 파티의 왕이 되고 싶어 하는 어른이면서도 어린이인 변종의 상태, 키덜트의 끝판대장, 존이 진짜 세상을 알려주고 싶어 했던 그 대상은 바로 내가 아닐까. 이 새해 아침에 말이다. 어쩌면 존 메이어로부터 나의 두통은 시작된 것이다.
아직 젊고 창창한 존 메이어가 17년 전에 발매한 이 앨범에 한발 더 다가가며, 그 겁 없는 목소리 속에서 무한한 희망을 발견해 낸다. 그래, 아직 늦지 않은 것인지도 모른다. 나에게는 17년보다 더 많은 세월이 남아 있을 것이 아닌가. 만약 나에게 다시 한 번 기타와 청춘이 주어진다면 나는 이런 가사로 노래를 부를 것이다. 슈톨렌을 입에 물고, 모리스 루이스를 바라보며, 콜로니아 클럽 향을 맡으며, 존 메이어를, 오, 존 메이어를. 나는 누구이고, 여긴 어디이며, 그 사람은 어디로 갈 것인가. 총알은 한발이면 충분해. 오, 우상이여 부디. 오, 우상이여 부디. 이 나약한 고백을 들어주소서. 오, 우상이여 부디 이 두통을 벗어나게 할 방법을 알려주시오.
오성은 작가(동아대 한국어문학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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