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롤’이 대선에 미치는 영향
  • 모용복선임기자
‘헤어롤’이 대선에 미치는 영향
  • 모용복선임기자
  • 승인 2021.12.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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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YT, 한국 헤어롤 현상 보도
더 이상 타인 시선 의식 않는
젊은층 世態 단적으로 보여줘
개인주의 만연한 사회적 현상
대선주자 청년표심 잡기 총력
헤어롤은 공정의 또다른 얼굴
관념적·포괄적인 정책이 아닌
실질적 도움되는 공약 발굴을

4년 전, 한 낯선 풍경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일인 2017년 3월 10일 오전,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로 출근하면서 머리에 헤어롤을 꽂은 채 청사로 들어가고 있었다. “얼마나 긴장되었으면…”하고 많은 국민들이 안타까운 마음을 금치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헤어롤로 머리를 말아 올려 꾸미는 일은 미용실이 아니면 대부분 집에서 이루어진다. 남들이 보는 앞에서 화장을 하거나 머리를 꾸미는 것은 사회상규상 부끄러운 일로 치부된다. 따라서 온 국민 시선이 집중된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 날 헌법재판소 권한대행이 머리에 헤어롤을 말고 국민 앞에서 모습을 드러냈으니 이는 낯섦을 넘어 다소 충격적이기까지 했다. 만일 헌재소장이 평시에 이런 모습으로 나타났으면 지탄을 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데 4년이 지난 후 풍속도는 완전히 달라졌다. 이제 거리에서 헤어롤을 하고 다니는 젊은 여성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카페나 식당, 버스 안 등에서 헤어롤을 한 채 친구들과 수다를 떨고 음식을 먹는 모습이 그리 낯설지 않다. 자신을 꾸미는데 더 이상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게 된 것이다.

이에 대한 외신 보도가 눈길을 끈다. 지난달 23일 뉴욕타임스는 ‘공공장소에서의 헤어롤? 그들이 머리하는 방식일 뿐’이라는 기사에서 한국 여성들이 앞머리에 헤어롤을 마는 것이 하나의 트렌드가 됐다고 분석했다. NYT는 “연예인을 포함해 많은 한국 여성들이 거리에서 헤어롤을 하고 있는 모습이 더 이상 낯설지 않다”면서 “과거에는 꾸미는 모습을 남성에게 보여주는 것을 부끄럽게 여겼지만 이제 젊은 세대들은 남을 신경 쓰지 않고 자유롭게 행동한다”고 덧붙였다.

헤어롤 현상은 요즘 청춘세대 세태(世態)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어르신들은 “집에서나 할 것이지 밖에서 저런 걸 왜 하지?”라며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볼 수도 있고, ‘타인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것 아니냐’라는 부정적인 인식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극단적 개인주의가 만연한 우리사회에서 이러한 모습은 어쩌면 당연한 현상이 아닐까?


제20대 대선이 2개월 여 남은 상황에서 여야 대선 주자들은 청년층 표심을 잡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다. 전체 유권자의 3분의 1이나 차지하는 2030세대가 이번 대선에서 캐스팅보트로 떠오른 만큼 이들의 표심을 잡지 않고선 대권을 거머쥐기가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권은 각종 청년정책 개발과 콘텐츠 발굴에 노력을 쏟고 있지만 아직 어느 쪽도 청년표심을 확실히 휘어잡지는 못하고 있다.

청년세대를 이해하려면 ‘공정’이라는 단어를 다시 꺼내들어야 한다. 지난 2019년 소위 ‘조국사태’ 때 SKY 대학을 시작으로 진상 규명을 촉구하는 촛불 집회가 전국 50여개 대학교에서 열렸다. 대학생들은 ‘공정사회’를 부르짖으며 조국 장관 사퇴와 자녀 입시비리 의혹 진상규명을 촉구했다. 결국 조국 장관은 낙마했으며 딸 입시부정 의혹을 받던 부인 정경심 씨는 영어(囹圄)의 몸이 되었다.

그런데 2년이 흐른 지금 우리사회는 더 공정해졌는가? 모 국회의원 아들은 7년을 다닌 회사에서 퇴직금으로 50억 원을 받았으며, 유력 대선후보 부인과 아들은 각종 허위경력과 도박문제로 국민지탄을 받고 있다. 그런데도 대학가는 너무나 조용하다. 불공정이 조국사태 때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는데도 말이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공정사회는 부패가 없으며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공평한 기회를 제공하고 개인의 자유와 개성, 근면과 창의를 장려하며 약자를 배려하는 사회다. 우리는 ‘한강의 기적’이라 불릴 만큼 전 세계에서 유례없는 고속 성장을 이뤄냈지만 그 과정에서 편법과 반칙이 난무하고 결과 지상주의가 만연하면서 절차나 과정을 소홀히 하고 결과에 불복하는 문화가 자라게 됐다. 또 계층간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면서 상대적 빈곤과 소외감 확산으로 사회 갈등이 증폭됐다. 이와 더불어 학연, 지연 등 연줄이 우리사회를 날줄과 씨줄로 뒤덮어 공정문화가 싹틀 여지를 차단해 버렸다.

따라서 정부가 아무리 공정사회 실천을 국정과제로 추진하고 청년들이 제 아무리 공정을 부르짖어도 체인 벗겨진 자전거요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다. 그들이 찾는 공정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것이었다. 어쩌면 헤어롤은 개인적이고 독립적인 가치를 추구한다는 면에서 청년들이 부르짖는 ‘공정’의 또다른 얼굴일 지도 모른다. 그들은 국가나 사회 전체보다는 자신의 일이 더 중요하며, 간섭과 불이익을 받으면 불공정하다고 여긴다. 이는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시대적 흐름이다. 최근 들어 코로나19 팬데믹이 이를 가속화시켰을 따름이다. 청년들에게 관념적이고 포괄적인 정책은 한낱 공수표(空手票)에 불과하다. 자신에게 피와 살이 되고 곧바로 실천 가능한 공약만이 이들의 마음을 잡을 수 있다. 일자리든 돈이든 청년표심을 잡으려면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정책 발굴이 중요한 이유다. 모용복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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