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정부와 의사들 주장대로 경증 응급환자가 응급실 뺑뺑이의 주범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사실이 아니다. 우리나라 응급환자 수는 외국의 1/3 수준에 불과하다. 미국의 인구당 응급환자 수는 우리나라의 3배를 넘어서고, 영국의 응급환자 수도 2.5배에 달한다. 일부 의사들 주장처럼 응급실 진료비가 싸서 응급실을 남용한다고 할 수 없다. 둘째 외국에 비해 경증 환자의 비중도 높다고 하기 어렵다. 우리나라 응급환자 중 입원을 하는 환자의 비중은 미국에 비해 10% 더 높다.
실제 자료를 분석해 보면 센터의 응급환자 수와 중증 응급환자 전원율 간 아무 상관관계가 없다. 연간 응급환자 수 약 3만명밖에 안 되는 조선대병원과 중앙대병원의 전원율이 8~9%에 이르지만 응급환자가 7만명이 넘는 분당차병원, 의정부병원, 길병원 전원율은 3~4% 수준이다. 이른바 ‘빅5병원’이라고 불리는 삼성서울병원의 전원율은 응급환자 수가 비슷한 계명대동산병원이나 건국대병원에 비해 2.5배 높다. 이는 경증 응급환자가 많아서 응급실 뺑뺑이가 일어나는 게 아닌 것을 보여준다.
진짜 원인은 응급실에 의사가 부족하고, 병원이 응급환자에게 입원실, 중환자실, 수술할 의사를 내주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응급실 전문의 수는 미국의 3분의 1에 불과하다. 대학병원은 입원실의 15%, 중환자실의 18%, 수술실의 2%만 응급환자에게 배정하고 있고, 대부분의 자원을 비응급·비중증 환자에게 배정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응급실 뺑뺑이의 원인은 환자가 아니라 병원에 있다.
백번 양보해서 경증 응급환자가 센터를 이용하지 못하게 해 응급실 뺑뺑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역시 아니다. 먼저 의료전문가가 아닌 응급환자는 자신이 중증인지 경증인지 구분할 능력이 없다. 전 세계 어느 나라도 응급환자에게 중증, 경증을 구분해서 적절한 수준의 병원을 선택하라는 의무를 부과하는 나라도 없다. 119 구급대가 환자의 중증도를 구분해서 적절한 병원으로 이송하도록 하는 방안 역시 큰 효과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전체 응급환자 중 119 구급대가 이송하는 경증 환자(한국형 응급환자 분류 도구 기준 4~5등급)는 6.8%에 불과하다.
정부 계획대로 센터를 찾은 경증 응급환자를 작은 응급병원으로 전원시켜도 될까? 위험하다. 응급의료에서 중증 환자와 경증 환자를 나누는 이유는 시급하게 진료할 중증환자를 찾아내기 위한 것이지 경증으로 분류된 환자를 다른 병원으로 전원시키기 위한 게 아니다. 실제 한국형 응급환자 분류 도구를 기준으로 4군 경증 환자와 3군 중등도 노인 환자의 입원율, 중환자실 입원율, 사망률에 큰 차이가 나는 것은 아니다. 경증 환자로 분류된 약 186만명의 응급환자 중 약 3만4000명이 사망할 수 있다. 선진국 응급의료 전문가들은 경증으로 분류된 환자 중 일부는 나중에 중증 환자로 전환될 가능성이 있어 중증도 분류 결과만으로 경증 환자를 다른 병원으로 전원시키면 안 된다고 지적한다.
그러면 응급실 뺑뺑이를 없애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 응급실 전문의를 지금의 2배로 늘리고, 외과 등 배후 진료과 인력을 병원당 대략 10명쯤 늘리면 된다. 당장 내년부터 새로 배출되는 내과, 외과, 소아청소년과, 흉부외과 등 필수 의료 분야 전문의들이 개원하는 대신 대학교수로 응급실 전담전문으로 고용하면 된다. 전국 권역응급의료센터 응급실 전담전문의와 배후 진료과 전문의를 늘리는데 필요한 의사 수는 약 800명이다. 큰 병원에 자리가 없어서 개원하는 필수 진료과 의사를 고용하도록 하면 된다.
둘째, 대형병원에 중요한 상급종합병원 지정과 7000억원 규모의 진료비 가산제도인 의료 질 평가지원금을 병원의 응급진료 기능과 연계해야 한다. 끝으로 선진국처럼 응급환자가 넘쳐나 응급환자를 받을 수 없는 상황이 되면 환자를 보내지 말라고 미리 선언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무조건 환자를 받아서 우선 살려놓도록 해야 한다.김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의료관리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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