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자산 서식지는 안전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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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자산 서식지는 안전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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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3.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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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에 멕시코 마약상의 이야기를 그린 ‘나르코스’가 있다. 여기에 보면 1995년 초에 멕시코 사람들은 갑자기 ‘내 돈 어디갔나!’를 부르짖는다. 부자와 중산층 모두. 무슨 일이 일어났나?

멕시코는 페소화를 1달러 3.5페소에서 갑자기 5.5페소 수준으로 평가절하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7.5페소까지 떨어진다. 가치가 무려 114%가 떨어졌다. 우리나라 환율로 비유해보면 1000원 하던 환율이 2140원이 된 격이다. 내 예금의 잔고는 그대로인데 내 예금으로 살 수 있는 해외 물건의 가격이 2배 이상 오른 셈이다. 이러니 다들 ‘내 돈 어디갔나’를 부르짖은 것이다. 예금도 통화의 가치가 급변하면 안전하지 않은 것이다.

베네수엘라 관련 방송을 본 적이 있다. 남편과 아내가 의사와 교수인데 남편은 해외로 돈 벌러 갔고 아내는 국내에서 생활하고 있다. 인상 깊었던 장면은 기자와 함께 주유소에 들러 가솔린을 넣고 나서, 대금으로 카드를 내미는 게 아니라 칫솔 세트를 주는 것이었다. 베네수엘라의 물가가 급등한 탓이다.

어느 정도냐고? 2017년에 440%, 2018년에 6만5000%, 2019년에 2만%다. 국제 유가 폭락에 미국의 경제 제재가 겹치면서 한 순간에 나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 안전하다고 생각되던 현금과 예금은 가치가 폭락했다.

베네수엘라 대통령 차베스는 베네수엘라가 한창 잘 나가던 2006년에 원유대금을 달러가 아닌 유로로 변경할 것을 검토한다고 했다. 별 것 아니라고 생각되지만 이 조치는 미국에는 결코 용납되지 못할 일이었다. 미국이 1971년에 달러를 금으로 바꾸어주는 금태환을 중단한 뒤에 미국 달러의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 사용했던 정책이 ‘페트로 달러’였다.

미국은 달러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 1975년에 사우디아라비아에 중동의 맹주 지위를 보장하는 대신 원유 결제 대금을 달러로만 할 것을 제안했다. 대부분의 나라가 거래하는 원유를 달러로 결제하니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에 큰 도움이 되었다. 차베스는 이 체제를 벗어나려 한 것이다.

우리나라는 장기 저성장에 들어갔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취임 때부터 우리 경제의 장기 저성장을 우려했다. 물가 상승 문제를 극복하고 나면 다음 도전 과제는 장기 저성장이라고 했을 정도다. 그런데 최근 기자 회견에서는 장기 저성장에 ‘이미 들어섰다’고 답했다. 우리나라 장기 저성장은 인구 문제가 중심에 있다. 세계에서 유례 없이 젊은 인구가 줄어들고 나이 든 인구가 많아진다.

우리나라 인구 문제는 ‘급변한다’, ‘유례가 없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늙어간다’라는 수식어가 붙는데, 이보다는 ‘붕괴한다’는 수식어가 맞을 듯하다. 젊은 사람과 나이 든 사람과의 구성비가 너무 맞지 않아 사회가 정상적으로 지탱되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는 뜻이다. 우리나라의 핵심생산인구에 해당하는 25~64세의 숫자는 지난 30년간 1000만명이 증가했다. 하지만 앞으로 30년 동안 1000만명이 감소한다. 10년에 300만명 정도가 줄어든다. 이민을 받아들여도 전혀 해결할 수 없는 숫자다.

독일에서 벤츠와 BMW를 타고 다니는 사람은 연금소득자라고 한다. 오스트리아도 비싸고 좋은 곳에서 서비스 받는 사람은 은퇴자들이다. 고령화가 심각한 유럽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고성장 시기에 잘 준비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유럽은 이민, 난민 등으로 주변국의 젊은이들이 이동했다. 이민 오는 사람은 나이 든 사람이 아니라 유소년이나 청년이다. 부모는 머무르고 애들은 보낸다. 이처럼 유럽은 1.5명 내외의 합계출산율과 이민이 고령사회를 지탱해주고 있다.

우리의 현실은? 합계출산율 0.7명 수준에 이민은 별로 없다. 게다가 이창용 총재는 일본은 노인이 부자인데 우리는 노인이 빈곤해서 더 걱정이라고 말한 바 있다. 우리는 인구구조 붕괴에 마땅한 대책이 없다. 기둥이 흔들려도 옆에 받쳐 줄 마땅한 지지대가 없다. 장기 저성장을 저지할 방법이 없다. 장기 저성장이 지속되면 국가의 채무가 증가한다. 한 마디로 과거의 고성장·저부채 사회에서 저성장·고부채 사회로 이행한다. 이렇게 되면 국가의 안정성이 떨어진다. 충격에 약하고 충격을 받으면 회복하기 쉽지 않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자산관리의 가장 중요한 화두는 ‘내 자산을 어디에 둘 것인가’라는 문제다. 무엇보다 자산의 서식지를 글로벌 우량 자산으로 옮겨야 한다. 국내에 있는 안전한 자산이 안전한 것이 아니다. 안전이라는 범위를 국가 내로 한정하지 말고 글로벌로 확장해서 보아야 한다. 예금은 안전하다고 하지만 국가의 시스템이 흔들리면 통화 가치가 떨어지거나 물가가 오르면서 자산의 실질 가치가 떨어진다. 글로벌 차원의 안전을 추구해야 하는 이유다. 미래의 시간이 많이 남아 있는 젊은층은 더욱 그러하다.

고령사회는 서울-양양 고속도로에 있는 터널과 같다. 한 두개 긴 터널을 지난다고 끝나는 게 아니라 터널을 하나 지나면 또 터널이 나온다. 고령화라는 터널은 질릴만큼 계속 이어진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그 첫번째 터널 정도를 지나고 있다. 안전 자산의 기준을 국내에 한정하지 말고 글로벌로 확장해야 하며 자산의 서식지를 국내에서 글로벌로 옮겨야 한다. 자신이 평생 살던 서식지를 이동하는 게 쉽지 않지만 차근차근 적응하며 이동할 필요가 있다.

김경록 미래에셋자산운용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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