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의사를 늘려봐야 소용이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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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의사를 늘려봐야 소용이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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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3.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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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만 늘려봐야 소용없다’는 주장이 언론에 자주 등장한다. 우리 국민 대부분이 의사가 부족하다는 생각을 굳히자 의사가 부족하지 않다는 주장을 대신할 새로운 무기로 의사들이 무용론을 들고 나온 것 같다. 돈 되고 편한 피부미용이나 성형을 하는 의사만 늘지 돈 안 되고 힘든 이른바 ‘기피 과목’ 의사는 늘지 않을 것이고, 수도권과 대도시에만 의사가 몰리지 의사가 부족한 지방으로는 의사가 가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정말 의사를 늘려봐야 소용이 없을까. 의사들 말대로 ‘의사만’ 늘리고 정부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큰 효과를 내기 어려울 가능성이 높다. 큰 병원에서 일하는 기피과목 의사가 늘어나긴 하겠지만 적지 않은 의사들이 대도시 동네의원으로 빠져나갈 것이고, 지방에 의사가 늘어나긴 하겠지만 수도권과 대도시에 의사가 더 많이 늘어날 것이다.

하지만 의사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의사만’ 늘리면 된다고 주장한 사람은 없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의사를 늘리면서 동시에 의사가 부족한 곳에서 새로 배출된 의사들이 일할 수 있도록 잘못된 의료제도를 고치고 정부의 투자도 늘려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기피과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큰 종합병원이 전문의를 더 많이 고용하도록 하고, 이들 병원이 전문의를 충분히 고용해도 손해를 보지 않도록 건강보험 수가를 인상하고, 너도나도 심장병·뇌졸중 환자를 진료하겠다고 나서는 바람에 의사 인력이 분산되어 정작 밤에는 응급환자를 받아주는 병원이 없는 무질서한 의료시장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지역 간 의료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의료취약지에 큰 종합병원을 확충하고 동시에 지역의사제를 도입해 취약지에서 일할 의사를 배출하고, 국립대병원을 중심으로 국민들이 자기 사는 곳에서 대부분의 필수의료를 이용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이른바 ‘지역완결형 의료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계속 말해왔다.

정부도 의대 정원 확대와 필수의료 정책을 패키지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6월 보건복지부 차관은 “응급실 뺑뺑이, 소아과 오픈런, 지방의료원 의사 구인난 등 어려운 문제들이 근본적으로 의사 인력 부족에서 기인한다”고 지적하면서, “의사 인력 확충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의사 인력 확충이 없으면 절대로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다”, “의대 정원 확대만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으므로 필수의료 정책을 패키지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앞선 전문가들이 제안한 바와 같이 병원이 더 많은 전문의를 고용하도록 해서 의사들의 근로환경을 개선하고, 힘들게 응급환자와 중환자를 보는 의사들이 더 많은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동시에 응급환자와 중환자를 보면 의사들이 의료 분쟁으로 힘들어하지 않도록 하는 정책도 함께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뿐만 아니라 의사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늘어난 의사 대부분이 피부미용이나 성형을 하는 일도 없을 것이다. 동네의원의 피부과와 성형의사를 다 합쳐도 전체 의사의 3%에 남짓하고, 여기에 피부미용이나 성형을 주로 하는 일반의와 다른 과목 전문의를 합쳐도 전체 의사의 10%를 넘지 않을 것이다. 피부미용이나 성형과 같은 비급여 진료를 주로 하는 동네의원이 계속 늘어나면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의해 머지않아 이 시장은 레드오션이 될 가능성이 높다.

세계적인 경제학자 앨버트 허쉬만에 따르면 ‘그래 봐야 소용없다’는 무용론은 기득권 세력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협하는 변화를 막기 위해 사용해온 아주 유서 깊은 무기이다. 기득권 세력은 보통선거권을 도입하자고 하면 그래봐야 소수 엘리트에 의한 지배는 바뀌지 않을 것이고 주장했고, 복지제도를 도입하자고 하면 그래봐야 저소득층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회유했다.

‘의사도 늘리고 나쁜 의료제도도 고치자는’ 주장을 ‘의사만’ 늘리자는 주장으로 둔갑시켜 ‘늘려봐야 소용없다’는 무용론을 강변하는 의사들의 주장과 너무도 흡사하다. 한술 더 떠서 의사와 병원은 의료취약지에서 일할 의사를 배출할 지역의사제 도입, 병원이 전문의를 더 많이 고용하도록 하는 법규 제정, 의사 부족을 부추기는 무너진 의료전달체계를 복원하는 정책에 지속적으로 반대해왔다. 정부의 의대 증원 정책을 ‘의사만’ 늘리는 정책으로 만들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의사와 병원인 것이다.

물론 지난 의료정책을 돌아보면 보건복지부의 말을 온전히 믿기는 어렵다. 실속은 없고 포장만 요란한 정책을 내놓거나, 약속한대로 정책이 시행되지 않은 경우가 다반사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다원주의 사회에서는 정부가 알아서 우리 문제를 잘 해결해주길 기대하기보다는 정부의 등을 떠밀어 국민이 원하는 정책을 하게 만들어야 한다.

이제까지 의사들이 정말로 환자와 우리 의료체계를 걱정해서 의사를 늘리는 것에 반대했다면, ‘의사를 늘려봐야 소용없다’는 무용론을 내세울 것이 아니라 의사를 늘리면서 동시에 정부가 나쁜 의료체계를 근본적으로 뜯어 고치도록 정부의 등을 세게 떠밀어야 한다. 힘 센 의사들이 나서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김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의료관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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