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리장성(萬里長城)의 경고
  • 모용복국장
만리장성(萬里長城)의 경고
  • 모용복국장
  • 승인 2023.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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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둥에 있는 고구려 城 박작성
中정부 유물·유적 모두 없앤후
새롭게 호산장성이라 명명하고
만리장성 ‘동쪽 시작’이라 홍보
인근주민 통행 불편 해소 위해
만리장성 일부 훼손 사건 발생
제 유물도 제대로 못 지키면서
남의 역사 편입 시도 가소로와
모용복 선임기자.

6년 전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아 중국 동북3성 취재를 간 적이 있다. 점심때가 조금 지나 심양공항에 도착해 고구려 산성(山城)을 보기 위해 단둥(丹東)으로 향했다.

백두산 천지에서 발원한 물이 수백 킬로미터를 달려 서해로 흘러들기 전 잠시 머무는 곳. 단둥으로 가는 내내 좁아졌다 넓어졌다를 반복하며 이어지는 압록강 너머에는 멱을 감는 북한 아이들 모습이 눈에 띄었다. 고구려 성(城)인 박작성(泊灼城)은 단둥 시내에서 20여㎞ 떨어진 관전현 호산에 위치해 있었다. 압록강 하구에 위치해 강을 거슬러 올라오는 길목을 통제하는 요충성 역할을 했다.

박작성은 고구려와 당나라의 전쟁에서 자주 등장한다. 문헌에 의하면, 645년(보장왕 4년) 당 태종은 대규모 고구려 침략이 실패한 지 3년 후인 648년 설만철로 하여금 3만여 군사를 이끌고 박작성을 공격케 했다. 설만철이 압록강을 거슬러 박작성 남쪽 40여리 지점에 진영을 갖추자 박작성 성주(城主) 소부손이 이에 대항해 1만여 명의 군대로 성을 지켰으며, 고구려 장군 고문이 오골성과 안시성 군대 3만여 기를 거느리고 와서 구원하였다고 한다.

박작성 입구에 도착하니 호산장성(虎山長城)이라는 웅장한 한자 명판이 압도적으로 다가왔다. 중국측이 박작성 대신 붙인 이름이다. 고구려 천리장성의 일부이기도 하다. 하지만 중국이 동북공정의 일환으로 박작성을 만리장성의 일부로 만들기 위해 마구 훼손한 탓에 원형을 거의 상실하고 말았다.


 

단둥시에서 20여㎞ 떨어진 관전현 호산에 위치한 고구려 박작성. 중국이 동북공정의 일환으로 박작성 유물·유적을 모두 철거하고 호산장성이라 이름을 붙였다. 필자 뒤쪽으로 산 정상부에 있는 망루가 보인다.
단둥시에서 20여㎞ 떨어진 관전현 호산에 위치한 고구려 박작성. 중국이 동북공정의 일환으로 박작성 유물·유적을 모두 철거하고 호산장성이라 이름을 붙였다. 필자 뒤쪽으로 산 정상부에 있는 망루가 보인다.

중국이 1990년대부터 성을 발굴하면서 석벽과 우물, 목선(木船)과 같은 고구려 유물이 대거 출토됐지만 고구려 유물을 없애버리고 박작성 유적은 중국식 벽돌 성으로 개조해 호산장성이라 이름을 붙였다. 그리고 내·외국인을 상대로 만리장성의 동쪽 끝이라고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실제로 성 외벽에 ‘만리장성이 동쪽에서 시작되는 곳’이라고 쓴 붉은 현수막이 눈에 띄었다. 지금은 산 정상에 자그마한 망루만 남아 박작성이 고구려 성임을 웅변하고 있었다.

현지 안내원은 중국 정부의 이러한 주장에 대해 중국인들조차 콧방귀를 뀐다고 했다. 연세께나 있는 어른들은 호산장성이 고구려 성이 뻔한데 중국 정부가 억지주장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만약 중국 측 주장대로 박작성이 만리장성의 동쪽 기점이 되면 그 길이가 무려 2만 리가 넘는데 그게 말이 되냐”며 ‘소도 웃을 일’이라고 혀를 찼다. 이처럼 중국 정부가 동북공정 일환으로 고구려를 자국 역사로 편입시키기 위해 터무니없는 짓을 벌이고 있지만 정작 그들이 그토록 자랑하는 만리장성은 내부에서부터 허물어지고 있다.

최근 산시(山西)성 숴저우 유위현에 있는 만리장성 일부가 굴착기로 훼손된 사건이 발생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공안당국은 장성을 허문 38세 남성과 55세 여성을 체포했다. 인근 공사장에 일을 하는 이들은 멀리 돌아가는 것이 번거러워 장성을 허물어 길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이 허문 장성의 폭은 차량 두 대가 교행할 수 있는 규모였다.

주변에 32개 마을이 있어 ‘32 장성’이라 명명된 이 장성은 토성과 봉화대가 원형에 가깝게 보존돼 산시성 내 만리장성 가운데 보존가치가 가장 크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에 따라 중국 국가급 명승지로 등록된 데 이어 1987년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도 등재됐다. 이렇듯 중국 정부가 자랑해마지 않는 만리장성이 정작 자국민의 손에 무참히 훼손되고 말았으니 그들이 얼마나 놀랐을지는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이는 중국의 역사 유물·유적 보존 정책이 엉터리임을 단적으로 나타내는 사례다. 아무리 유물·유적이 중요하다 할지라도 국민 생활과 불편을 돌아보지 않으면 한낱 굴착기 앞에 한 줌 흙이 될 수 있음을 경고한 것이다. 제 역사 유물 하나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그들이 감히 빛나는 우리 고구려 역사를 자기네 역사로 편입하려는 행태가 가소로울 따름이다. 자국민도 다 아는 남의 역사를.

모용복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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