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선생님’
  • 모용복국장
‘의사 선생님’
  • 모용복국장
  • 승인 2023.11.1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부, 40개 의대 정원 확대 수요
발표계획 취소 후 차일피일 미뤄
의사 눈치보기 아니냐 의혹 일어
의사단체 의대 정원 확대에 반대
근본적인 해결책 아냐 정부 압박
병원·간호사·소비자 단체는 찬성
한국, OECD 중 의사 소득 최고
근로자 평균보다 최대 7배 많아
의사 수는 OECD 중 가장 적어
정원확대 반대 주장 설득력 없어

의대 증원 수요발표가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다. 정부는 당초 전국 40개 의과대학에 대해 지난 9일까지 희망하는 정원 확대 숫자를 받은 후 나흘 뒤인 13일 발표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돌연 발표계획을 취소하고 일주일이 넘도록 발표를 미루고 있어 궁금증이 증폭되고 있다. 의사들 눈치를 보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지자 정부는 결과를 정리하는데 시간이 걸리는 것이라고 했다. 대학으로부터 전달받은 증원 숫자를 취합만 하면 되는 일인데 그게 그토록 시간이 걸리는 일인지 이해할 수 없다.

전국 40개 의대가 원하는 증원 규모는 2700명 수준으로, 2020년도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4000명에 달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예상보다 큰 수요에 정부가 의사들의 반발을 우려해 결과 발표를 미룬다는 의혹을 받는 이유다.

의사단체는 의대 정원 확대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항변한다. 실제로 서울시의사회가 지난 10월 20~27일까지 서울시 의사회원 797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의대 정원 확대 반대 이유로 ‘의대 정원 확대가 필수의료 해결책이 아니다’라는 응답이 95%로 1위를 차지했다. ‘의사 과잉 공급으로 인한 의료비 증가와 국민건강 피해(56%)’, ‘이공계 학생 이탈로 인한 과학·산업계 위축에 대한 우려(48%)’가 뒤를 이었다.

의대 정원 확대가 필수의료 해결책이 아니라는 주장은 사실일까? 이는 병원과 간호사 단체를 비롯한 의료계 직역과 환자·소비자 단체들에서 의사단체와는 반대로 의대 정원 확대를 원하는 이유를 설명하지 못한다.

지난 1일 조규홍 복지부 장관 주재로 열린 제2차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보정심)에서 의대 정원 확대 등을 논의했다. 보정심은 보건의료기본법에 근거한 보건의료정책 심의기구다. 정부 부처를 비롯해 의료서비스 공급자인 의협과 대한병원협회(병협), 대한간호사협회(간협)를 비롯해 수요자인 환자단체연합회, 한국소비자연맹 등이 참석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의사 수 부족을 놓고 의협과 다른 대표들 간 입장이 엇갈렸다. 의협은 의대 정원 확대를 반대했지만 나머지 참석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의사 인력이 부족한 만큼 증원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병원단체인 병협은 외과 등 필수의료 분야에서 의료인력 수급 문제가 심각하다고 봤다. 병협은 공식적인 입장을 내진 않았으나 2000년 의약분업 당시 감소한 전체 정원의 10%(351명)는 늘려야 한다는 쪽으로 입장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간협도 의대 정원 확대에 찬성했다. 고령화 등으로 인한 의료서비스 수요 증가를 감안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의료기관에서 근무하는 간호사 수는 인구 1000명당 2.16명(2008년)에서 4.94명(2022년)으로 2배 이상 늘었다. 특히 보건의료 수요자인 환자·소비자단체들은 의대 정원을 늘려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의사들이 정원 확대를 반대하는 실질적인 이유가 ‘밥그릇’ 때문이라는 일부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조사 결과가 나와 주목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최근 발표한 ‘보건의료 2023(Health at a Glance 2023)’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기준 한국 의사의 연평균 총소득은 근로자의 평균 임금보다 최대 7배 가까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OECD 회원국 중 격차가 가장 컸다. 분류별로 살펴보면 한국의 봉직 일반의 임금은 근로자 평균 임금의 2.1배, 개원 일반의는 2.1배, 봉직 전문의는 4.4배, 개원 전문의의 임금은 근로자 평균 대비 6.8배 높았다.

반면 의사 수는 한국이 OECD 국가 중에서도 하위권에 속했다. 2021년 인구 1000명당 개업 의사 수는 2.6명으로 2011년 대비 늘었으나 OECD 평균인 3.7명에는 크게 못미쳤다. 특히 한국의 지역별 의사 밀도는 수도권을 포함한 모든 곳에서 상대적으로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서울 등 수도권이 2021년 인구 1000명당 의사 수는 2.73명으로 국내에서 가장 많았지만 OECD 14개국 도시 지역 평균 의사 수(4.5명)보다는 훨씬 적고, 농촌 지역 평균 의사 수(3.2명)에도 미치지 못했다. 이는 우리의 의료서비스 문제가 수도권 쏠림보다 의사 수 부족이 근본적인 원인이라는 방증이다.

의사는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국가들에서도 높은 수준의 소득을 올리는 대표적인 고소득 전문직이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의사가 다른 노동자들보다 유난히 많은 소득을 벌어들이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며 형평성에도 맞지 않다. 이번 OECD 조사 결과는 의대 정원 확대를 반대하는 진짜 이유가 무엇인지 잘 보여준다. 따라서 의사단체가 반대 목소리를 높이면 높일수록 더욱 초라하게 만들 뿐이다.

우리사회에서 의사는 ‘선생님’이란 호칭을 듣는 몇 안 되는 직업에 속한다. 통상적으로 ‘선생(先生)’은 학생을 가르치는 사람을 말한다. 때로는 사회 지도층 인사와 어떤 분야에서 학예가 뛰어난 사람이거나 남을 높여 부를 때도 쓰인다. 그런데 의사에 대해서는 이런 조건들을 뛰어넘어 무조건 ‘선생님’이라고 부른다. 이는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의사에 대한 무한한 존경과 신뢰를 보내온 우리 국민들의 정서가 투영된 결과다.

국민들은 응급실 뺑뺑이·소아과 오픈런 등으로 큰 불편을 겪는데도 의사들이 ‘밥그릇 지키기’에만 열을 올리는 모습을 보인다면 ‘선생님’이란 호칭 대신 ‘의사님’이라고 부를 날도 머지 않은 듯하다.

모용복 편집국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최신기사
  • 경북 포항시 남구 중앙로 66-1번지 경북도민일보
  • 대표전화 : 054-283-8100
  • 팩스 : 054-283-5335
  • 청소년보호책임자 : 모용복 국장
  • 법인명 : 경북도민일보(주)
  • 제호 : 경북도민일보
  • 등록번호 : 경북 가 00003
  • 인터넷 등록번호 : 경북 아 00716
  • 등록일 : 2004-03-24
  • 발행일 : 2004-03-30
  • 발행인 : 박세환
  • 대표이사 : 김찬수
  • 경북도민일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북도민일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HiDominNews@hidomin.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