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의 쇠락, 도시재생에 희망 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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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의 쇠락, 도시재생에 희망 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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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3.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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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도시는 왜 쇠락하는가
우리는 언제부터 도시 생활을 시작했을까. 인류 최초의 직업은 사냥꾼이었다. 아프리카의 한 움막에서 출발해 수렵과 채집을 하며 긴 여정 끝에 정착 생활을 한 것은 농경을 시작하면서부터이다. 초기 농업은 단순히 씨앗을 뿌려 약간의 작물을 수확할 정도였고 본래의 직업인 사냥꾼 기질을 완전히 내려놓지는 못했다. 인간의 본격적인 정착은 계절의 순화와 기후 변화에 적응하면서 농경에 필요한 여러 정보를 체득하고 분업과 협업이 가능해지면서 시작된다. 이때부터 집단이 거주할 수 있는 나름의 인프라가 조성되어 최초의 도시가 탄생한다.

도시는 인간이 사는 물리적 공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사회제도와 경제체제, 문화까지 인간 삶 전반을 관장하는 물질적, 정신적 기능과 요소까지 담고 있어야 한다. 도시는 구성원들의 주된 삶의 방식에 따라 형태와 기능이 다르게 나타나는 복합적이고 유기체적인 성질을 가지고 있다. 우리 삶의 방식이 여러 시대에 걸쳐 변화를 거듭해 왔듯이 도시의 형태와 기능 또한 삶의 방식에 걸맞은 최적화의 조건으로 지속해 왔기 때문이다.

오늘날까지 남아있는 세계 대부분 도시는 쇠퇴를 경험하는 가운데 나름의 최적화라는 방식으로 극복해 온 도시들이다.

그런데 어떤 도시도 영원할 수 없다는 것이 정설이다. 성장, 정체, 쇠퇴, 재생, 성장을 반복하지만 여기서 재생의 조건이 삶의 방식과 적합하지 않으면 도시는 금방 텅 빈 건물만 남겨진다. 이것이 바로 도시 최후의 단계인 네크로폴리스(Necropolis)이다. 이 같은 사례는 인류 최초의 도시 ‘차탈회위크’에서도 찾을 수 있다. 차탈회위크는 BC7000년경 터키 남부의 아나톨리아 고원에 있는 두 개의 언덕에 조성된 도시를 말한다. 그 규모는 대략 ‘상암월드컵축구경기장’ 37개 크기로 초기에는 5000여 명이 살았고 전성기에는 1만 명까지 살았던 신석기 시대 집단이 거주했던 도시로 알려져 있다. 차탈회위크는 터키 남부 챠루샴바 강을 낀 전형적인 농경 중심의 도시로 발전하였다. 200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유지된 이 도시는 식량을 저장한 곡식 창고와 축사를 만들어 가축을 사육한 흔적도 발견되었다. 이뿐만 아니라 진흙을 다져 정교하게 건축한 집은 2층으로 되어 있고, 마을 전체는 계획된 흔적이 보이는 도로와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이것으로 볼 때 ‘차탈회위크’의 도시문화는 상당히 높았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경제적으로 풍족하고 삶이 안정되면 출생률뿐만 아니라 인구유입도 늘어난다. 초기 인구 5천 명에 맞추어 조성된 도시가 1만 명으로 늘어나면서 ‘차탈회위크’는 급격한 변화를 겪게 된다. 진흙으로 만들어진 집은 몇 번의 재건축 흔적이 발견되고 집과 집 사이에는 통로가 없을 만큼 좁아져 2층을 통하지 않고는 출입할 수 없는 구조로 바뀌었다. 초기에 도시 가장자리에 있던 축사들도 어떠한 이유에서 인지 집 옆에 옮겨졌다. 각종 오물과 쓰레기를 처리할 수 없어 좁은 골목에 쌓아 두었고, 죽은 자의 시신은 뭍을 곳이 없어 집안에 방치할 만큼 생활환경이 열악해졌다. 조사결과 이곳에서 발견된 유골의 93개 중 3분의 1이 감염병에 의해 죽은 것으로 밝혀졌다. BC5000년경 도시 주변에 흐르던 하천이 말라 먼 곳에서 물을 길어와야 할 만큼 자연환경도 급변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농경에 곧바로 영향을 미쳐 곡식의 수확량이 도시인구를 감당할 수 없어 굶어 죽는 사람이 많았다. 기후 변화, 인구 과밀, 전염병 확산, 식량 부족 현상은 도시경제를 마비시켰을 뿐만 아니라 생존을 위협하는 사회적 대혼란을 가져오게 했다. 집안에서 발견된 두개골 중 25개가 골절 흔적이 있어 부족한 식량 문제로 인해 집단 살육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최초의 도시 ‘차탈회위크’는 이렇게 멸망했다.

초기집단 사회에서 이 같은 문제가 발생하는 데에는 여러 원인이 있을 수 있지만, 그중 대표적인 두 가지를 꼽자면 늘어나는 인구를 수용할 만큼 인프라가 계획적이지 못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첫째, 부족한 인프라를 확충하는 대신 집과 집 사이의 골목을 좁혀 이를 부족한 주거시설로 활용하면서 위생, 운송, 의사소통 등의 문제가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둘째, 첫 번째의 원인이 그대로 두 번째의 원인으로 이어져 의사소통이 단절되어 공동체에 닥친 위기를 스스로 협력해 극복할 수 있는 시점을 놓친 것으로 보인다. 길은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의사소통의 통로이다. 공동체 의식 또한 길을 통해 만들어진다. 그런 점에서 ‘차탈회위크’의 도시 소멸은 길을 없애 집으로 활용하면서부터 이미 예견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초기집단 사회는 자연환경에 안타까울 정도로 의존적이고 복종적이었다. 인간이 생존을 위해 자연과 맞서 싸우고 환경을 극복해야 했지만, 농경시대의 자연은 거역할 수 없는 거대한 ‘신’으로서 복종의 대상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에 주어진 여건에 순종하며 살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 농경시대 도시재생에 있어 또 하나의 한계라면, 농경시대 이후 근대 산업시대 도시재생은 어떠했을까.황예림 도시문화 칼럼니스트·지역문화콘텐츠디자인연구소 연구원·김시습금오신화문화제 사무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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