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점포
  • 모용복국장
빈 점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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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4.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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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해읍내 빈 점포 갈수록 늘어
지진·코로나 인한 잇단 악재에
3高·소비심리까지 ‘꽁꽁’ 얼어
빈 점포는 자영업자들의 눈물

대구·경북 대위변제 전국 최고
자영업자 대출금 제 때 못갚아
휴·폐업으로 연금 미납도 속출
자영업 무너지면 가계 ‘직격탄’

지난 주말 휴대폰 충전기가 고장나 흥해 읍내에서 지인이 운영하는 휴대폰 가게를 찾았다. 그런데 휴대폰 가게와 인접한 1·2층 점포에 큰 글씨로 ‘임대’라는 글자가 나붙어 있는 게 아닌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축산물유통센터 등이 들어서 있던 곳이다. 지인에게 사연을 물으니 일부는 장사가 안 돼서 문을 닫고, 또 일부는 목이 좋은 곳을 찾아 다른 장소로 옮겨갔다고 했다. 자신도 건물주 아들이 이 곳에서 커피숍을 할 계획이어서 이달 중으로 가게를 비워줘야 한다며 근심어린 표정이었다.

새 충전기를 받아들고 그가 봐뒀다는 점포를 보러 갔다. 공간은 다소 협소했으나 지금보다 세(貰)도 적고 단독 건물에 위치도 번화가에서 조금 떨어져 있어 오히려 장사를 하기엔 안성맞춤인 듯했다. 좁은 공간이 맘에 걸리는지 그는 썩 내켜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내가 “그 조건에 이만한 가게를 얻기는 어렵지 않겠냐”고 하자 “요즘 빈 점포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런 말을 하느냐”며 그는 손사래를 쳤다. 지진이 났을 때나 코로나 시절보다 지금이 빈 점포가 더 많아 입맛대로 골라 갈 수 있다는 것이다.

불황으로 인한 빈 점포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포항의 대표적인 중심가인 육거리에서 오거리 사이를 지나다 보면 한 곳 건너 한 곳이 비어 있을 정도로 빈 점포가 많이 눈에 띈다. 뿐만 아니라 인구 7만을 자랑하는 양덕동 대로변엔 영업 중인 곳보다 비어 있는 점포가 더 많을 정도로 문 닫은 가게들이 수두룩하다. 한 때 포항 최대 주거지역을 자랑하던 신도시가 맞나 싶을 정도로 을씨년스러운 풍경이다.

그나마 읍·면 등 변두리지역은 도심에 비해 사정이 나은 편이었다. 저렴한 임대료에 단골장사를 하다 보니 가게에 거미줄 치는 건 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흥해읍도 예전 모습이 아니다. 지진과 코로나19를 거치면서 민심이 흉흉해지고 3고(고금리·고물가·고환율)에다 소비심리까지 얼어붙어 자영업자들은 장사가 안 돼 빈 점포가 갈수록 늘고 있다.

이는 비단 포항만의 사정이 아니다. 전국에서 자영업자가 많기로 1·2위를 다투는 대구·경북은 자영업자들이 은행 대출을 갚지 못해 지역 신용보증재단이 대신 갚아준 대위변제율이 지난해 상반기 전국에서 가장 많았다. 대위변제는 소상공인이 대출을 상환하지 못할 때 보증을 한 신용보증재단이 대신 채무를 갚는 것을 말한다.


지난해 1~7월 대위변제율은 대구가 1.3→4.8%로 전년 동기대비 3.5%포인트나 상승해 전국에서 가장 높았다. 경북도 변제율이 1.5→4.6%로 3.1%포인트 올라 뒤를 이었다. 두 곳 모두 전국 평균 변제율(3.4%)보다 월등히 높아 위험수준에 이른 상황이다. 이처럼 대구·경북지역 대위변제율이 높은 것은 지역 소상공인이 은행 빚을 갚지 못할 만큼 경제여건이 나빠졌음을 의미한다. 계속되는 경제침체로 소득이 준 데다 부쩍 오른 대출금리가 상환 능력 범위를 벗어났기 때문이다.

자영업자의 현실을 보여주는 지표는 또 있다. 최근 국회입법조사처의 ‘자영업자의 국민연금 장기 가입 유도 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국민연금 전체 가입자 2199만명 중 납부예외자는 306만명, 13개월 이상 장기체납자는 88만명으로 전체 17.9%가 연금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임금에서 보험료를 원천 공제하는 사업장가입자는 체납자나 납부예외 대상이 되는 경우가 드물다는 점에서 사각지대에 놓인 대부분은 지역가입자로 볼 수 있다. 또 국민연금법상 1인 소상공인이나 고용원이 없는 자영업자는 지역가입자로 연금에 가입해야 하는 만큼 지역가입자 중 이들의 비중이 클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국민연금 지역가입자인 1인 소상공인·자영업자들이 휴·폐업으로 인해 국민연금 보험료를 납부하지 못하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돌아오는 길에 민속박물관 인근에 위치한 신축 점포 한 곳을 더 둘러보고 시장에 들렀다. 큰 장이 서는 날이라 추운 날씨에도 시장통은 북적대는 인파로 활기가 넘쳤다. 그러나 예전에 가끔 찾던 떡집이며 어묵전이 보이지 않았다. 장날이면 가게 앞에 전을 설치하고 떡과 어묵을 팔던 곳이었다. 특히 금방 만들어 내놓은 따끈따근한 어묵은 맛이 좋아 줄을 서서 맛봐야 했다. 번화가인 시장도 자영업에 불어닥친 한파를 피해 갈 수는 없었다.

일자리가 부족한 현실에서 우리사회 근간인 자영업이 무너지면 실업자가 속출하고 가계는 나락으로 떨어진다. 또 취업에 제한을 받는 고령자들이 자영업에서까지 밀리게 되면 설 자리가 없다. 빈 점포는 자영업자의 눈물이다. 빈 점포가 늘어간다는 건 자영업자의 눈물이 그만큼 늘어가고 있음을 뜻한다. 이 땅에 그들의 눈물이 마를 날이 과연 언제 올까?

모용복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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