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구리와 뉴올리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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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리와 뉴올리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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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4.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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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13일은 미국 뉴올리언스의 마디그라(Mardi Gras)였다. 부활절 47일 전인 이날은 기름진 화요일이라는 뜻으로 전세계에서 다채로운 축제가 벌어지는 날이다. 그중에서 뉴올리언스의 프렌치쿼터(French Quarter) 가장행렬 행사는 화려하여 많은 관광객이 방문한다.

가장 미국적인 음식은 무엇일까? 내가 처음 미국에서 가졌던 궁금증이었다. 미국의 식민지가 처음 생긴 곳부터 따져보면 미국 남부였다. 루이지애나주는 미국지역 음식에 프랑스, 스페인의 영향을 받았고 케이준 향신료의 매콤함도 살아 있는 음식이 많이 있다고 했다. 뉴올리언스는 여러 유명식당이 많이 모여 있는 루이지애나주의 중심지이다.

2005년 내가 다니던 뉴욕의 요리학교는 4개월 정도 레스토랑 실습을 해야 했다. 그래서 짧은 여름 방학 동안 미국 남부의 식당을 방문해 보기로 했다. 뉴올리언스에서는 커맨더스 팰리스(Commander‘s Palace)가 눈에 들어왔다. 이곳은 역사가 무려 100년 가까이 되었지만, 여전히 명성을 유지하고 있었다. 게다가 개구리, 자라, 새우 등 그 지역에서 나는 식재료로 특색있는 전통음식이 많았다.

처음 뉴올리언스 공항에 내려 시내로 들어왔을 때는 아프리카의 어느 도시에 온 것 같이 느껴졌다. 인종구성상 흑인의 비율이 70% 정도였던 시절이었다. 그런 이유로 미국 블랙아메리칸의 전통적인 음식들도 많았고 거리에는 정통 재즈바도 쉽게 볼 수 있었다.

그러다가 식당 근처로 들어서니 예전 미국 남부의 목조주택들이 눈에 들어왔다. 하얀 페인트칠이 되어 있고 단층으로 마치 서부영화에 나올 법한 모양이었다. 조금 더 걸어가니 햐얀색과 파란색으로 지어진 2층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레스토랑에 들어가서 내 소개를 하고 나니 셰프님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자~ 여기 뉴욕에서 CIA 요리학교 학생이 우리 식당을 보러 왔다.”

“호제! 궁금한 건 모든 물어봐” 하면서 여기저기 라인을 보여주었다. 그러더니 여기 있는 재료로 어떤 요리든 상관없으니 만들어 보라고 했다. 그 전에 여러 군데 스타지(stage, 레스토랑에서 무급으로 일하는 것)를 했지만 음식을 만들어 보라는 곳은 처음이었다. 난 이곳의 생선구이에 양파크림소스에 튀긴파를 얹은 요리를 만들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좀 간단했지만 셰프님은 양파의 달달함이 있는 소스가 간이 잘 밴 생선구이와 어울린다면서 칭찬을 해주셨다. 그리고는 주방 곳곳을 여행하듯 구경하고 그 유명한 해산물 스튜인 검보도 맛을 보았다.

새우와 굴처럼 지역특산물 요리가 많아서 남부 요리를 배우기 좋은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셰프님과 이후 다시 연락해서 실습 날짜를 잡기로 했다. 이때 받은 메뉴판에는 그날의 날짜와 셰프님의 사인이 큼지막하게 적혀 있었다.

그날 숙소로 돌아온 후에 몇몇 식당을 방문했다. 개구리 뒷다리 튀김이 유명한 곳을 가보았다. 케이준 스파이스가 은은한 통통한 살은 작은 닭다리를 먹는 느낌이 들었다. 프렌치쿼더라는 곳에서 달콤한 베니에(beignet, 프랑스 영향을 받은 도넛)을 먹어보기도 했다.

그로부터 한 달이 조금 넘어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미 남부를 강타했다. 청개구리가 비가 오면 울어대듯 불길한 기상특보가 나오고 뉴욕의 요리학교 창문도 굵은 빗줄기가 쏟아졌다. 기상특보에 대피령이 내려서야 당시 실습 일정을 연락하던 셰프님에게 문자를 보냈다.

“지금 상황은 괜찮은 건가요?” 잠시 후 문자가 돌아왔다. “우리 레스토랑은 물속에 잠겼어, 우린 모두 뉴올리언스를 떠나 대피했단다, 너도 다른 곳을 알아보아야 할 거야.”

나는 실망감에 잠시 멍한 기분이 들었다. 새로 실습할 레스토랑을 정하는데 한 달 정도가 다시 필요했다. 뉴올리언스의 피해는 상상 이상이었다. 수많은 사상자에 그 지역 경제는 큰 타격을 받았다. 내가 실습하려던 커맨더스 팰리스라는 식당은 1년 반이 지나서야 다시 오픈할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때가 내가 미국 남부 음식을 접해볼 수 있는 마지막 상황이었던 것 같다. 그 후로 꿈은 지나가고 이젠 살아가면서 먹고 사는 데 필요한 일은 어떤 것이든 해내곤 했다.

요리학교 졸업 후에도 비자를 받을 수 있는 뉴욕 시내에 있는 식당에 일자리를 구했다. 그 과정도 순탄치는 않았다. 뉴욕에서는 아무래도 뉴욕시티 식당 경험이 중요하게 받아들여졌다. 미슐랭 스타가 있는 식당들은 특히나 이런 보이지 않는 벽이 있었다. 꿈을 가지고 어떤 음식을 배운다고 하더라도 경제적인 조건이 맞지 않으면 지속하기 힘든 게 사실이다. 내가 미국 남부에서 실습했다면 훨씬 더 힘들었을 거라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가까운 친구에게는 미국에서 한달 차이로 허리케인을 피했다는 무용담 소재로 얘기하기도 했다.

한국에 들어와서도 나는 미국 남부 음식은 잊고 일자리가 있는 양식당 자리를 알아보았다. 부양할 가족이 생기니 책임감은 점점 커졌다.

어느 날 학교를 갔다 온 딸과 ‘공주와 개구리’라는 만화영화를 보게 되었다. 뉴올리언스를 배경으로 한 만화였다. 여주인공 티아나의 아버지는 식당을 여는 것이 꿈이지만 일찍 세상을 떠난다. 만화의 배경에는 내가 방문했던 레스토랑 같은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많이 보였다. 주인공이 개구리로 변하는 설정은 뉴올리언스에 딱 맞는 이야기 구성이었다.

지나간 꿈을 떠올리는 그 당시 생각에 뉴올리언스에서 가져왔던 그 식당의 메뉴판을 꺼냈다. 그동안 호기로운 미국 셰프의 사인이라고 생각했던 문구는 자세히 보니 어떤 메시지였다. 나는 그동안 필기체 한 글자씩 읽으면서 잠시 허리케인 소식을 들었던 때처럼 잠시 머리가 멍해짐을 느꼈다.

그 말은 “Keep eating create jewel.” 우리말로 하자면 “끊임없이 먹어봐, 보석 같은 메뉴를 만들 수 있어“라고 뜻이다.

내가 만들었던 음식에 칭찬을 해주었던 말에도 좀 더 경험을 쌓고 많이 먹어 보라는 말이 이 네 단어에 녹아 있었음을 느꼈다. 토리 맥페일이라는 이 셰프는 그 후로도 18년간이나 커맨더스 팰리스의 자리를 지켰다고 한다. 허리케인 후에 재오픈하는 일은 물론 그의 담당이었다.

2월은 뉴올리언스가 가장 화려하게 보랏빛으로 물드는 시간이다. 다행히도 내 마음엔 뉴올리언스를 추억할 수 있는 기억들이 가득 차 있었다. 언젠가 다시 그곳에서 개구리 뒷다리 튀김을 맛보고 싶다. 전호제 셰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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