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심판 받지 않는 대통령은 김대중·김영삼·문재인 3명뿐
제왕적 대통령제 ‘권력 남용·비리 연루 쉬워’ 공감대 형성
20여 건 장관 등 탄핵은 대부분 진영·계파 간 갈등 부산물
조기 대선으로 국회 압도적 의석 가진 민주당이 집권할 시
국민으로부터 견제받지 않는 ‘가공할 절대권력’ 출현 우려
개헌 통해 권력 분산 방향으로 제도적인 방안 마련이 최선
대한민국이 상생(相生)이 아닌 상살(相殺)의 정치로 홍역을 앓고 있다. 윤석열 정부 들어 장관 등에 대한 무더기 탄핵안이 발의됐고, 탄핵 심판이 진행 중이다. 윤석열 대통령도 비상계엄 선포 사태로 국회에서 탄핵당해 직무가 정지되어 있다. 대통령 탄핵 사태는 노무현·박근혜 대통령에 이어 세 번째다.
제왕적 대통령제가 바뀌지 않는 한 이러한 불행한 사태는 누가 대통령이 되어도 또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 나온다. 극성 지지층만을 생각하는 몰지각한 행동도 문제다. 지금의 탄핵 사태에 대해 짚어보고, 권력 분산 개헌 필요성을 살펴보았다.
‘심심풀이 땅콩’ 전락한 대통령·장관 탄핵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발생한 비상계엄 사태 여파가 개헌론 확산으로 불똥이 튀고 있다.
6공화국 헌법인 1987년 체제 이후 8명의 대통령이 선출됐다. 이 가운데 노무현·박근혜·윤석열 3명의 대통령이 임기 도중 국회의 탄핵으로 직무가 정지됐다. 노무현 대통령은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였고, 박근혜 대통령은 ‘국정 농단’ 사태 혐의였다.
노 대통령은 헌법재판소가 국회의 탄핵 심판 청구를 기각하면서 63일 만에 직무에 복귀했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헌재에 의해 91일 만에 대통령직에서 파면됐다. 노무현-이명박-박근혜-문재인-윤석열 대통령 가운데 3명이 ‘퐁당퐁당’으로 재임 기간 중 탄핵 심판대에 올랐다.
이뿐만이 아니다. 노태우·이명박·박근혜 대통령은 감옥생활까지 했다. 8명 가운데 무난하게 대통령직을 마치고, 사법심판을 받지 않는 대통령은 김대중·김영삼·문재인 대통령 3명뿐이다. 이들 3명의 대통령도 자식들이 법적 처벌을 받았거나, 현재 사법 처리가 진행 중이다.
이처럼 대통령제의 근본적인 한계가 드러남에 따라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력을 분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정치권에서는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 때문에 개헌 추진 주장이 끊이지 않았다. 제왕적이라는 말처럼 대통령에게 너무 많은 권력이 집중되어 있어, 권력 남용 및 비리에 연루되기 쉽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특히, 다음 대통령은 새로운 틀로 선출해 대한민국 제7공화국 시대를 열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은 비상계엄 선포로 자초한 측면이 있지만, 노무현·박근혜 대통령 탄핵은 진영·계파 간 갈등에 따른 부산물일 뿐이다. 더구나 윤석열 정부 들어 20여 건이 넘는 장관·검사에 대한 탄핵은 정치권이 ‘탄핵’을 심심풀이 땅콩쯤으로 여기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기에 충분하다.
결국 2025년 1월 현재 대한민국은 대통령부터 장관, 군·경 지도부까지 직무 정지 등으로 대행(代行)들이 국정을 운영하는 대행민국으로 전락했다. 대통령직은 국회로부터 탄핵당한 윤석열 대통령을 대신해 한덕수 국무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국정 업무를 총괄하고 있다. 야권의 탄핵소추로 감사원장을 비롯해 법무부 장관·방송통신위원장·중앙지검장·경찰청장도 대행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사직 처리된 국방부 장관은 내란 혐의로 구속됐다. 내란 혐의 사건으로 육군참모총장, 수방사령관, 특전사령관, 방첩사령관, 정보사령관 등 군 수뇌부도 구속 및 직무가 정지된 상태다. 행안부 장관은 사직으로 행안부 차관이 대행을 하고 있다.
정당들도 대행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윤 대통령 탄핵 표결 여파로 한동훈 대표가 16일 자진사퇴하면서 국민의힘은 권성동 당대표 권한대행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조국혁신당은 앞서 조국 대표가 대법원판결로 의원직 상실 및 서울구치소로 수감되면서 김선민 당대표 권한대행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제왕적 대통령제 vs. 정적 제거용 ‘복수심’
문제는 이 같은 탄핵 남발이 이번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앞으로 야당이 과반 의석을 장악하는 ‘여소야대’ 형국에서는 언제든 탄핵 남발 사태가 재연될 수 있는 것이다.
이번 비상계엄 사태의 이면에는 제왕적 대통령제와 맞물려 상대를 죽이겠다는 정치세력 간 상살(相殺)의 대결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 대통령 탄핵 남발과 감옥행은 상대방을 멸절시키려 하는 정치 풍토가 사라지지 않는 한 계속 끊이지 않을 가능성이 농후한 것이다.
조기 대선으로 민주당이 집권할 경우 국민으로부터 견제받지 않는 권력이 출현하게 된다는 우려가 벌써 나왔다.
이현우 서강대 정외과 교수는 12월 19일 자 문화일보 칼럼에서 국회 압도적 의석을 가진 민주당이 대통령까지 거머쥘 경우를 거론하며 ‘가공할 절대권력’ 출현을 우려했다. 그는 “민주당이 집권할 경우 의결정족수가 재적의원 3분의 2인 개헌과 탄핵을 제외하고는 사실상 어떤 안건이든 처리가 가능해진다.
향후 민주당 정권이 계엄을 선포해도 민주당이 계엄 해제를 막을 수 있다.”면서 “이재명 일극체제의 민주당이 주도하는 여대야소 정국이 된다면 대통령의 견제 기능마저 사라지는 셈이다.”고 주장했다. 민주당 소속 국회의원은 171명(국회의장 포함)으로 개헌과 탄핵을 제외하고는 사실상 모든 안건 처리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조기 대선으로 민주당 정부가 들어설 경우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해도 국회에서 해제할 수 없는 구조가 된다.
국민의 힘 미디어특위(위원장 이상휘)도 이날 성명서를 통해 “세계적인 경제지 파이낸셜타임즈는 최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를 좌익 선동가(leftwing firebrand)로 명명하며, 그의 정치적 방향성을 강하게 비판했다.”고 주장했다. 크리스티안 데이비스, 송정아 기자가 기사를 통해 “이재명 대표가 정치적 ‘복수의 사이클’을 이어갈 것으로 예상되는 진영의 한 극단으로 치우치는 인물로 분석되고 있다.”고 지적했다는 것이다.
상대 진영에 대한 악마화 및 혐오 조장은 극성 지지층을 자극해 적대적 정치 풍토를 이어가게 할 뿐이다. 그러나 극성 지지층에 둘러싸여 있는 정치인들이 정적 죽이기를 포기하는 것은 ‘개가 똥을 끊기’를 바라는 것보다 어렵다. 개헌을 통해 권력 분산 방향으로 제도적인 방안을 마련하는 게 최선의 방안일 뿐이다.
이런 가운데 여당을 비롯해 야당 등 정치권 대부분은 권력 분산 개헌에 찬성하는 입장이다. 특히 국민의힘 권성동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는 지난 12월 18일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예방한 자리에서 개헌 필요성을 주장했다. 그는 “우리 헌법이 채택하고 있는 통치구조, 대통령 중심제 국가가 우리의 현실과 잘 맞는지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전부 아니면 전무 게임인 대통령제를 더 많은 의견이 반영될 수 있는 상생협력 제도로 변경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언급했다.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개헌을 추진하는 태스크포스(TF)를 만들자는 얘기가 오가고 있다.
이 같은 권 권한대행의 제안에 대해 지난 대선 당시 4년 중임제 개헌을 주장하며 자신부터 임기 1년 단축이 가능하다고 공약까지 한 이재명 대표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사실상 시큰둥한 반응인 셈이다.
하지만 우원식 국회의장을 비롯해 야권에서는 대부분 개헌에 찬성하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우 의장은 최근 외신 기자회견에서 “대통령에게 너무 집중된 권력 때문에 여러 오판과 대통령 주변에서의 문제가 생길 수 있어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면서 대통령 권력 분산과 국회 권한 강화 필요성을 강조했다.
김두관 전 국회의원도 “‘제왕적 5년 단임 대통령제’를 ‘분권형 4년 중임 대통령제’로 바꿀 절호의 기회”라고 주장했고, 김부겸 전 국무총리도 개헌에 찬성하는 입장을 밝혔다. 개혁신당도 다음 대통령 선거와 개헌 국민투표를 함께 실시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새미래민주당(새민주당) 전병헌 대표도 20일 개헌 추진 시민사회 연석회의에서 “개헌의 최대 장애였던 윤 대통령이 직무 정지된 탄핵 절차의 시간이야말로 개헌의 골든타임”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개헌을 포함한 국가 대개혁을 위한 절호의 골든타임으로 쓸 수 있는 기회를 한 사람의 욕심과 그 욕심에 아첨하는 일부의 아부 세력이 무산시키는 것은 역사의 죄인이 되는 것”이라며 개헌에 소극적인 이재명 대표와 민주당 일부 세력을 비판했다.
선거제도개혁연대도 비상계엄 사태 당시 입장을 통해 대한민국의 권력구조와 선거제도 개혁을 제안했다. 지금 같은 대통령제에서는 그 누가 대통령이 되어도 또 실패할 것이고, 대한민국은 또 위기에 빠질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이를 위해 대통령의 권한을 합리적으로 축소하고 권력을 최대한 분산해야 한다며 비례대표제와 결선투표제 등을 제안했다. 한편, 권력 구조 개헌의 경우 ‘내각제’나 대통령제와 내각제를 절충한 ‘이원집정부제’보다는 대통령 4년 중임제로의 전환이 유력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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