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벨트를 가다-해월, 의암 손병희에 도통 전수
1894년 북실전투 패배 이후
동학농민혁명 사실상 막내려
해월, 여주 전거론 등 머물며
포덕 활동·조직 재건에 온힘
손병희 주장, 김연국·손천민
동학 3인 집단지도체제 구성
1894년 북실전투 패배 이후
동학농민혁명 사실상 막내려
해월, 여주 전거론 등 머물며
포덕 활동·조직 재건에 온힘
손병희 주장, 김연국·손천민
동학 3인 집단지도체제 구성
원인은 일본군과 관군에 비해 열악한 무기와 탄약 부족이었다. 농민군은 목숨을 걸고 항전했으나 중과부적이었다. 엄청난 희생만 내고 패퇴한 것이다. 이로써 동학농민혁명은 사실상 막을 내리게 된다.
해월은 2600여 명의 사상자를 뒤로하고 북실마을을 빠져나온다. 충북 음성에서 관군을 맞아 싸운 되자니전투를 마지막으로 잠행에 들어간다. 농민군 통령 의암 손병희를 필두로 제자들이 해월을 모신다. 일행은 충청, 강원 일대 깊은 산속을 전전한다. 이듬해 3월 호남 농민군을 이끌던 전봉준, 손화중, 김덕명 등이 죽임을 당한다. 해월은 음성 이춘백의 집에서 소식을 듣고 식음을 전폐, 애통해 한다.
호남에서 일부 제자들이 해월을 보러 음성을 찾는다. 그들은 “전봉준이 무리하게 난을 일으켜 동학이 궁지에 몰리게 됐다”고 불만을 토로한다.
그러나 해월은 “수운 대선사께서 천도 동학은 5만년 이어진다고 했으니 그런 망언은 다시 하지 말라”면서 “갑오년 일은 사심이 아니고 천명으로 일어난 것이니 누구도 원망하지 말라”고 타이른다. 해월은 초기 도인들의 무력 기포를 반대했다. 무엇보다 ‘이필제의 난(영해동학혁명)‘으로 동학이 큰 피해를 봤기 때문이었다. 또 전봉준의 무혈혁명보다 새로운 세상은 인간 개개인 정신개벽으로 자연스럽게 열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때 일본군이 경복궁을 점거하는 사태가 일어났다. 이때 해월은 ‘개 같은 왜적 놈들’이라고 일갈한 수운 대선사의 가르침이 떠오른다. 이에 총기포령으로 반봉건에 이은 반외세 투쟁을 선언한 것이다.
일행은 관군의 지목을 피해 음성을 떠난다. 이어 강원, 충청, 경기 일대 여러 고을을 잠적한다. 해월은 이르는 곳마다 동학 포덕과 조직 재건에 힘쓴다. 입도한 도인들에게는 역사에 길이 남을 법설을 남긴다. 대표적으로 ‘천지가 곧 부모요, 부모가 곧 천지’라는 ‘천지부모설’과 ‘사람이 곧 하늘이요, 만물도 하늘 생명이니 사람과 자연을 한울님처럼 공경하고 대하라’는 ‘대인접물설’이다. 또 세상이 크게 변할 것이라는 ‘개벽운수’와 제사를 지낼 때 벽을 향하지 말고 자신을 향해 지내라는 ‘향아설위’ 등이 있다. 그리고 ‘여성과 아이들을 한울님처럼 섬기고 공경하라’는 법설도 남긴다. 향아설위 법설 터는 앵산동으로 전해진다, 오늘날 경기 이천군 설성면 수산2리다.
1897년 8월 해월은 여주 ‘전거론’으로 몸을 옮긴다. 관군의 끈질긴 지목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해월은 낙향한 ‘이 교리’로 위장, 은거한다. 전거론은 경기도 여주군 강천면 도전리다. 강원도 원주군 강천면이었다가 1906년 여주군에 편입됐다. 도인 임순호가 마련한 거처였다. 이곳 도인들도 상당수에 이르렀다, 해월은 이들에게 ‘이심치심’ ‘이천식천’의 법설을 펼친다. 인류가 직면한 ‘생명과 생태환경’의 중요성을 깨우쳐 준 것이다. 해월은 이 마을에서도 한 차례 체포 위기를 맞는다. 다행히 제자 손병희의 지략으로 모면한다. 그중 제자 김낙철은 자신이 최시형이라고 나서서 스승 대신 체포돼 압송된다. 김낙철은 이천과 한양을 거쳐 수원으로 이송됐다가 석방된다. 후일 해월의 순도 소식을 듣고 그는 한양을 향해 큰절을 하며 통한의 눈물을 흘린다.
동학은 전거론에서 구암 김연국, 송암 손천민, 의암 손병희 등 3인 집단지도체제를 갖추게 된다. 모두가 해월의 뜻이었다. 해월은 ‘세 사람이 성심을 다하고 한 마음으로 뒷일을 도모한다면 이루지 못할 것이 없다’는 심법을 전수한다. 그리고 3인 가운데 손병희를 주장으로 삼는다. 관의 추적을 피해 은거한 절체절명 위기에서 동학의 도통을 전수한 것이다. 해월은 1898년 1월까지 원주로 가기 전 5개월 간 전거론에 은거한다.
김상조 역사문화답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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