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부터 `번개 여행’에 맛을 들이고 있다. 주말에 허파에 바람이 든 친구가 느닷없이 전화를 돌려대면 달라붙어 떠나는 여행이다. 방향은 네거리에 이르기 전까지 결정하면 그만이다. 가다가 쉬면 그 곳이 목적지가 되는 수도 있다. 하룻밤 묵어갈지도 해 떨어질 무렵에야 결정한다. 그야말로 물결 치는대로, 바람 부는대로 흘러가는 여행이다. 길벗이 있긴 하지만 사실상 `나홀로 여행’이나 진배없다.
정비석의 `산중독행(山中獨行)’에 이와 비슷한 대목이 나온다. “여럿이 몰려다니는 여행에는 반드시 스케줄이란 것이 있어서 모든 행동이 그에 구속받게 되지만 혼자 다니는 여행에는 그런 구속이 필요치 아니하다.” R.L.B 스티븐슨의 `도보여행’에도 엇비슷한 내용이 나온다.
“도보여행은 반드시 홀로 가야 한다. 자유가 이 여행의 진수(眞髓)이기 때문이다. 멈추고 싶을 때 멈추고, 가고 싶을 때 가고, 마음 내키는대로 이길 저길로 갈 수 있고/…/바람이 어느 쪽에서 들어와도 소리를 내는 풍금-당신은 풍금이 되어야 한다.”
경주시 공무원들이 평일에 떼를 지어 제주도 관광길에 나섰다가 시민들의 눈총을 받고 있다. 70명이나 되는 대부대가 사흘동안 묵새길 돈은 2100만원이다. 공짜 여행이다. 지난달 화랑대기 전국 초등학교 축구대회때 수고한 사람들을 격려하기위해서란 게 관계자의 해명이다. 당연히 말도 안되는 소리라는 핀잔이 되돌아온다.
`선진지 견학’이라니 명분조차 궁색맞기 짝이 없다. 무엇보다 안타까운 것은 공직자들의 혈세에 대한 인식이다. 예산은 `임자없는 돈’이란 인식이 뿌리 깊다. 먼저 집어쓰는 사람이 임자라는 것이다. 때문에 외유도 일단 가고 보는 것이다. 이러쿵 저러쿵 몇마디 나오다가 흐지부지되니 이보다 맛있는 `공돈’도 없겠다. 그래도 자존심 있는 공직자라면 차라리 `나홀로 여행’을 다녀오고 말듯 싶기도 하다. /윤용찬기자 yyc@hido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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