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캉스 철의 동해안 漫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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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캉스 철의 동해안 漫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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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6.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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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옥근/(의학박사)
 
 주말 남해안이 태풍 `우쿵’영향권에 들면서 더위가 한풀 꺾인다는 기상예보를 들어서인지 오늘 아침부터 아닌 게 아니라 갑자기 시원해진 것 같기도 하다.
 지칠 줄 모르고 울어대는 매미 울음소리도 어딘가 모르게 달라진 것 같고, 등산로에 외롭게 서서 타 들어가던 여름 코스모스도 어쩐지 어제같지 않고 생기가 있어 보인다. 꽃과 잎의 색깔도 또한 선명해진 것 같아 보인다. 참으로 인간이란 간사하기 이를 데 없고, 적응력이 뛰어난 어쩔 수 없는 존재임에 틀림없다.
 올 여름 같이 무더운 날씨 속에서 매일 접한 신문, 방송 미디어를 통해서 허구헌날 더위에 지친 도심의 풍경이나, 여야의 짜증스런 `작통권’과 청와대 인사권 개입 논쟁,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 포항 건설노조파업 문제, 근심을 더해주는 뉴스들은  더위에 지친 시민들을 더욱 무덥게 한다.
 물론 개 중에는 올해 햅쌀이 벌써 나왔다거나 일본에 간 이승엽 선수가 30세 미만에 홈런포를 400개를 때려 세계적으로 지금까지 3명밖에는 더 없다는 소식들은 가뭄에 소낙비 내리듯 우리를 시원하게 깨워준다. 오늘 조간신문에는 우리 유학생들이 미국에 건너가 20살 좀 넘은 나이에 명석한 두뇌를 인정받아 두 사람이나 미 연방정부 고위 공무원 자리에 발탁 되었다는 소식도 무더위를 잠시나마 잊게 하는 청량제 역할을 하고 있다. 가뭄에 콩 나듯 이런 소식도 없었다면 얼마나 삭막하고 무더웠을까. 해마다 절정인 성하(盛夏)의 피서 대명사는 역시 `동해안’ 이었다. 그러나 이곳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는 생지옥이나 다름없을 때가 많다.
 아닌 말로 피서 철 때문에 갑자기 올라간 물가는 피서객이 썰물처럼 물러간 후에도 얼마 동안은 내려올 줄 모른다. 인심도 야박해 지기가 일쑤다. 그 뿐인가.
 피서인파로 생겨난 바가지요금은 엉뚱한 사람에 까지 파급돼 짜증스럽게 한다. 해마다 반복된 일이지만 동해안은 피서가 절정에 이르면 도로마다 거대한 주차장으로 변할 때가 많다. 평소에 30분에 갈수 있는 거리를 3시간이 더 걸린다고 한다. 7번 국도는 작년부터 부분적으로 4차선이 확장개통이 되면서 한결 더 나아졌다고는 하나 밀물 같이 몰려드는 인파를 막을 길은 없나보다.
 평소에는 전화 한 번 없던 친구가 동해안에 피서를 오면서 찾아온 여름손님을 대접해 보지 않는 사람은 모를 일이다. 내가 아는 이곳 어느 친구는 `열 한달 벌어서 일 년을 먹는단다. 왜냐고하니 여름한철은 손님 대접으로 한 달은 빼야 한다는 농담도 귀담아 들을 일이다. 물론 나도 잘 알고 있다. 피서객들 덕분에 여름 한 철 장사로 일 년을 먹고 자식 가르치는 농어촌 주민들의 고마움도. 귀곡천계(貴鵠賤鷄)라 했으니 목이 긴 `고니’ 같이 눈에 잘 띄지 않는 천염기념물 조류는 귀히 여기고, 닭처럼 아무 곳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것은 천히 여겨지는 것이 우리의 인정 아닌가.
 이곳에 살면 이곳이 얼마나 좋은지를 잘 모르고 산다. 회를 파는 아저씨가 저녁 늦게 갈비 집을 찾아가는 사연도 알 것 만 같다. 바캉스 철에 이곳 동해안 주민들은 타관 사람들이 동해안 바닷가를 찾는 것과는 달리 오히려 바다와는 반대로 깊은 산, 계곡이나 휴양림을 찾아 하루를 쉬고 오는 것이 고작이다.
 피서가 절정이었던 지난 주 나도 좀처럼 가지 않던 바닷가를 손자 녀석들이 서울에서 와 조르는 바람에 동해안 7번국도가 여기저기 정체 된다는 방송을 듣고도 하는 수 없이 바다로 나설수 밖에 없었다. 앞서가는 승용차들의 번호판이 이곳에서 자주 보는 번호들이 아니어서 걱정도 되었지만 아닌 게 아니라 장난이 아니었다. 여기 저기 막혀도 우리는 쉽게 찾아 갈수 있었던 것은 이곳에 살면서 평소 익혀 왔던 골목길과 셋 길 이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한 다리가 길면 한 다리가 짧은 법 아닌가. 바닷가에 이르자마자 덱크 하나를 얻어 행장을 풀었다. 오나가나 사람사태 멀미가 난다. 해수욕장은 역시 사람구경이 최고다. 젊은이들이 시원스럽게 물을 가르며 초고속 질주하는 바나나보트들, 연안을 수놓은 형형색색 고무튜브를 타고 나도 가고 더위도 간다.
 나는 이 젊음의 물결 속에서 지금 대리 만족을 하고 있는 중이다. 손자들을 사람들 틈에서 찾아오랴, 지치고 피곤할 줄도 모르고 한 나절을 보내고 나니 또 갈 일이 걱정이 된다. 인생이란 이런 것 아닌가. `올 때는 흰 구름 더불어 왔고/ 갈 때는 밝은 달 따라서 갔네/ 오가는 한 주인은/마침내 어느 곳에 있는고/ 속일 수 없는 것이 세월의 변화 인 것 같다.  이제 2,3 일만 더 지나면 우리도 더위에서 광복이다. 아니 해방이다. 중동평화도 조인했단다. 건설노조 문제도 언젠가는 풀릴 것이다.
 더위에 지쳐 죽을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살고 보면 가을바람처럼 시원한 날도 있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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