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시대, 밝은 빛이었던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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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시대, 밝은 빛이었던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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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6.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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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해 말순씨’는 동양화의 여백의 미와 서양 펜화의 섬세함을 섞어놓은 듯한 영화.
 가랑비에 옷 젖듯 서서히 그러나 꽤 강한 카타르시스를 안겨준다.
 중학교 1학년 소년 광호는 엄마 말순을 부끄러워한다. `박정희 대통령 유고(有故)’라는 신문 제목을 보고 `유고’가 뭐냐고 묻자 “6×5는 30이지”라고 중얼거리고, 커피를 마실 때 주책맞는 소리를 내며, 화장을 지우면 눈썹이 없는 엄마는 광호에게 부끄러울 따름이다. 그런 광호가 연모하는 대상은 바로 옆방에 세든 예쁜 간호사 누나. 사춘기로 접어든 광호는 친구들과 어울리며 성에 눈을 뜨고 간호사 누나를 대상으로 몽정을 한다.
 그러던 중 `행운의 편지’가 배달된다. 일정량의 답장을 쓰지 않으면 불행이 닥친다는 행운의 편지. 광호는 자신을 괴롭히는 바보 소년 재명이와 엄마를 포함해 주변 사람들에게 답장을 쓴다.
 언뜻보면 평범한 내용. 그러나 영화는 박정희 대통령 서거부터 전두환 대통령 취임까지 한국사의 최대 격동기를 배경으로 삼아 평범함을 비범함으로 승화시킨다. 별다른 사건 없이도 처음 1시간이 흘러갈 수 있는 것은 바로 그 시대를 섬세하게 그렸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구구절절 설명 하거나 힘을 주지도 않았다. 보여줄 것은, 말할 것은 다 하면서도 시치미 뚝 떼고 관조하듯 한발 뒤로 물러났다. `포레스트 검프’처럼 무심한 대사와 에피소드 속에 계엄, 광주사태, 사우디 건설붐, 가난, 폭압적 교육 등 시대를 관통하는 `무시무시한’ 키워드를 녹여냈다. 대단한 생략법이 아닐 수 없다. 이 같은 기법은 장면장면의 여운을 길게 하는 효과를 낸다. 특히 아버지의 부재는 해석의 여지를 열어놓았다.
 여기에 휴머니즘도 진하게 깔려있다. 정신지체장애인과 가난한 반항아에 대한 편견, 엄마에 대한 애증의 교차가 얼토당토 않은 `행운의 편지’라는 시대적 상징과 어우러져 가슴을 따끔따끔 꼬집는다.
 여기에 누구나의 아킬레스건인 엄마에 대한 사무치는 회환과 그리움이 정점을 찍으니 관객은 막판 옴짝달싹할 수 없다.
 이렇듯 외관상으로는 한 소년의 특별할 것 없는 통과의례기이지만 영화는 아픈 시대를 그 안에 투영하고 엄마에 대한 사랑을 녹여냄으로써 한편의 수작으로 탄생한다.
화면 가득 슬픔이 고조되지만 정작 터지는 것은 단 한번. 그것도 다섯살 여자 아이의 짧은 통곡이 전부다. 그러나 그 울림은 어떤 장치보다 강하다. 또한 통곡 후 이어지는 “오빠 사랑해”라는 고사리 손의 종알거림은 가슴을 꽝 하고 친다.
 그 시대는 너무나 아팠다. 그러나 왜그리 사무치게 그리운 것일까. 대책없는 감상주의라 욕해도 어쩔 수 없다. 그것이 영화의 힘이다.
 12세 관람가.
 /남현정기자 nh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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