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인)
이명박 정부와 재벌들 사이에 미묘한 기류가 흐르고 있다. 이 대통령을 형님처럼 따르는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이 `연기금을 통한 대기업 견제’구상을 밝히고부터다. 곽 위원장은 삼성을 지목하며 “경영을 감시하겠다”는 의도를 드러냈다. 그러자 이건희 삼성 전자회장은 “오히려 환영한다”고 맞받았다. 전경련 등 재계가 `연기금 사회주의’라며 반발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이 회장은 “신경 안 쓴다”고도 했다. 약간의 비웃음이 감지된다.
이에 앞서 이건희 회장이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을 “낙제점은 면한 것 같다”고 했을 때부터 청와대와 재계의 관계가 미묘해지기 시작했다. 청와대가 부글부글 끓었고, 얼마후 국세청의 신라호텔 등 삼성계열사에 대한 세무조사가 시작됐다. 이 회장은 `출장’을 내세워 외국으로 떠나버렸다.
이명박 대통령의 상징은 `기업프렌드리’다. 정책도 기업을 편드는 쪽으로 흘렀다. 출자총액 제한도 풀고 공정거래법을 개정해 재벌의 지배구조 확립도 지원했다. 법인세 감면과 고환율 정책은 대환영을 받았다. 이 때문에 `친재벌 정권’으로 몰렸다. 청와대에서 수시로 재벌들과 회동했다. 왜 갑자기 양자관계가 이렇게 틀어졌을까?
이명박 정부는 `아랫목’이 따뜻해져야 `윗목’에도 온기가 전해진다는 논리로 지난 3년 동안 물가를 희생시키면서까지 `고환율’을 고수해 재벌들의 주머니를 불려줬다. 서민 고통은 가중됐다. 이 대통령으로서는 재벌이 일자리를 만들면서민들이 일자리를 찾아 생활이 필 것으로 믿었다. 이 대통령은 재벌 총수들에게 `투자’와 `일자리창출’을 간곡히 요청해왔다. 재벌도 `300만 일자리 창출’을 약속했다. 그러나 각종 통계와 지표는 재벌들이 일자리 창출은커녕 자기들 배만 채웠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2008년 이후 올해까지 삼성은 계열사를 59개에서 78개로 늘렸다. 현대차는 36개에서 64개로, SK그룹은 64개에서 84개로, LG그룹은 36개에서 59개로 늘렸다. 롯데는 계열사가 46개에서 78개로 무려 32개가나 늘었다. `문어발식’ 기업사냥이 극성을 부린 것이다. 자기돈으로 한 것도 아니다. 국민들이 저축한 은행예금을 빚을 얻어 기업사냥에 뛰어들었다는 데 문제가 있다. 삼성 그룹은 부채가 2008년 172조6150억 원에서 올 230조6890억 원으로, 롯데는 36조7800억 원으로 2008년보다 무려 90.0%나 늘었다. 서울공항 활주로 각도까지 틀어줘가며 123층 초고층 빌딩을 허가해준 정부에 대한 롯데의 행태다.
더 용서하기 힘든 것은 재벌들이 현금을 쌓아놓고 돈을 빌려 기업사냥에 나섰다는 사실이다. 롯데의 현금성 자산은 2조4450억 원, 삼성은 무려 16조4553억 원의 현금성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10대 재벌의 현금자산은 52조 원이 넘는다. 이들은 일자리 창출에는 거의 눈을 감았다. 전경련이 “103조 원을 투입해 일자리 300만 개를 창출하겠다”고 했지만 2009년 사상 최대 이익을 올린 30대 기업이 늘린 고용 인원은 겨우 2667명이다. 이명박 정부의 `재벌사랑’이 모욕을 당한 격이다.
이명박 정부에서 유독 재벌 2~3세들의 주가조작과, 비행 비리, 비자금 은닉, 해외재산도피 같은 사건이 자주 일어난 것도 언잖다. 재벌들의 몸집 불리기는 중소기업의 고통으로 이어졌다. 이 대통령이 아무리 `상생’을 외쳐도 뒷골목에서는 대규모 슈퍼들이 구멍가게를 내쫓고 있다.
월급쟁이들 간의 격차도 심각하다. 2009년 억대 연봉자는 19만 6539명으로 5년 전보다 4.8배 늘었다. 또 소득 상위 20%인 근로 소득자의 평균 연봉은 7680만 원으로 하위 20%(1480만 원)보다 6200만 원이나 높다. 격차가 점점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고액 연봉 월급쟁이가 늘어나는 것은 금융회사, 수출 대기업 등 `잘나가는’ 일자리의 임금이 급격히 상승한 탓이다. 대신 성장에서 소외된 중소기업 근로자 임금은 작거나 줄어들었다. 비정규직이 많은 탓도 있다. 삼성 등 재벌기업이 분기별로 `성과급 폭탄’을 투하하며 위화감을 조성하는 것은 별도의 `격차’다.
마침내 정권 핵심부에서 “재벌의 `맨얼굴’을 보여주겠다”는 비장한 말까지 나왔다. 그러나 재벌들은 이건희 회장처럼 시큰둥하다. 밀튼 프리드만은 “기업이 이윤을 만드는 것 외에 다른 데 신경 쓰는 것은 죄악”이라고 했다. 이명박 정부가 어리석은가, 아니면 재벌들에게 속은 것인가, 아니면 재벌들이 영악한 것인가?
저작권자 © 경북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경북도민일보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디지털 뉴스콘텐츠 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
▶ 디지털 뉴스콘텐츠 이용규칙 보기
▶ 디지털 뉴스콘텐츠 이용규칙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