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fe.org)
민주주의는 보편적 이념이다. 민주주의의 가치를 부정하는 국가는 거의 없다. 권력 3대 세습 `왕조’인 북한도 정식 국호에 민주주의를 포함시켰을 정도다. 민주주의가 소중한 가치이기에 이를 실현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들도 많다. 어떤 시인은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를 노래하고 민주주의 만세를 외치며 옥고를 치르기도 하였다.
민주주의의 실현을 위해 목숨까지 바치는 사람이 있는데 비하여, 정작 민주주의의 실체는 분명하지 않다. 미국인 소년에게 태형을 집행한 싱가포르는 이로 인해 독재국가라는 비난을 받았다. 하지만 싱가포르 정부는 서구식 민주주의가 맞지 않으며 자기 방식의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러시아와 중국도 우리가 생각하는 민주주의 국가는 아니다.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우리나라에도 적지 않은 것을 보면 무엇이 민주주의인지 헷갈린다.
민주주의의 공통은 선거에 의해 정치지도자를 선출한다는 점이다. 선거에서 유권자의 선택은 시장경제에서 소비자의 선택과 유사한 점이 많다. 소비자는 자신이 원하는 상품에 투표 하고, 유권자는 자신이 선호하는 정치인이나 정책을 구입한다. 시장경제와 비교하면 민주주의가 실망스러울 때가 드물지 않다.
가장 실망스러울 때는 충동구매가 흔하게 일어날 때이다. 누구나 한번쯤은 선거 때 겉으로 좋아 보이는 정치인과 정책을 구입한 뒤 후회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정치인의 지지도가 몇 개월 사이에 롤러코스터처럼 극단을 오가는 경우가 흔하다. 시장에서도 충동구매는 일어난다. 그러나 시장에서의 충동구매는 마음에 들지 않으면 물릴 수 있으며 상인이 이를 거절하지 못하도록 법이 정해지기도 한다. 이에 비하여 정치인을 `충동구매’로 선출하고 나면 절대 이를 물릴 수 없다. 오히려 민심이란 무서운 것이라며 충동구매의 결과를 신성시한다.
많은 경우 유권자의 충동구매는 정치인의 `허위 과장광고’에서 기인한다. 선거철이 되면 정치인들은 `세일 기간’을 만난 상인처럼 자신과 정책에 대해 광고한다. 무상의료, 무상보육은 `허위광고’에 해당한다. 무상이 아니라 국민들이 세금을 부담하기 때문이다. 일자리를 몇 십만 개 늘이겠다는 것이나 금방 경제가 좋아질 것처럼 내세우는 것은 `과장광고’에 속한다. 그렇게 해서 매출이 늘어 당선되면 끝이고 선거 후에 허위 과장사실이 드러나더라도 이에 대해 책임지는 경우가 드물다.
기업이 허위 과장광고로 매출을 늘렸다면, 때에 따라 형사 고발되고 처벌을 받을 수 있다. 두피에 바르는 샴푸에 탈모를 초래하는 물질이 포함되어 있음에도 이를 알리지 않았다면 이를 제조한 회사는 배상책임을 지게 된다. 하지만 `불량품 정책’으로 인간의 두피보다 훨씬 중요한 두뇌내부에 허위의식을 심어주어 국민들의 미래 생활을 어렵게 하더라도 `정치적 판단’으로 여겨 면죄부가 주어진다.
더욱 실망스러운 때는 정치인의 `허위광고’를 오히려 유권자들이 지지할 때이다. 기업에서 기업의 회계와 기업가의 회계는 구분된다. 그래서 기업가가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기업의 자산을 이용하면 배임이나 횡령의 처벌을 받는다. 그러나 가난한 이웃을 돕기 위해 자신의 비용보다 납세자의 재산을 이용하면 유능한 정치인으로 칭송받는다.
선거철이 가까워지면 정치인들은 자기 출신 지역의 예산을 확보하기 위한 치열한 경쟁을 벌리고 지역유권자들은 이를 업적으로 평가한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기업의 자산을 이용하면 악덕기업주가 되지만,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납세자의 주머니를 털면 유능한 정치인이 되는 것이다.
시장경제가 완성된 제도가 아니듯이 민주주의도 끝없이 진화한다. 하지만 민주주의의 진화는 더디다. 민주주의에 대한 비판이나 대안의 제시가 드물기 때문이다. 우리 역사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기대는 너무 크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소중할수록 이에 따른 문제점을 찾아보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도 기울여야 한다. 그래야 민주주의가 건강하게 오래 지속될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에서 `무상복지’의 공약폭탄이 쏟아지고 있다. 그 `무상’에 홀려 `충동구매’했다가 장차 어떤일이 벌어질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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