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자유무역협정(FTA) 5차 협상이 엊그제 미국 몬태나주 빅스카이에서 시작됐다. 협상은 8일까지 닷새동안 열릴 예정이지만 시작도 하기 전에 큰 난관에 부딪혔다.
쇠고기 뼛조각이라는 악재가 돌출한 것이다.지난 2003년 광우병 파동으로 전면 중단했다가 2년 10개 월 만인 지난 10월에 들여온 미국산쇠고기 1차,2차 수입분이 모두 검역 불합격 판정을 받아 반송 또는 폐기되고 해당 물량을 처리한 미국 네브래스카주 작업장은 수입 승인이 취소됐다.
우리 정부는 문제의 뼛조각이 가공 과정에서 묻었으며 광우병 특정위험물질(SRM)은 아닌 것으로 추정했다. 그리고 뼈없는 살코기만 수출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게 미국목축업자협회(NCBA)의 설명이고 보면 미국 정부가 난감해 하는 것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생후 30개 월 미만 소의 살코기만 수입하되 척수 신경절 등 광우병 위험 물질이 발견되면 수입을 전면 중지하고 뼛조각 등 단순 이물질이 나오면 해당 미국 작업장에 대해 수입 중단 조치를 취한다는 게 지난 1월 한미양국이 합의한 위생 조건이다. 우리 정부는 이를 이행했을 뿐이다. 그런데도 미국이 쇠고기 수입 장벽 운운하며 전혀 별개 사안인 FTA 협상을 걸고 넘어지는 것은 그야말로 적반하장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협상 장소도 그렇다. 이번 5차 협상이 열린 몬태나주는 미국 50개 주 가운데 4번째로 넓지만 인구가 가장 희박한 오지로 축산이 핵심 산업인 이른바 `비프벨트(beef belt)’지역이다. 벽촌의 지역상공회의소가 양국 협상 대표를 위해 주최한 환영 행사에서 `미스터 쇠고기(Mr.Beef)’로 통한다는 몬태나주 출신 상원의원이 쇠고기 스테이크를 직접 썰어 시식하는 일종의 `정치쇼’를 벌였다. 이 상원의원이 미리 공부한 한국말로 “맛있습니다”를 연발하는 현장에는 생뚱맞게 카우보이 모자에 청바지와 웨스턴 부츠를 신은 `카우보이’10여명이 도열했다고 한다. FTA 협상이 왜 그런 곳에서 열려야 하고 우리 대표단이 왜 그런 `쑈’에 들러리를 서야 하는지 이해할 수없다. 말이 환영이지 실제로는 세를 과시하며 겁을 주려는 의도가 아닌가 의심될 정도다. 그런 곳으로 초대한 쪽이나 그런 초대를 수락한 쪽이나 한심하기는 매한가지다.
우리처럼 대외의존도가 70%를 넘는 나라가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을 효과적으로 공략하려면 FTA는 필수적이다. 한미 FTA가 체결되면 일부 국내 산업은 존립기반이 흔들리고 고용 사정이 나빠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려워 극렬한 반대 투쟁이 전개되고 있는데도 이를 무릅쓰고 추진하는 것은 이런 연유에서다.
그리고 민족적인 자존심이 걸린 개성공단 문제에 미국이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것도 매우 걱정스러운 대목이다. 한미 FTA가 결코 축복일 수만은 없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미국이 `쇠고기 수입 전면 허용이니’`자동차 무역장벽 철폐니’ 하며 FTA 협상에 전제 조건을 자꾸 들이대면 우리도 생각을 달리 할 수밖에 없다.
만의 하나라도 수입 쇠고기로 인해 광우병이 한국에서도 발생하는 상황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따라서 우리 정부가 쉽게 타협할 처지는 못 된다.
미국이 이런 사정쯤은 능히 알면서도 자기네 유권자들을 의식해 고압적 태도로 일관한다면 협상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그럴수록 우리 정부는 당당해야 한다. 내년 3월로 잡고 있는 협상 시한에 연연해서는 안 되며 최악의 경우 한미 FTA를 던질 수 있다는 각오도 필요하다.전체적으로 이익이 된다고 해서 독소 조항들을 함부로 수용했다가는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 몰릴 수도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협상 대표들의 선전을 빌어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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