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에도 바쁜 노인이 손톱은 왜 먹었을까?” 칼에 찔려 숨진 노인에게서 나온 손톱에 의문을 품은 수사관의 말이다. 칼질이 서투른 범인 아들은 노모를 찌르다 자신의 손톱을 베어 마루바닥에 떨어뜨렸다. 죽어가던 노모는 이 손톱이 눈에 띄자 아들의 죄를 덮어주려고 손톱을 주워 입 속에 집어넣는다. 영화 제목이 `공공의 적’이었던가? 다른 것은 다 잊었는데 이 대목만은 용케도 기억에 남아 있다.
지난 15일은 UN이 정한 `세계 노인학대 인식의 날’이었다. `노인의 날’도 아니고 왜 하필이면 `학대 인식의 날’이었을까? 노인 학대 사례는 살해뿐만이 아니다. 대구시만 하더라도 2009년 144건 이던 것이 2011년엔 158건으로 늘어났다. 학대행위자는 아들을 비롯한 가족이 69.6%이고 정서적 학대가 40.9%나 차지한다. 정서적 학대는 언어폭력, 무시 행위 따위다. 경북이라고 다를 게 없을 게다.
의료기술이 발달하고 수명이 늘어남에 따라 새로운 현상이 나타났다. `노노부양’이다. 예컨대 70대 자식이 90대 부모를 모시는 경우다. 이런 가정에서는 노인의 위계가 확실할까? 그러나 늙은 남편이 늙은 아내를 학대하는 사례가 소개됐고 보면 모를 일이다. 그 반대 현상도 있을 것 아닌가. `등 긁어줄 사람’보다 `효자손’이 더 쓸모 있는 시대인가? 소비는 선진권이라는데 의식은 보릿고개 시대만도 못하니 탈이다.
김용언/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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