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랑한 목소리로 청춘의 트라우마를 다독이다
  • 이경관기자
명랑한 목소리로 청춘의 트라우마를 다독이다
  • 이경관기자
  • 승인 2014.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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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큼 가까이… 정세랑 지음 l 창비 l 272쪽

 

[경북도민일보 = 이경관기자]  “실향민들은 우리 집에서 열심히 국수를 비볐다. 태어난 곳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거대한 비극 앞에서 묵묵히, 동시에 그토록 리드미컬하게 국수를 비비는 사람들을 보며 나는 자랐다. 자연스럽게 체득할 수 있었던 거다. 도저히 어쩔 수 없는 단절과도 함께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비극만큼이나 고명이나 양념도 중요하다는 것을.”(7쪽)
 청춘(靑春)은 그 자체로 빛난다. 그러나 청춘들은 그 빛이 강하게 드리우는 그림자에 가려 스스로 그 빛을 인지하지 못한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아니, 삶이기에 아프다.
 정세랑의 `이만큼 가까이’는 현재 삼십대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인물들이 학창시절에 겪은 꿈, 좌절, 불안, 우울을 청량감 있게 그렸다.
 “그러니까 우리가 어떤 상실감 때문에 명치가 아프다면, 위나 다른 곳이 아픈 게 아니다. 정말 심장이다. 상심(傷心)이란 말을 매일 다시 배우며 산다.”(33쪽)
 `제7회 창비장편소설상’ 수상작이기도 한 이 작품은 청춘의 트라우마를 담담히 그려 청춘의 시간을 견딘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다.
 이 책은 현재 거대한 책의 도시가 된 파주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 시절 파주는 서울의 변방이었다. 파주에서 신도시 일산으로 학교를 다니던 `나’와 친구들은 `2번 버스’에서 아날로그적 감성과 디지털의 문명이 공존했던 1990년대 말의 독특했던 문화를 함께 나눴다.
 “가족이라고 해서 무조건 사랑할 필요는 없어. 하나도 안 사랑해도 돼.”(27쪽)
 나와 주연, 송이, 수미, 찬겸, 민웅 그리고 2번 버스를 타지 않았던 주완까지 모든 인물들은 소설 속에서 각자의 개성으로 살아 움직인다.

 “밤이 물러가도 눈물 냄새는 남겨놓아서 우리는 언제나 그 남은 입자들을 들이마시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속에서 나는 주완의 눈물 냄새를 알아차릴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가끔 새벽에 그런 느낌이 들 때가 있었다. 지금 하주가 운다고, 우는 것 같다고.”(166쪽)
 `나’는 주연의 오빠인 주완과 더욱 친밀해지기 위해 그가 정해놓은 `우디앨런 주간’, `주성치 주간’ 등을 함께하며 첫사랑을 키워나간다. 우리 모두의 첫사랑이 그러하듯이 설레고 풋풋하다. 그러던 어느 날 주완은 탈영병이 버린 총기로 장난을 치던 수미의 동생 수호로 인해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나’는 첫사랑의 갑작스러운 죽음 앞에서 혼란스러워 한다. `나’와 친구들은 느닷없이 찾아온 친구의 죽음 앞에서 통곡하기보다 시간을 견디는 법을 배운다.
 “그런데 통하지 않는 데에서 오는 안심 같은 게 있다는 게 신기하다. 통하지 않으므로 크게 해칠 수 없다. 통하지 않으므로 그 사람의 일부가 내게 옮아붙지 않는다. 통하지 않으므로 내 안의 아주 나빠진 부분을 굳이 보여주지 않아도 된다.”(214쪽)
 소설은 그들의 아픈 청춘의 시간과 현재의 시간을 교차하며 들려준다. 주완의 영향으로 영화미술을 하게 된 `나’는 주완과 닮은 사람과 사랑을 하고 그들의 모습에서 주완을 찾는다. 그 과정 속에서 `나’는 주완을 기억 속 에 담아두는 연습을 하고 새로운 사랑을 마주한다.
 `나’와 친구들은 저마다의 특기를 살려 꿈을 이루고 주완의 죽음으로 자연스럽게 무리에서 멀어진 수미는 쉼터에서 일하며 자신의 상처를 치유한다.
 “바람이 부는 날에 느낄지도 모른다. 어떤 땅은 살아도 살아도 설다. 풍경이 아름다운 것과는 별개로 설다. 설어서 아름다운 때도 있다. 아이고, 설어라. 나는 할머니를 흉내 내며 속으로 말했다. 설어서 서러운가.”(246쪽)
 그들이 견딘 세월의 시간은 그들을 성장하게 했다. 그들은 아릿했던 십대와 이십대를 지나 사회 속에 오롯이 서있는 삼십대의 삶을 살고 있다. 그들은 여전히 서로의 곁에서 섬세하고 사랑스러운 눈길로 서로를 바라본다. 정 작가는 그들의 그 예쁜 시선을 통해 우리들 마음 속에 자리한 트라우마를 다독인다.
 봄이라고 생각한 순간, 벚꽃이 졌다. 계절의 순환 속 청춘은 흐른다. `이만큼 가까이’의 `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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