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도민일보 = 정재모] 이만섭(李萬燮) 전 국회의장의 이름 앞에는 숱한 레토릭이 붙는다. 한국정치의 기록자, 원조 미스터쓴소리, 강골의 소신파 정치인, 날치기를 거부한 국회의장…. 1963년 31세의 나이로 국회의원 배지를 달아 6대 국회 최연소를 기록한 다음 7, 10, 11, 12, 14, 15, 16대에 걸쳐 모두 8선을 이루면서 얻은 수사들이다. 그런 찬사를 받는 동안 국회의장을 두 차례 역임했다. 2004년 정계를 은퇴할 때까지 무려 40여년 넘게 헌정의 중심에 주로 서 있었으니 헌정사의 산증인이란 말도 결코 허랑치 않다.
기억해둘 가치가 있는 일화들도 많다. 제3~4공화국의 그 서슬이 시퍼렇던 시절, 여당 소속 국회의원이면서 박정희의 3선개헌을 반대한 기개는 세월이 흘러도 묻히지 않는 우리 정치사의 이야깃거리다. 권위주의 독재시대 힘없는 일개 국회의원이면서도 무시무시한 권부 중앙정보부장들(이후락, 김형욱)을 두고 물러나야 할 인물로 당당히 발언하여 암살시도에 맞닥뜨렸던 일도 아무나 지닐 수 있는 이력서가 아니다. 그러나 그가 20대 후반 국회출입기자시절 국회 본회의장을 향해 질렀다는 고함, “야이, 자유당 도둑놈들아!”야말로 섭새겨둘 만한 백미가 아닐까.
국회의원을 잡아갈 ‘독재’와 ‘권위주의’가 없어진 게 요즘의 대한민국이다. 그래선지 대통령을 향해 야비한 욕설이나 비어(鄙語)들을 여과없이 갉작거리는 사람들이참 많다. 그래야 제대로 된 야당 정치인인 걸로 착각하는 듯하다. 그들이 저 서슬 퍼렇던 이승만 독재나, 박정희 권위주의 시절의 야당이었어도 ‘정의’를 뱉어냈을 용기를 갖고 있을까. 그런 어림도 없는 의문을 품어보면서 ‘야이 도둑놈들아’라고 외쳤다는 이만섭의 기개를 새삼 비교하여 생각하게 된다. 이 전 국회의장이 83세를 일기로 지난 14일 타계하여 오늘 국회장으로 영면에 든다. 박정희 대통령에 의해 기자에서 정치인으로 발탁되었으면서도 때론 박정희 비판마저 주저치 않으면서 의회주의자의 길을 꿋꿋이 걸었다는 그 올곧은 기품이 새삼 더듬어지는 오늘이다.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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