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도각서’ 안 받았다간
  • 한동윤
‘효도각서’ 안 받았다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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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6.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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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도민일보 = 한동윤]  부모의 재산을 물려받고나면 ‘안면몰수’하는 자식을 상대로 생활비를 달라고 소송을 내는 부모가 늘고 있다. 대법원에 따르면 자식이 부모를 팽개쳐버리거나  패륜 행위를 저질러 재산을 돌려받게 해 달라는 부모들의 소송 건수가  2001년 60건에서 2014년 262건으로 급증’했다.
 그러나 소송을 제기해도 대부분 부모의 ‘백전백패’다. 한 번 증여한 재산을 다시 돌려받는 것은 현행법상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노인 학대 사건이 지난해만 5772건 일어났지만 이 역시 처벌이 힘들다. 자식이 부모를 때려도 부모가 고소하지 않으면 수사기관이 관여할 수 없는 친고죄, 반의사불벌죄의 규정 때문이다. 부모로 살아가기 힘든 사회다. 한국 노인 빈곤율 은 49.6%로 세계 1위다. 당연히 노인 자살률도 높다. 세계 1위다.
 올해 73세인 박 모 할아버지는 현재 4평 남짓한 단칸방에서 홀로 지내고 있다. 박 할아버지는 의붓아들에게 자신의 집과 땅을 내어준 뒤 버림받았다. “재산 상속 이후에는 나를 부모로 생각하지 않는다. 내 자식처럼 여기고 평생을 바쳐온 세월이 한심하고 억울해 더는 살고 싶은 마음이 없다”고 한숨을 쉬지만 방법이 없다. 빼앗긴 재산보다 괴롭히는 것은 평생 돌봐준 가족에게 버려졌다는 자괴감과 외로움이다.
 방법은 있다. 자식에게 재산을 물려줄 때 ‘각서’를 받는 것이다. ‘효도각서’다. 서울에 사는 유 모 할아버지는 2013년 12월 아들에게 종로구 가회동 한옥촌에 있는 2층 단독주택을 물려줬다. “부모를 잘 봉양하겠다”는 각서와 함께. 유 할아버지 부부는 2층, 아들 부부는 1층에 살았다. 할아버지는 소유하고 있던 임야 3필지와 회사 주식도 아들에게 넘겼고, 다른 재산을 정리해 아들 회사의 빚도 갚아줬다.

 그러나 같은 집에 사는 아들 내외는 부모와 밥도 같이 먹지 않았다. 허리디스크를 앓던 어머니가 집안 살림을 도맡아야 했다. 어머니 병수발은 따로 사는 누나와 가사도우미가 맡았다. 어머니가 아예 거동을 하지 못하자 아들은 “요양원에 가라”고 했다. 괘씸한 아들에게 실망한 노부부는 따로 살 아파트를 마련하겠다며 넘겨준 2층 주택 등기 이전을 요구했다. 그러자 아들은 “천년 만년 살 것도 아닌데 무슨 아파트가 필요하냐”고 면박을 주었다.
 유 할아버지는 딸집으로 갔고 아들을 상대로 부동산 소유권 반환소송을 법원에 냈다. 1심과 2심은 “아들이 막말을 하고 부모 부양책임 조건을 이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주택을 돌려줘야 한다”고 판결했다. 대법원도 “부모가 부동산을 넘긴 행위는 단순 증여가 아니라 부양 의무 이행을 전제로 한 ‘부담증여’라며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증여를 해제할 수 있다”고 최종 판단했다.
 유 할아버지의 경우는 ‘효도각서’가 있었기에 재산을 되찾을 수 있었다. ‘각서’가 없으면 자식이 아무리 부모를 외면하고 학대해도 재산을 되찾지 못한다. 생활비 몇 푼 타내려면 길고 까다로운 재판을 거쳐야 한다. 변호사가 필요하고 법정비용도 들어가야 한다. 우리나라는 더 이상 ‘동방예의지국’이 아니다. 자식에게 재산을 물려주면서도 도장 찍고 각서를 받아야 하는 세태다.
 ‘불효자 방지법’. 부모의 재산을 증여받은 자식이 ‘부모를 학대하거나 부당한 대우를 할 경우’엔 증여를 취소하고, 부모를 폭행한 자식은 부모의 의사와 상관없이 형사처벌하는 법이다. 부모의 재산을 챙긴 뒤엔 ‘안면 몰수’하는 패륜이 심해지자 여야 의원들이 앞다퉈 지난해 가을 국회에 제출했다.
 독일, 프랑스, 오스트리아 등 유럽 주요 국가들은 자녀가 부모에게 배은망덕하거나 학대·모욕을 자행하면 기존의 재산 증여를 철회할 수 있도록 민법에 규정하고 있다. 우리라고 못 할 이유가 없다. 부모를 모시는 것은 인간으로서 기본 윤리다. 하늘이 맺어준 천륜(天倫)이다. 부모에 대한 자녀의 도덕적 의무와 인간성 회복을 위해서라도 불효자 방지법은 조속히 통과돼야 한다. 천륜 관계가 계약이나 법률로 규제돼야 하는 ‘막장’이다. 새해에는 부모를 돌보지 않고 학대하는 불효자식들이 더 이상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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